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너무 많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거나요.”

환갑을 넘은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 여성에게 돌아온 것은 냉대와 무시였다. 지난해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실버 취준생 분투기’에는 당시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62세부터 65세까지 겪은 취업 경험담을 생생하게 눌러쓴 글은 온라인에서 많은 이들의 입소문을 탔고, SNS와 커뮤니티에 공유되며 주목을 받았다.

분투기의 주인공인 이순자 작가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예순이 넘는 나이에 황혼 이혼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평생 하고 싶었던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도 진학했다. 자신 역시 청각장애가 있어 일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20년 넘게 호스피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세상에 따뜻한 사랑을 나눴다.

고단한 삶에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글쓰기에 정진한 작가는 ‘솟대문학’에 여러 시를 발표하고, 제16회 전국 장애인문학제에서 ‘순분할매 바람났네’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2021년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돼 주목을 받았으나, 얼마 뒤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이순자 유고 산문집’ 책 표지 이미지./출처=휴머니스트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이순자 유고 산문집’ 책 표지 이미지./출처=휴머니스트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이순자 작가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써내려간 글을 기록한 유고 산문집이다. 책을 엮은 유가족은 “어머니 글의 힘은 솔직함과 사랑에서 오는 듯합니다. 어머니는 결핍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나 사랑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소개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결혼 후 시어른들을 모시고 남매를 낳아 기르는 동안 한 번도 나 자신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온갖 일 다 겪으면서 그 고초가 내 몫이라 여겼다. 명절이면 100명의 손님을 치렀고, 시동생 결혼식 음식도 시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집에서 300명 손님을 혼자 치렀다. (…) 황혼이혼으로 나는 이 역할로부터 해제됐다. 남편의 퇴직금으로 지은 건물을 포기하면서까지 이혼을 택했던 이유는 오직 남편으로부터의 자유였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작가는 평생 꿈이던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었으나, 글쓰기보다 호구지책이 먼저였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취업 분투기’가 나온 배경이었다.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그는 오히려 글에만 몰두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기초생활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

작가가 자신의 평생을 통틀어 마음을 담아 눌러쓴 글들이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에 기록됐다. △열입곱에 시집와 남편을 잃고 대리모를 했으나 생의 의지와 사랑을 잃지 않은 평창 할머니의 이야기 ‘순분할매 바람났네’ △가슴으로 낳아 기른 아이들의 부모를 대신하는 언니의 삶을 그린 ‘탁란’ △젊은 시절 도움받은 기억으로 불구가 된 한 여성의 곁을 지키는 한 남자의 사연이 담긴 ‘돌봄’ 등을 만날 수 있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이순자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56쪽/ 1만5000원.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