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사회적경제기업의 혁신성장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사회적경제 혁신성장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술 혁신을 통한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사업 종료를 앞둔 사회적경제혁신성장사업이 어떤 성과를 냈고, 사회에 얼마나 가치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이 불상에 얼굴이 몇 개 있을까요?”
“4개요”
“맞아요. 불상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요?”
“하나는 작고 하나는 커요. 큰 얼굴이 양쪽에 있어요”

22일 오전 8시 40분. 수업 종이 울리자 대전맹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수업할 준비를 했다. 이전과는 다른 수업에 다들 들뜬 모습이었다. 수업을 진행한 조영훈 공주대학교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문화재는 굉장히 많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 형태를 직접 만져보면서 ‘어떤 형태일까’, ‘어떤 용도로 사용됐을까’를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라고 수업을 소개했다.

수업은 학생들이 미니어처 문화재 출력물을 만져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스쿱이 3D 스캐닝 및 프린팅 기술로 문화재를 제작했고, 수업 전체를 기획했다. 조영훈 공주대학교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직접 만져본 문화재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됐는지 교육했다. 김지훈 공주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공주대학교 산학협력단 링크사업단)는 문화재 출력물을 세라믹을 활용해 제작할 수 있도록 자문 및 컨설팅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참여한 학생들 전부에게 3D프린팅으로 제작된 청동거울과 석수를 전달했다. 

22일 대전맹학교에서 중학교에 재학중인 (시각장애인) 학생 15명을 대상을 문화재 교육이 진행됐다./사진=박미리 기자
22일 대전맹학교에서 중학교에 재학중인 (시각장애인) 학생 15명을 대상을 문화재 교육이 진행됐다./사진=박미리 기자

이번 수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 중인 ‘사회적경제 혁신성장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스쿱이 문화재 관련 데이터 사업 연구개발과제를 진행하면서, 문화재 데이터를 확보해 3D 프린팅으로 모형을 만드는 사업을 수행했다. 성은희 ㈜스쿱 부대표는 “이 사업을 진행한 지 2년차다. 1년차때는 조영훈 교수께서 문화재 관련 자문해 주셨고, 2년차에는 ‘별도의 추가공정 없이 3D 프린팅 출력만으로 문화재의 질감을 살릴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김지훈 교수께서 자문을 해 주셨다”고 했다.

김지훈 교수는 “3D 출력물을 하는 회사에서는 주로 플라스틱을 다루는데, 소재의 한계 때문에 확장하기로 했고, 컨설팅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나 역시 문화재는 처음 해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또한 이런 기술이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충분히 가치 있는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게 뜻깊다”고 전했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이 손으로 만지며 확인한 문화재는 그 모양부터 미세한 문양까지 있는 그대로 출력됐다. 여기에 도자기 등 다양한 질감을 내는 세라믹 재료를 활용해 생생하게 문화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영훈 교수는 “오늘 학생들이 만져본 출력물은 3D 스캐닝을 통해 기록하고, 모델링 해 그대로 구현한 것”이라며 “그게 이번 기술의 가장 큰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3D프린터 출력물을 만져보며 모양과 용도 등을 공부했다./사진=박미리 기자
학생들은 3D프린터 출력물을 만져보며 모양과 용도 등을 공부했다./사진=박미리 기자

사물을 손의 감각으로 봐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문화재를 경험할 기회가 적다

“지금 만지고 있는 게 어떤 모양 같아요? 용도가 뭘까요?”
“이건 신발 아니에요?”
“네. 신발 맞아요. 그런데 신발이 좀 딱딱하죠? 평소에 신기 어렵게. 언제 신는 걸까요?”
“정답! 죽은 사람이 신는 신발이요”
“우와, 맞아요”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이 '금동신발'을 만지며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은 그동안은 상상만 했던 문화유산을 손으로 만지며 형태와 용도까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편견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던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화재를 대하는 모습도 보였다.

“처음 교장 선생님께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재 관련 교육을 해보자’는 제안을 드렸을 때 '문화재 교육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시각장애인) 아이들은 친구 얼굴을 볼 때도 손으로 만져보잖아요. 문화재는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사명감을 가지고 이번 수업을 기획했어요.” -성은희 부대표

수업은 단순히 플라스틱이 아닌 세라믹 재료를 사용해 질감까지 느낄 수 있게 했다./사진=박미리 기자
수업은 단순히 플라스틱이 아닌 세라믹 재료를 사용해 질감까지 느낄 수 있게 했다./사진=박미리 기자

“오늘 수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였어요(허허)”

이번 수업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은 수업에 대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 했다. 조영훈 교수 역시 “문화재는 만지는 대상이 아닌데, 그런 문화재를 만질 수 있게 한 것은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3D 프린팅 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기술인 것 같다”며 “문화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변형되고 가식적인 형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수업 중에 문화재를 만져보고 ‘사이가 깨져있다’고 말한 학생이 있었어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온전한 상태로 보존될 수만은 없는데 그걸 직접 만지고 체험하면서 알게된거죠. 학생들이 역사의 흐름도 함께 체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조영훈 교수

한근진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조사연구부 팀장은 “3D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산업군에서 신소재를 활용해 만든 문화재를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적용해 교육한 사례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사진=박미리 기자
한근진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조사연구부 팀장은 “3D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산업군에서 신소재를 활용해 만든 문화재를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적용해 교육한 사례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사진=박미리 기자

한근진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조사연구부 팀장은 이날 진행한 수업에 대해 “3D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산업군에서 신소재를 활용해 만든 문화재를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적용해 교육한 사례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팀장은 “나아가 3D 프린팅을 활용한 문화재 출력물이 교구로 활용되면 새로운 산업군을 발굴하고, 새로운 일자리들이 육성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이번 사례가 선순환 체계의 시발점이 돼서 우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더 많이 확장되면 좋겠어요. 기술을 가진 모든 사람이 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취약 계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게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송재영 ㈜스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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