영화 '오장군의 발톱'은 시민들의 후원으로 제작됐으며, 경남 창원에서 촬영했다.

#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스크린을 요청했는데, 한 곳에서 선심 쓰듯 평일 아침 9시 상영 시간을 주더라고요. 우리 영화는 청소년이 보면 가장 좋은데, 다들 학교 가고 극장에 못 오는 시간 아닌가요?”

독립영화 ‘오장군의 발톱’의 설미정 제작자는 스크린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를 씁쓸하게 털어놨다. 독립영화라는 이유로 상영관을 확보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에 대한 토로였다.

지난달 15일 개봉한 영화 오장군의 발톱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시민 1000여 명의 펀딩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개봉 한 달 차를 맞이한 작품은 관객을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있다.

오장군의 발톱은 1974년 극작가 故박조열이 발표한 희곡을 원작으로, 작가의 경험을 통해 한국의 분단 현실을 담아낸 작품이다. 연극으로는 1989년 초연 후 여러 번 무대에 올라왔지만 영화로 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배우 출신인 김재한 감독이 직접 영화화 허락을 받고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작품은 순박한 시골 청년 ‘오장군’이 전쟁에 휘말리면서 겪는 비극을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의 전쟁을 통해 그려낸다. 전쟁이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시키는지 참혹함에 대해 다루며, 그 안에서 순박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동화처럼 풀어낸다. 

영화 '오장군의 발톱'을 후원하는 '나도 제작자'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시민들의 후원으로 시작된 영화는 그야말로 십시일반 방식으로 제작됐다. 제작비 2억8000만원 가운데 1억6000만원을 시민들의 펀딩 ‘나도 제작자’를 통해 충당했다. 시민들은 후원금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촬영장을 직접 찾아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등 참여의 의미를 더했다.

‘이념이나 진영 논리를 넘어 전쟁에 참여하는 모두가 패배자가 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은 지난 4월 열린 ‘제40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메인 경쟁 부문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만큼 광복절인 8월 15일로 개봉 날짜를 확정짓고, 故노회찬 정의당 의원, 이재정,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지원을 받아 7월 국회에서 먼저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개봉 한 달 차를 맞이한 오장군의 발톱은 지난 12일 기준 관객 수 2344명을 기록하며 고전 중이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탄생한 작품인데, 영화를 보여줄 상영관이 없는 탓이다. 개봉 이후 영화가 제작된 경남에서 3곳, 서울 1곳, 경기 1곳 등 전국에서 불과 9개 스크린에서만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그나마도 상영시간표가 평일 아침 8시, 낮 1시, 저녁 9시 등 일반 관객들이 접근하기 힘든 시간대로 치우쳤다.

제작사 상남영화제작소 측은 “독립영화이다 보니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에서의 상영은 거의 불가능하고,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도 우리 작품만 계속해서 틀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보고 싶어도 상영관이 없어 아쉬워하는 관객들의 요청에 따라 오는 15일 창원에서 대관 상영, 17일 진주 토지주택공사 대강당에서 직원 및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동체 상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장군의 발톱'은 '평화'와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박원순 서울시장, 허성무 창원시장, 박종훈 경남교육감, 故노회찬 의원, 이재정 의원, 조승래 의원 등 각계각층에서 지지를 받았다.

‘스크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오장군의 발톱’은 이달 말까지 가늘고 길게 상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난 8일 ‘제7회 목포인권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관객을 만났고, 9월 중순 현재 서울 종로 실버영화관, 충남 천안 인디플러스, 전남 고흥 작은영화관, 경남 창원 씨네아트리좀 등에서 하루 1~2회 가량 상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IPTV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네이버N스토어, 씨네폭스 등 온라인 상영관을 통해서도 관람이 가능하다. 

설 제작자는 “독립영화라는 이유로 상영관 확보 자체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스크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외영화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일정 기간 상영하는 ‘스크린 쿼터제’처럼, 멀티플렉스 극장에 독립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틀게 하는 강제 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와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대형 극장에서 특정 상업 영화만 과도하게 상영해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고, 공정거래 질서를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으로, 현재 국회에서 계류 상태다.

사진제공. 상남영화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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