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호의 일상다반사] 2.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박승호의 일상다반사] 2.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 박승호
  • 승인 2018.09.03 08: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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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주현
                                                                                                                                          일러스트=이주현

뮤지컬의 막이 잠시 내려오고 길지 않은 휴식시간이 주어지자 낡은 극장의 협소한 화장실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하고 막간을 이용해 팸플릿을 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모습이었다.

그때 얼굴이 사색이 되어 큰일을 치르고야 말 것 같은 이가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죄송합니다... 마치 꿈속에서 소리를 지를 때처럼 묵음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모두가 그 사람을 쳐다보지만, 누구도 욕을 하지 못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전, 아버지에게 심근경색이 찾아왔다. 당황한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곧 구급차가 도착했고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실의 침상 대부분은 공포와 긴장이라는 무거운 공기에 짓눌린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대단히 위급해 보이는 환자도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었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어디에선가 간절한 외침도 들렸다. 사무적인 사람들은 앉을 틈도 없이 바쁜 간호사와 피곤함에 절은 의사들뿐이었다. 그때 의사를 막아서며 환자 죽을 때까지 이렇게 기다리게만 할 거냐며 소리를 질러대는 이가 있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응급실 내 모든 이들의 어깨에 놓인 삶의 짐을 서로서로 확인한 순간, 누구도 그를 탓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했던 경험 앞에서 너그러워진다.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집 담벼락에 남의 집 커다란 쓰레기통이 버젓이 놓여 있다면 어떨까? 어디서 이렇게 초파리 쉬파리가 들어오냐고 투덜대자 아내가 말했다. 골목 건너의 빌라에서 쓰레기통을 우리 집 담벼락에 갖다 놓아서 그렇다고. 말이나 되나 싶어 나가 보았더니 우리 집 창문 아래쪽으로 대형 쓰레기 수거함이 두 통, 음식물 수거함이 두 통 놓여 있었다. 아내의 말로는 건너집이 여덟 세대가 사는 빌라라 누구한테 읍소해야 할지 몰라 쓰레기통을 빌라 앞으로 옮겨 놓았는데 그다음 날 도로 우리 집 담벼락에 붙어있더라고 했다. 그런 일이 두 번 있고는 이웃하고 다투고 싶지 않아 구청에 민원을 넣은 상태라고 했다. 너무나 염치없고 뻔뻔한 이웃을 두었다고 생각했다.

구청 청소과 직원이 빌라 대표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 쓰레기통은 벌써 몇 년째 그 자리에 있었다고. 집을 새로 짓고 누군가 이사를 왔지만 늘 두던 자리를 고수했던 것은 그 자리가 비어있으면 누군가 차를 대어 놓기 때문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 주차장으로 차가 드나들기 어려워진다고. 또한 예전 주택에는 그 벽면에 창문이 없었노라고,

다음날, 문제의 쓰레기통은 빌라 주차장 입구 한쪽에 아주 불편한 모습으로 꽉 붙어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빌라 대표의 이야기대로 쓰레기통이 있던 자리에 승용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 때마침 빌라 주차장에서 차가 한 대 나오고 있었다. 쓰레기통 자리를 차지한 승용차 때문에 몇 번씩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차를 빼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영화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에서 학교 내 비주류 학생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최근작 <원더 Wonder>에서는 주인공 어기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 모두가 내밀한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 인종, 학력, 직업, 경제력 등 외형적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다양한 변수에 의해 정상과 비정상,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고 이분화된 구조 속에서 영원히 안정적인 것은 없다. 상황이 바뀌면 우리는 모두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기가 헬멧을 벗고 낯선 세상에 첫발을 내딛던 날, 그의 선생님 브라운은 칠판에 이달의 교훈을 적는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에는 친절함을 선택하라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기는 이 말을 여러분에게 다시 전한다. “친절하세요. 당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은 저마다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담벼락에 화분을 하나 두어야겠다. 평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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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9-03 12:20:57
하고 싶은 말이 뭔 지 모르겠어요. 어쩌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