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열여덟 어른의 내일을 말하다 토론회에 참가자들/출처=아름다운재단
‘MZ세대, 열여덟 어른의 내일을 말하다 토론회에 참가자들/출처=아름다운재단

“어디 근본도 없는 고아 주제에! 금쪽 같은 내 아들을 꾀어! 너같이 최하급 밑바닥 것들 돈 몇푼 쥐어주길 기다리고 있겠지. 나도 너따위에게 피같은 내돈 쏟아부을 마음 없어!”-MBC 드라마 <내 딸 금사월> 27회 중

“고아니까, 가정교육을 못받으면 물건을 훔치게 되는 거래~”-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21회 중

"고아새끼라더니 아주 그냥 쓰레기구만! 쓰레기지. 부모한테 배워 처 먹은 게 없으니 저 모양이지. 고아새끼들은 어떻게든 티가 나요. 티가 나."-KBS 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88회 중

"얼레리꼴레리 고아래요. 고아래요. 서여름은 고아래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 고아니까 너랑 놀지 말라고."-KBS 드라마 <여름아 부탁해> 30회 중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인 손자영 캠페이너는 드라마에서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오면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다. 손 캠페이너가 분석한 미디어 속 '고아' 캐릭터는 대부분 정해진 법칙에 따른다. 미디어는 고아를 범죄자나 야망에 가득찬 또는 동정을 받고 비현실적으로 긍정적인 인물로만 소비하며 편견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미디어 속 자립준비청년을 진단하고 인식개선을 모색하는 토론회 ‘MZ세대, 열여덟 어른의 내일을 말하다’를 지난 3일 진행했다. 토론회에는 미디어/언론,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신한대학교 학생들도 함께했다. 마포구에 위치한 문화공간 너나들이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아름다운재단 자립준비청년 지원 ‘열여덟 어른’ 캠페인 중 ‘손자영 미디어 인식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손 캠페이너는 2020년부터 영화·드라마에 나오는 고아 출신 캐릭터를 분석해 일명 ‘고아의 공식’ 패턴을 발견했다. 이후 미디어 패러디 일러스트, 팟캐스트, 유튜브 등 다양한 활동으로 미디어가 고아 캐릭터를 왜곡하지 않고 ‘보통의 청년’으로 그리는 것이 자립준비청년 인식개선의 출발점임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손자영 캠페이너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출처=아름다운재단
손자영 캠페이너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출처=아름다운재단

미디어, 자연스럽게 고아에 대한 편견 만들어

손자영 캠페이너는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46개 고아 캐릭터를 분석했다. 고아 캐릭터는 ▲악인을 비롯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부정적 이미지' ▲야망과 복수를 꿈꾸는 '욕망에 가득한 치열한 삶'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비현실적인 긍정을 하는 '동정과 긍정 캐릭터'로 분류됐다. 양육자와 당사자조차 미디어가 만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들도 미디어가 만든 편견을 스스로에게 덧씌우기도 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며 ‘사람들이 나를 환경의 결핍이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내가 잘못을 쉽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편견 때문에 나를 무서워할 수도 있겠다’, ‘혹시 나를 사이코패스나 범죄자라고 보면 어쩌지?’ 같은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 캠페이너는 “드라마 대사로 듣는 고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말은 우리에게 돌아와 자조적으로 또는 상대방을 공격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며 “누군가는 ‘너희들은 안그래’라고 말해주길 바랐다”고 말하며 미디어가 고아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현실을 짚었다. 

또한 신선 캠페이너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 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0%는 보육원 출신임을 밝히지 않았다. ▲괜한 편견이 생길 것 같아서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질 것 같아서 ▲불합리한 일을 당할까봐 등이 이유였다. 신선 캠페이너는 “영화 악인전의 연쇄살인마 캐릭터의 서사가 ‘가정폭력을 당해서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짧은 설명으로 범죄자 서사로 성립되는게 화가 나기도 하고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내면 그게 왜 문제인지 인지하기 못하는 경우가 많아 미디어로 인해 편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매년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2500명이 사회로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민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아쉬워요. 보육원 출신임을 밝히는 것이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신선 캠페이너

박신영 신한대학교 미디어언론학과 학생이 '미디어 속 편견의 재생산과 새로운 방향성에 관하여'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출처=아름다운재단
박신영 신한대학교 미디어언론학과 학생이 '미디어 속 편견의 재생산과 새로운 방향성에 관하여'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출처=아름다운재단

평범한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 많아져야

“당사자인 우리의 목소리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이야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를 직접 만나 본적이 없고 미디어나 매체에서만 우리를 인식하기 때문에 그런말(편견이 담긴)을 한다고 생각해요.”-손 캠페이너

캠페이너들의 발표에 이어 신한대학교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미디어언론학과 박신영, 권민지, 대관영, 김채은 학생은 ‘미디어 속 편견의 재생산’과 ‘미디어 속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 부여되는 고아라는 특징’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들은 새로운 방향성으로 ▲고아 캐릭터 단순 소비 지양 및 당사자의 어려움 해결을 위한 사례를 담은 스토리 제시 필요 ▲고아 캐릭터 구현에 대한 기준 마련 ▲고아에 대한 고정관념을 알릴 수 있는 캐릭터 제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tvN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김선호 배우가 연기한 한지평과 JTBC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손예진 배우가 연기한 차미조를 새로운 캐릭터의 예시로 꼽았다. 손 캠페이너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고아라고 놀리는 장면이 나오면 서사임을 보여주기만 하고 그냥 넘어간다”며 “이런 상황에서 교사나 어른들이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해주는 장면도 함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공감을 표했다.

이어 사회복지학과 한지현, 이서현, 서윤아 학생은 ‘미디어를 통해 사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가?’를 주제로 미디어에서 다루는 다양한 장애인 캐릭터의 변화를 다뤘다. 한지현 발표자는 “미디어가 긍정적으로 그리는 장애인 캐릭터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무조건적으로 개선한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지속적으로 등장시키는 이유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캐릭터로 '지워내고 없는 존재'로 인식되는 장애인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자립준비청년 자립지원 캠페인 ‘열여덟 어른’에 참여하는 당사자 캠페이너들의 더 많은 이야기는 유튜브 열여덟어른 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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