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가 화두다. 현 정부의 핵심 철학으로 사회적 가치가 선포되면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에서도 공공성·사회적 가치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사회적경제 조직과 협력하는 등 발걸음이 빨라졌다. 개별 공기업의 고유한 사업 가치가 여러 사회적 경제 분야와 만나 사회적 가치로 확대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본지는 사회적경제와 동행에 나선 대표적인 공공기관을 만나본다.

오영오 LH 미래혁신실 실장 (사진: 권선영 기자)

“공공기관들이 사회적경제조직을 잘 몰라요. 저희도 그렇고, 서로가 알려고 노력해야죠. 그동안 정말 많은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을 만났어요. 일단 만나서 듣고 배우고 제안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오영오 LH 미래혁신실장의 명함에는 ‘사회적 가치 전도사’라는 여덟 글자가 적혀 있다. 28년째 LH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 실장은 가장 왕성하게 사회적경제기업을 만나는 공공기관 관계자 중 한 명으로 자부한다. 진주 본사와 서울은 물론, 전국을 오가며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일을 한다. 

“우리 조직 스스로 공공기관의 사회 가치에 불을 지폈다고 자평합니다.”

미래혁신실 내 ‘사회적 가치 추진단’을 신설하고, 공공기관 최초로 사회적 가치 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7월에는 대구경북지역본부에 사회적가치지원센터를 공공기관 최초로 설치했다. 사회적경제조직들과의 협력도 여느 공공기관들보다 활발하다. 많은 공공기관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자문을 구한다니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LH가 고민하는 사회적 가치, 그리고 사회적경제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지난 6일 오 실장을 만나 들어보았다. 이날 인터뷰는 경복궁역 인근 아름다운커피 매장에서 진행됐다. “요즘 가능한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는 오 실장의 제안이었다. 

명함에 적힌 ‘사회적 가치 전도사’가 눈에 띈다. 

(하하)내가 있는 미래혁신실이 현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혁신과 일자리, 인권경영 등 사회적 가치 실현 등을 총괄하는 부서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사회적 가치’를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고민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다. 

전도사를 자처하려면 전국을 다녀야 하지 않나. 바쁠 것 같다.  

솔직히 바쁘다. 올해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가 전면 개편되지 않았나. 효율성보다는 공공성·사회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상황에서 조직의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하다 보니 더 그렇다. 본사가 진주다 보니 요즘 같은 경우 이틀 정도는 진주에서, 3일 정도는 서울에서 활동한다.
 
게다가 공공기관들이 사회적경제조직을 잘 모른다. 알려고 노력하고 많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 당사자들을 많이 만나려 하고 제안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한다. 

물론 그렇다고 LH가 단순히 정부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만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공공기관이 설립된 본연의 목적을 되돌아보고, 주인인 국민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도록 경영 전반에 걸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고민하다 보니 더 바빠진 것 같다. 

지난 1월 LH가 개최한 ‘사회적경제 주체와 동행 포럼’에 사회적기업가들이 참여했다. 

사회적 가치 구현이라는 과제를 전사적으로 체질화 한다는 게 어려운 과제일 듯하다.  

개념도 생소한데다, 전반적인 조직문화, 직원들의 인식 전환 등을 통해 체질을 개선시키는 과정이 사실 어렵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 문제다. 

임직원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회적 가치 실현의 내재화를 위해 미래혁신실 내 ‘사회적 가치 추진단’을 신설하고, 지속적인 교육 등 내부 활동을 하고 있다. 올 1월에는 임직원 인식 전환을 위해 ‘사회적경제 주체와 동행 포럼’ 개최를 시작으로, 사회적 가치 비전 선포식(6월)을 개최했다. 또한 사내 공정무역 커피 도입, 릴레이 독서 등 문화혁신, 임직원 집중교육 등 역량 강화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상적으로는 공공기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상반기 때 진행한 포럼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내부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본사 직원에게는 12회차 사회적경제 교육을 신청 받아서 50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공공기관 최초인 것으로 안다. 

LH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핵심은 무엇인가. 

LH의 존재 이유는 우리 국민들이 더 좋은 터전에서 미래의 희망과 행복을 찾는 것이다. 즉, 터전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공동체가 회복돼야 한다. ‘무너진 공동체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LH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다. 경쟁과 이윤을 넘어 상생과 나눔의 삶의 방식을 실현하려는 사회적경제와의 협력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7월 출장 때 런던의 한 펍을 방문했는데 지역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더라. 그걸 보며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도시재생을 최대한 유지하는 정책이라든지, 국토교통부 시범사업이자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더함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 등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우리도 그렇게 공동체 강화에 기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자 한다. LH가 진행하는 LH희망상가나 시민자산화에 대한 관심도 그런 측면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이다.

‘사회적경제 조직과의 혁신적 동행’이 모토다. 

LH는 그동안 사회적기업에 대한 입찰 시 가점제도와 사회적기업 제품 우선구매 등을 통해 사회적경제를 직접적으로 지원해 왔다. 최근에는 사회적경제 조직을 단순히 지원하는 활동을 넘어 LH 고유 업무인 임대주택 공급과 주거복지 서비스를 통해 사회적경제 조직을 동행 파트너로 인식하고 협업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일환으로 LH 업무 전 분야를 대상으로 사회적경제 조직과 협력 가능한 ‘협업사업 아이디어 공모전’(~10/1)도 시행한다.  

