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평상에서 요가도 하니 재밌었어요.”
“예전 할머니 집에서 보던 물건이나 공간이 신기했어요.”
“아침에 마을 한 바퀴를 산책했더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시골에서의 하룻밤은 도시 청년들에게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이 됐다. 도시의 팍팍한 삶에 지친 사람들은 종종 시골에서의 잔잔한 삶을 꿈꾸지만 당장 실행에 옮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1박 2일, 하루 3~4시간 정도라면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전북 전주를 기반으로 농촌을 도시민을 연결하는 사회혁신 기업이 있다. ‘0과0사이’는 농촌의 여러 자원 중에서도 ‘빈집’의 가치와 가능성에 주목한다. 농촌의 빈집을 새활용해 도시민들이 농촌을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을 기획‧제공하고, 빈집의 이용 가치를 재정립하는 기록과 연구를 진행한다. 국현명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0과0사이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0과0사이는 2021년 6월 전주사회혁신센터에서 진행한 ‘요즘 것들의 사회혁신’이라는 사업을 계기로 설립됐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청년 3명이 점점 늘어가는 농촌의 빈집 문제에 공감하고 해결을 위한 실험을 해보고자 머리를 맞댔다. 앞서 도시재생 분야에서 일하며 빈 건물이나 노후 주택을 봐온 국 대표는 ‘공간’의 힘과 매력을 느껴 관련 일에 발을 담그게 됐다.
“일하면서 ‘이곳이 이렇게나 멋진 곳인데, 사람들이 모른다니. 알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관심 밖의 공간, 버려진 공간, 선입견에 갇혀버린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게 하고 싶었고, 제가 재밌게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국 대표는 빈집을 볼 때 집마다 가진 고유의 정서에 특히 마음이 갔다. 한번은 어린 시절 살던 고향에 방문했는데, 예전에 알던 이웃의 집이 빈집이 되고 그 옆집도 하나둘씩 비어가서 마을 전체가 조용해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이 떠나 버려지는 농촌의 집들도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대로 둘 순 없었다”며 문제 해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라북도는 전국 광역 지자체 중 농촌 지역 빈집 증가율이 가장 높다. 빈집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정읍시(1위), 김제시(2위), 임실군(4위), 고창군(7위), 남원시(10위) 등 도내 시군이 상위권에 포함됐을 만큼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전주 토박이인 국 대표는 일단 자신이 나고 자라 익숙한 지역부터 실험의 장으로 삼고 해결 방안을 고민했다.
조사를 위해 직접 농촌에 방문해보니 전북의 거점 도시인 전주조차 한 마을에 2~3개는 빈집으로 방치돼 있었다. 지역 주민과 인터뷰해보면 거주민 연령은 대부분 70~80대 이상 고령이었고, 50~60대 자식 세대는 지역 도심지나 다른 지역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는 빈집이 아닌 집들도 향후 10년 내로 빈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오랜 시간 방치된 빈집은 흉물스럽게 변하거나 환경이나 안전에 악영향을 주고, 범죄에 노출되는 등 문제로 이어진다. 출생률 감소, 고령화 가속화 등 현재 흐름을 볼 때 해마다 계속 늘어나는 수많은 빈집들은 사회적 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0과0사이는 무엇보다 농촌 빈집만이 가진 특징에 주목했다. 농촌 지역의 집들은 단독에 1층 주택이 대다수라 출입이 편리하고 앞마당이나 뒤뜰, 창고 같은 독립적 공간이 있다. 다세대가 같이 쓰지 않아 실사용 면적이 넓고 층간소음이나 도시소음 등에서 자유롭다. 무엇보다 산이나 들, 바다, 강 등 자연과 가까워 편안함과 개방감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0과 0사이는 소유주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자녀 집에 거주해 비어 있는 집을 ‘쉬고 있는 집’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집을 임대해 도시 청년들이나 아이가 있는 가족들에게 빌려줬다. 빈집 유형 중 쉬고 있는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나 무너져가는 집과 달리 수도, 전기, 난방, 가구 등 시설이 그대로 유지돼 이용자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골집에 잠시 머물다 간 젊은 세대들은 마당, 마루, 평상, 처마, 헛간, 샘, 장독대, 별채 등 시골집이 가진 고유의 것들을 경험하고 자연을 가까이 만나며 즐거움과 신기함, 만족감을 드러냈다. 국 대표는 “방치되기 전에 이용 가치를 높여 빈집이 되는 것을 예방하는 일도 0과0사이의 주요한 사업 목표”라며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민과 지역주민의 수요를 확인했고, 향후 수익 모델화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농촌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쳐왔다. 정착 인구를 유입해 주거하게 하거나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국 대표는 “농촌 빈집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거 외에 일이나 여가, 숙박, 판매 등 이용 목적을 폭넓게 넓히고, 지역 내에서 소비 가능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주민과 외부 민간주체가 협력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다.
그러나 지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제정된 농어촌민박법 등 규제는 사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일반 기업은 민박업을 할 수 없고 개인도 6개월 이상 거주해야만 민박 운영이 가능한데, 이러한 제약들 때문에 농어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싶은 민간 주체는 진입 자체가 어려운 탓이다.
2020년 제주에서 빈집을 활용해 숙박업을 하는 스타트업 ‘다자요’가 규제 샌드박스 회의를 거쳐 실증 특례를 받아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국 대표는 빈집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민간 기업의 진입 장벽은 낮추되, 지역 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방식으로다.
향후 0과0사이는 농어산촌 공간 기반의 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벤처로 성장을 목표로 내걸었다. 빈집의 이용 가치를 재정립해 공간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필요를 가진 이용 주체를 연결해 농어산촌 빈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현재는 빈집의 기능에 대한 연구와 아카이브 작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올해 10월에는 도심 인근 농촌 지역에서 빈집을 시간제로 대여해주는 사업도 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농어산촌의 빈집을 누구나 각자의 필요에 맞게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애정이 가는 선택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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