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가 밀집한 홍제동의 한 평범한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 가장 안 쪽, 스튜디오의 간판 역할을 하는 네온사인이 불을 밝히고 있다. 네온사인이 예뻐 사진을 찍는데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가 나와 악수를 청한다.

“안녕하세요. 취재하러 오셨죠?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트앤쿱(art and coop) 협동조합(이하 아트앤쿱) 신경국 이사장이다.

신경국 이사장. (사진=홍은혜 기자.)

흰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초록 파스텔 벽이 눈에 들어온다. 아트앤쿱 조합원들의 공동 스튜디오다. 돌을 맞은 아이들이 입을 앙증맞은 의상과 소박한 인테리어가 바깥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대조된다. 벽에 걸린 사진 속 사람들이 채광을 받아 눈부시게 웃고 있다.

아트앤쿱은 사진작가, 영상감독, 여행작가 등 예술가 6명이 함께 한다. 8년부터 20년 동안 자기 분야의 한 우물을 판 베테랑들이다.

아트앤쿱의 전신은 한국사진가협동조합이다. 지난 2013년 영상, 출판, 배우 등 보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하기 위해 아트앤쿱이란 이름으로 분야를 확대,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예술가들을 알리는 네트워크와 플랫폼을 구축하고 공동 콘텐츠 개발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공기관·사기업과 ‘법인 대 법인’으로 일하다

아트앤쿱은 관내 공·사기업의 행사, 홍보 영상과 임원 프로필 및 제품 촬영을 주로 한다. 이 외에도 광고 및 배우 연기 영상 등을 제작한다.

“개인 예술가로 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어요. 관내 공기업, 사기업을 대상으로 한 촬영이 그런 일들이죠. 그 분야로 활동을 확대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고객과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사진가들이 약자가 되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정부 기관, 사기업 등 다른 법인과의 계약에서 협동조합 법인의 무게감은 개인 사업자와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협동조합 소속 예술가로 일할 때와 개인 사업자로 일할 때 차이점이 궁금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점이 좋죠. 여행 작가를 제외한 5명이 사회적경제마을센터 사무실에 항상 상주해요. 사소한 일이라도 의견을 나눌 수 있죠. 워낙 많은 생각들이 나오다 보니 이전에 묵혀뒀던 아이디어가 다른 사안에 적용된 적도 많아요.”

사회적 분야 협업·봉사활동까지…아트앤쿱의 무한 네트워크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데프맘과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던 경험이 정말 좋았어요.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입모양을 크고 또박또박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하나 둘 셋 신호를 손 모양으로 했더니 엄마들이 촬영 내내 웃으셨습니다. 엄마 모르게 아이에게 ‘엄마한테 뽀뽀 한 번 해줘’라고 했죠. 아이의 뽀뽀에 좋아하던 모습과 그것을 사진에 담는 과정이 감동적이었어요.”

이들은 사회적기업을 목표로 한다. 구성원 모두 생활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정기 봉사활동을 한다. 사진과 영상이라는 주 특기를 살리는 활동이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소아암센터의 ‘기린아’가 소아암을 이겨낸 사람들과 환아들이 함께하는 캠프를 연다. 아트앤쿱은 캠프 영상과 연말 전시회에 쓰일 사진을 매번 맡아 왔다. 또, 보육원 아이들의 백일 사진과 돌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또 아트앤쿱은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에 입주해있는 만큼 다른 협동조합과 협업도 많다. 클래식문화콘텐츠플랫폼인 오르아트와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작년과 올해에는 번역협동조합이 주최하는 동네국제포럼에서 행사 영상과 사진을 촬영했다. 한국와인소비자협동조합의 상품 프로필을 제작하기도 하고, 문화유통협동조합과 펀데이코리아가 함께 주최한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에서도 촬영을 맡았다.

지난달에는 사업자협동조합들로 이루어진 단체인 소상공인협동조합협업단에 속한 마케팅협동조합(법인 설립 준비 중)과 협업했다. 홍보자료를 기업에 배포해 마케팅 대행 분야에 협동조합의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진과 영상이 어느 분야와도 결합이 유연한 만큼, 아트앤쿱의 활동 영역은 매우 넓다.

 

서대문구 사회적기업들에게 상품, 행사 사진 촬영법을 강의하고 있는 아트앤쿱. (사진=아트앤쿱 제공.)

“정직하되 합리적으로 한다”

작업의 범주가 넓지만 일을 맡는 기준이 있다. 고객이 원하는 작품의 스타일과 이들의 작업 스타일이 일치해야 한다. 먼저 고객이 원하는 콘셉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한다. 원하는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아트앤쿱 소속 조합원들이 콘셉트 회의를 하고 고객에게 확인 받는다. 그 후 그 일에 적합한 사람들로 팀을 꾸려 작업한다.

“그렇게 해도 우리의 작업 스타일과 맞지 않아 반려할 때도 있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요.”

그는 “이 분야는 단가가 사업자마다 정말 다양하다”며 “누군가 너무 낮은 단가를 책정해버리면 시장 가치 자체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적정수준의 가격을 제시하되 협상이 가능한 부분은 얼마든지 협상한다. “촬영 단가는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적정 수준”이라는 귀띔이다.

“아트앤쿱 자생력 키워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성장할 터”

협동조합협의회와 서울지역소상공인협동조합협업단 등 다양한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 여러 사회적기업들 사이에서 아트앤쿱의 인지도가 상당할 것 같다. 하지만 신 이사장은 “전혀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시종 일관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는 “아트앤쿱은 각 예술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어서 관의 지원 사업에 목매지 않는 편”이라며 “하지만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으로서 자생력을 더 키우고 아트앤쿱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에만 협동조합이 140여개가 있어요. 하지만 지원 사업에 의존하고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경로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사회적경제기업이 많습니다. 아트앤쿱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 이 사회적기업들을 홍보해 중간 지원하는 협동조합이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들도 예술 분야의 공헌을 해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슬슬 음악가들 프로필 촬영을 시작해야겠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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