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 개막작 '알제리 전투(1966)' 스틸 이미지.

한쪽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다른 한쪽은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싸운다. 역사 속 전쟁의 역사는 ‘자유’를 둘러싼 주체 간의 투쟁이 아니었을까. 1966년 알제리에서 개봉한 영화 ‘알제리 전투’는 식민 지배를 받던 알제리 국민들이 프랑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9년간의 여정을 그린다. 1960년대 발표된 알제리 영화가 2018년 한국 극장 스크린에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99주년을 맞이한 올해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를 시작했다. 6일 오후 4시 종로 서울극장에서 막을 올린 축제의 개막작이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알제리 전투’다. 작품은 ‘저항’을 뜻하는 축제 명칭인 ‘레지스탕스(Résistance)’에 걸맞게 조국 해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알제리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

작품은 1957년 프랑스군이 알제리 해방군의 핵심 인물 ‘알리’를 체포하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미 모든 조직원이 잡히거나 죽었으니 순순히 항복하라”는 협박이 스크린을 채운다. 필름은 알리가 조국 해방운동에 뛰어들게 된 1954년으로 돌아간다. 거리에서 도박이나 일삼으며 문제를 일으키던 알리는 감옥에서 독립운동가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알제리 전투' 스틸 이미지.

출소 후 알리는 알제리 독립운동을 이끌던 ‘민족해방전선(FNL)’의 조직원이 돼 프랑스 경찰을 사살하고, 공공장소에 폭탄을 설치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FNL의 무장투쟁이 과격해지자 프랑스는 알제리 내 ‘공수부대’를 배치하기에 이르고, 수도 ‘알제’의 모든 출입문에 검문소를 설치해 조직원 색출에 나선다. 비밀리에 활동하던 FNL도 프랑스군의 교묘한 수법에 걸려들고, 잔인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누설한 비밀들로 핵심 인물들의 은신처가 밝혀지게 된다.

흑백 화면에 후시 녹음으로 진행돼 말소리도 제대로 맞지 않는 투박한 이 영화가 이상하게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식민지배 경험이 있던 한국 국민들에게 알제리 독립투사들의 사연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FNL 해방군의 얼굴 위로 한국의 독립 운동가의 모습이 계속해서 겹치는 건 조국의 광복을 위해 열강에 맞서 싸웠던 사실에 차이점이 없어서다.

프랑스군이 해방군에 대한 대대적 진압에 나선 이후, 알제리에서는 오히려 더욱 거센 해방 투쟁이 일어난다.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프랑스군에게 알제리 국민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독립, 자유, 자존심을 돌려 달라”고 답한다. 다 찢어진 이불과 넝마에 달과 별이 박힌 알제리 국기를 만들어 온 힘을 다해 흔들어대는 이들이 원하는 건 오직 ‘자유’뿐이었다. 

지난한 투쟁 끝에 1962년 7월 2일 알제리는 끝내 독립을 쟁취한다. ‘알제리 전투’는 해방 후 불과 3년 뒤인 1965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돼 이듬해 개봉했으며, 그 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 작품성까지 인정받는다. 2시간의 상영이 끝난 뒤 서울극장 객석에서도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후 축제기간 동안 4개 섹션으로 나눈 14개국 출신 18편의 반제국주의 영화가 잇따라 관객을 만난다.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 상영작 및 상영시간표.

개막식 날 오후 7시에는 개막식이 이어져 영화제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개막 공연 ‘그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들’은 이성부 시인의 시 ‘봄’의 내용을 탈북인을 비롯해 한국, 러시아, 베트남, 중국, 미얀마 등 20대 전후의 아시아 젊은이들이 비언어극으로 표현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개막식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동농 김가진 선생의 손자, 김의한 선생과 정정화 여사의 아들)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장,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윤봉길 의사의 손녀) △김상용 국민대 교수(조용제 여사의 손녀) 등이다.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 필름어워드에서 '베스트 액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제훈(왼쪽)과 최희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를 소재로 만든 영화인에게 시상하는 ‘레지스탕스 필름 어워드’도 진행됐다. 베스트 디렉터상에는 이준익(박열, 동주), 최동훈(암살), 김지운(밀정) 감독이 선정됐고, 베스트 액터상에는 이제훈(박열, 아이캔스피크)과 최희서(박열, 동주)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제훈은 “‘박열’에 출연하며 그동안 우리나라의 역사와 순국 선열들을 잘 모른 채 살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아 많이 반성했고, 그 계기로 위안부를 소재로 한 ‘아이캔스피크’ 출연을 결심했다”며 “대한민국 청년 배우로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투쟁하신 분들을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는 오는 10일까지 서울극장에서 이어지며, 영화 관람을 원하는 관객은 각 작품 상영 당일 극장에서 배포하는 입장권을 받으면 된다. 이밖에 부대 행사로 영화를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는 ‘세미나 클래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담은 사진전 ‘저항, 그 기억’ 등이 마련됐다.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리는 '세미나 클래스' 세부 정보.

사진제공.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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