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화 작가는 화합하지 못하는 사회를 향해 "불편해도 대화하고 생각하자"고 말한다. 

지난 8월 23일 오후 7시. 태풍 ‘솔릭’ 경고문자가 청중들의 스마트폰으로 계속 들어왔다. 하지만 박선화 작가의 ‘남자에겐 보이지 않아’(메디치 출판사)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린 50+서부캠퍼스에 모인 이들은 태풍 따윈 문제가 되지 않은가 보다. 박 작가는 LG그룹 계열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감각 있는 여성'이다. 페이스북에서 사회현상에 대한 차분하지만 똑 떨어지는 그의 일갈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청량감을 주고 있다. 그의 생각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 여전히 남녀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사회를 향해 그는 "불편해도 이제는 대화하고 생각해 자"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개는 무엇일까요?” 

30여명의 청중을 향해 박 작가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어진 답, "편견입니다."

그는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 편견이라며, 심리학적으로는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편견에 대한 박 작가의 생각이 이어졌다. 

"편견은 세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할 때 커진다고 봅니다. 또한 지식이 많더라도 상상력이나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역시 편견이 증가합니다. 그래서 삶의 내 외부 균형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오만과 자만심이 높을수록 커집니다. 그리고 가장 큰 편견은 '나는 절대 편견이 없다'고 믿는 것이죠. "

그는 편견이 꼭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으며, 성 역할 고정 관념을 보면 남성도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는 씩씩해야 해, 남자가 겁이 많아, 맞고 들어오면 혼난다, 남자가 그것도 못 하냐, 남자가 운전도 못 하냐, 남자가 무거운 것도 못 들어 등등이 모두 편견 아닐까요?” 

그는 이런 발언 모두 남성에 대한 편견이며, 실제로 부모들이 남아는 능력 개발, 여아는 외모 위주로 관심을 갖고 양육을 한다는 실 데이터를 들어 설명한다.

지난 23일 50+서부캠퍼스에 열린 강연회 후 싸인회를 하는 저자 모습

“남자가 그것도 못하냐?” 편견은 남성에게도 굴레

최근 남성들 사이에 외모치장을 중시하는 '그루밍(grooming)족'이 생겨나고 있다. 박 작가는 이에 대해 외모가 스펙이 돼버린 사회 현상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지식사회로 이행과 물리적 힘의 사용이 점차 축소되고 남녀 성 역할 고정성이 약화됐다는 점도 작용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루밍족의 출현은 한편으로는 경제력을 가진 여성이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기도 해요. 이런 변화로 인해 남성 중 일부는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경제력을 갖출 기회는 줄어드는데 여전히 남성에게 많은 책임이 부여되고 있으니까요. 이런 심리가 차별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도 하죠. 편견과 성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남녀 모두 권리와 의무를 함께 분담하는 지혜와 이기심을 버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대화하듯 차분하게 이어진 그의 강의에 청중들이 공감했다. 물론 호의적인 반응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시니어급의 한 남자 청중은 "여성도 연하의 남성을 애인으로 두면 능력자라고 평가하지 않나요? 또한 여성 상사도 성희롱을 할 수 있는데 왜 여성이 하면 문제가 안 되고, 남성이 하면 문제가 되는가?" 묻기도 했다.

박 작가는 "물론 여성 상사도 성희롱을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은 극소수고, 이런 논의를 할 때는 사회적 현상과 일반적이지 않은 개인 문제의 구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저는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휴머니스트라고 불리고 싶다"며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여성들의 인권이 많이 향상돼 남성 위에 군림하고 남성을 성희롱하고 역차별 하는 사회가 온다면 남성의 인권 향상을 위하여 힘쓸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책을 쓴 동기에 대해 굳이 남녀 문제를 다루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나이, 학력, 인종, 성별, 소수자 등 다양한 차별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어요. 남녀 문제는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차별과 편견을 극복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기 때문이죠."

“성·폭력·나이·학력·소수자 차별…남성이 차별받는다면 남성인권 도울 터”

임영라 씨(여)는 “태풍이 온다고 핸드폰으로 경고안내문자가 오는데도 이렇게 참석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그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며 “강의를 듣는 내내 ‘나도 이미 많은 차별들에 젖어있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됐고, ‘딸 아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흡족해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중년 여성은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왔는데 ‘성 차별에 대해 느끼는 온도차가 세대 간의 차이만큼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아들을 키운다는 그는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해온다는 생각도 편견 아니냐"며 "생각의 시작을 ‘여성이 약자이다’에서 출발하지 말고 ‘평등할 권리가 있는 인간의 한 축에서 시작해서 평등을 이루는 것에 방점을 두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박 작가는 이 책이 평소 이런 문제를 많이 고민해보지 않은 중년의 남성들이 많이 읽어주길 바라고 썼지만, 사실 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세대가 함께 읽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불평등을 행하는 사람도 깨달아야 하지만, 이를 겪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다시 가해자가 되기도 하니까요. 고생 많이 한 며느리가 다시 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구조 같은 것이죠." 
 
그는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쁜 뜻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폭력이 될 수 있다."(229쪽)

나의 선의가 상대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우선 깨닫고 이해하는 것. 폭력 없는 사회는 내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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