공공기관 최초로 사회적 가치 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했고, 지난 7월에는 대구경북지역본부에 사회적 가치 지원센터를 공공기관 최초로 설치했다. ‘사회적 가치 지원센터’는 사회적경제 운영팀, 사회적경제 기획팀, 사회적경제 사업팀으로 운영 중인데 앞으로 사회 혁신 클러스터 구축, 사회적경제 조직 협력 사업 발굴, 주거복지?사회공헌 연계 일자리 창출, 동반성장 제도 홍보 및 판로지원 상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LH는 사회적 가치 실현의 내재화를 위해 자체 내 ‘사회적 가치 추진단’을 신설했다.(사진: 권선영 기자)

이런 추진력에는 CEO의 강한 의지가 필수다. 언젠가 박상우 LH 사장이 공식 자리에서 “사옥도 필요하다면 사회적경제조직과 시민들에게 소통 공간으로 개방하겠다”고 발언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LH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조직 정비, 인식 전환, 문화 혁신, 역량 강화 등을 추진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대한 CEO의 강한 의지까지 더해져 본사뿐만 아니라 지역본부 직원들도 사회적 가치 실현과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마 이런 고민과 분위기가 외부에서 보기에 적극적인 활동으로 비쳐지는 듯하다.
  
공공기관이니 만큼 가능한 많이 개방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전북지역본부 사옥을 사회적경제 조직에 개방한 사례도 있다. 11월에는 사회적경제조직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본사에서 사회적경제 우수제품 전시회를 기획 중이다. 공사에서 보유한 성남시의 비축토지에 대하여 착공 전까지 사회적기업에 제공하여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시범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LH는 이전부터 주택사업이라는 고유사업을 사회적 가치 실현과 연계해왔는데. 사회적경제와 협업에서도 이런 방향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LH는 도시를 조성하면서 공동체가 재구성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런 측면에서 LH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대표적인 사례라 하면, 사회적경제조직이나 청년, 소상공인 등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상가를 임대하는 ‘LH희망상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가진 소셜벤처기업을 지원하는 ‘LH 소셜벤처 지원사업’ 등이 있다.
 
‘희망상가’의 경우 장기간 지속되는 취업난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입찰을 통해 분양하던 장기임대주택 단지 내 상가를 LH가 계속 보유하면서 저렴한 조건으로 장기간 임대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해 공공임대상가라는 이름으로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올해부터 LH 희망상가 본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올해에는 임대주택 입주민과 사회적경제 주체 등이 재화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거래하고 공유할 수 있는 ‘LH 소셜마켓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또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제주올레와 사회적기업인 오요리아시아와 협업으로 ’내식당 창업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창업 자금이 부족한 청년 예비창업자에게 창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전남지역에서 일자리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꿈터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취업연계 서비스의 사각지대인 임대주택 단지를 직접 찾아가 취업 상담을 해주는 ‘일자리 버스(Job-us)’ 운영을 통해 지역의 구직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임대주택 단지를 직접 찾아가 취업 상담을 해주는 ‘일자리 버스(Job-us)’

제한적 이윤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주체와 협업하여 공공이 보유한 용지를 활용하는 ‘토지임대부 사회임대주택’ 사업도 LH가 주목하는 사회가치 사업이다. 진행 과정에서 사회적경제 주체의 열악한 재정과 낮은 신용도로 자금조달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HUG, 우리은행 등 유관기관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지난 7월 사회임대주택 활성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의도가 담긴 조치다. 지역 문제를 잘 아는 다양한 사회적경제조직과 연대가 중요할텐데.  

현재 LH는 경남 진주에 본사가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경남의 사회적경제조직과 협업을 통해 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고민한다.  

한 예로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경제, 사회적가치 집중교육이라든지, 주거복지과 도시재생사업 등 각 사업 분야에서 협업사업을 발굴하는 데 지역 내 사회적경제조직이 직접 참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창원에서는 임대주택 주민공동시설을 활용하여 주민들이 직접 방과후 공부방 등을 운영하는 ‘아파트형 사회적협동조합 시범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런 형태의 협업사업들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나갈 생각이다. 

경남도와도 지역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례 제정 등 생태계 조성에 적극 협력하고자 한다.

사회적경제와의 협력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우리 지원 사업에 참여했던 한 청년활동가에게 감사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제주올레와 협업으로 진행하는 ‘청년활동가 양성사업’에 참여하는 청년이었는데, 규모는 작은 사업이지만 청년들의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뿌듯하기도 했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역청년활동가 양성사업 발대식

사회적경제 조직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시다시피 공공기관 평가항목에 사회적 가치 부분이 반영된다는 것이 작년 말에 결정되면서 사회적경제와의 협력에 대해 공공기관들의 관심이 커졌다. 그러나 사회적경제를 잘 모른다. 공공기관들도 노력해야겠지만 사회적경제 조직들도 더 잘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만나야 한다.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들이 공공기관과 현장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줘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사회적경제조직 스스로도 재화와 용역을 활용하는 데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경영 능력과 품질의 제고를 통해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LH도 사회적경제조직과 협업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 중이니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방식을 모색해 나갔으면 좋겠다.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측정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적극 고민해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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