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라이프’ 책 표지 이미지./출처=스튜디오오드리
‘엔드 오브 라이프’ 책 표지 이미지./출처=스튜디오오드리

“눈치껏 죽어라.” 어느 80대 노인에게 ‘가족들에게 들었던 가장 서운한 말’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의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취재하고 기록한 책 ‘엔드 오브 라이프’를 쓴 작가 사사 료코는 회상했다. 아직은 죽기 싫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가족이 힘들어해서 등 떠밀려 죽음을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2020년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수상한 ‘엔드 오브 라이프’는 사사 료코가  2013~2019년 7년간 재택의료 현장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 의료진을 만나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논픽션이다. 서점대상은 한 해 동안 일본에서 출간된 책 중 서점 직원들이 직접 선정하는 상으로, “올해 읽고 가장 많이 운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

책에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방문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타나베 니시가모 진료소를 방문해 의료진과 현장 곳곳을 누비며 재택의료의 실상을 경험한다.

말기 식도암 환자 기타니 시게미는 임종 전 가족들과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조개 캐기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 당일 시게미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의사에게 ‘이대로 떠난다면 오늘 저녁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지만, 그녀와 가족들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췌장암 환자 시노자키 도시히코는 병원에서 남은 시간이 2~4주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벚꽃이 흩날리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자신의 집을 사랑한 시노자키는 죽기 전 사람들을 집으로 모아 하프 콘서트를 연다.

위암 환자 모리시타 게이코는 가족들과 디즈니랜드행을 꿈꾼다. 나날이 몸 상태가 악화하는 상황 속에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러나 게이코는 ‘디즈니랜드의 매직’이라 불리는 여행에 성공한다.

생의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도 삶에 집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말기 환자라 하더라도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면 결과가 죽음일지라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책은 말한다.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유일한 정답이 없듯,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에도 절대적인 정답은 없음을, 환자다운 환자나 죽음다운 죽음 또한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의 실제 사연을 통해 증명한다.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재택의료 취재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정부의 사망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의료기관에서의 임종 비율은 77.1%, 주택 임종이 13.8%다. 환자에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집이 아닌, 의료진과 보호자가 가장 편하고 수월한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용과 효율을 아예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집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욕망은 사치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엔드 오브 라이프’는 ‘어떻게 죽는가’가 ‘어떻게 사는가’와 연결된다고 강조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나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엔드 오브 라이프=사사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378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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