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대표
최경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대표

“이전엔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순간 이런 행동이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저의 이런 설명이 아이를 어떤 테두리 안에 가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기 위해선 큰 변화가 아니라 그냥 ‘시간’이 필요해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대표 최경화)은 '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활동을 제안하고 참여 의사를 밝힌 주민을 비롯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 3명까지 총 5명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 씩 회의를 하면서 정리한 가장 큰 문제점은 '왜 발달장애인과 지역은 연결되지 않는가'였다. 이왕이면 연결을 만드는 허브가 마을에 있었으면 했다. 그러니 지역도 잘 알고 발달장애 청년들을 잘 아는 사람들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순간 ‘우리가 그 사람들’인 것을 깨달았고 마을과 발달장애인 청년을 연결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성미산장애청년허브준비위 이미지/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성미산장애청년허브준비위 이미지/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부작을 시작하기까지 맛 본 쓴맛과 단맛들

“처음부터 '단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다만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가 있는 부모니까 아이가 성장하는 단계에 따라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만드는 것을 직접해야 했어요. 중등과정으로 진학할 시기에는 참 막막했어요. 학교 현실이 너무 뻔하잖아요.”

아이의 삶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필요했다. 자녀인 정찬씨의 성미산학교 전학을 결정하며 근처로 이사도 했다.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정찬씨의 장점을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이 이어졌다. 제자리에 물건을 꼭 둬야하고, 물이 튀어 있거나 얼룩을 참기 힘들어하는 정찬씨의 강박이 요리에서 장점으로 발휘 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화채를 만들어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나눴다. 반응이 좋았다. ‘이정찬이 요리에 진심이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후 본격적인 프로젝트로 쿠키를 만들어 교내와 근처 카페에 납품하기도 했다. 팔려도 안팔려도 좋았다. 안팔리면 남은 쿠키를 정찬씨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아했다. 최경화 사부작 대표는 “모든 대안학교가 이상적이고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와 교사가 한 학생의 삶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토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쿠키를 만들고 판매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주고 받는 경험을 만들어 줬고, 이를 통해 관계가 형성됐다. 최 대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통합은 이런 방법으로 일어나는 것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이후에도 장애인마을공동체를 통해 1년 간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주제를 공부했다. 나아가 커피를 판매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일을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오랜시간 집중이 어려운 직원들을 위해 업무시간을 조정했다.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직원에게는 스티커를 붙이는 단순한 업무부터 맡겼다. 커피를 포장하며 제품의 갯수세기를 어려워하는 직원을 위해 커피 12개를 올릴 수 있는 선을 그렸다. 

배우고 성장하며 즐거웠지만, 어쩐지 날이 갈수록 즐겁지 않았다.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그만큼 바빠졌다. 숨도 못쉬고 일을 하는 날이 많았고 주문이 밀려들어오면 밤새 일을 하기도 했다. 노닥노닥 일을 하면서 마을과의 연결을 고민하고 싶었다. ‘일’을 정의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장애인의 일'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재정의하는 고민을 이어나갔다. ‘아이들이 이 일에서 흥미과 재미를 느낄까’에 대한 질문엔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람과 만나거나 노는 것은 정말 좋아했다. 그는 “프로젝트 초반만 해도 '장애인도 연습을 통해서 능력을 향상 시키고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 왔다”며 “쫓기듯 일하다보니 문득 ‘이건 아니야, 장애인의 일자리는 그렇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모던양파' 활동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부작 활동가들/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모던양파' 활동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부작 활동가들/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부작 사부작, 즐거운 마을활동을 추구하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진행했던 것들이 일과 활동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일과 활동이 명확하게 분리 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에 대한 회의’가 시작된거에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뭔가를 생산해내는 일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부작의 활동은 발달장애 청년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림을 그리는 ‘모던양파’, 훌라춤을 추는 ‘썬샤인아놀드훌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먹고보자’ 같은 활동을 진행한다. 2018년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함께하며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핵심사업 중 하나인 ‘길동무 프로그램’도 굴곡을 거치며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대부분의 시간을 보호자와 함께 보낸다. 마을활동을 하고 닭강정을 사먹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것도 늘 보호자와 함께다. 길동무 프로그램은 발달장애 청년들의 일상에 더 많은 타인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됐다. ‘보호자 말고 다른 사람이 아이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연결을 위해 1:1 또는 동아리의 방식 등을 차용해 운영하고 있다. 사부작의 공간이 있는 함께주택협동조합 위층에 사는 청년이 텃밭을 가꾸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올해는 마포구와 성산동, 망원동, 상암동 지역을 중심으로 ‘옹호가게’를 선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옹호가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돼있는 곳이다. 발달장애가 있어도 편하게 가게를 이용할 수 있다. 옹호가게로 선정된 상가는 입구에 스티커가 붙어있다. 식당, 병원, 약국, 카페, 미용실, 핸드폰가게 등 약 50여개의 상점이 옹호가게로 선정됐다.    

"발달장애인들이 가게를 이용할 때 무엇보다 가게 주인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해요. 동네를 비롯한 옹호가게의 대표님들은 이제 정찬씨를 비롯한 발달장애 청년들이 익숙해요. 평소와 다른 상황이 생기더라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옹호가게로 선정된 상가에 스티터가 붙어 있는 모습/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옹호가게로 선정된 상가에 스티터가 붙어 있는 모습/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시간을 들인 활동으로 조금씩 변하는 우리동네

어느날 산책을 다녀온 정찬씨의 머리가 깔끔해졌다. 지금까진 항상 보호자와 함께 미용실을 다녔기 때문에 최 대표는 놀람반 감동반에 휩싸였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지갑도 안 가지고 나갔다 왔는데 어떻게 머리를 잘랐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머리를 자른 미용실을 찾아갔다.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는 곳이었다.

미용실 주인은 "직접 대화한 적은 없지만 왔다갔다 하시는 것 자주 봤어요. 그러니 아마 찾아오시지 않을까 했어요. 안오신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고요. 혼자 머리 잘하던데, 앞으로 혼자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정찬씨는 이제 미용실을 혼자 다니고 있다.

비디오를 즐겨보는 정찬씨는 동네에 단골 대여점이 있다. 어느날 대여점에 도착한 정찬씨가 큰소리를 내고 책장을 치면서 가게 안을 돌아다녔다.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와닿았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제가 경찰에 신고해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자주 오는 손님인데, 오면서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좀 기다려 보면 될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정찬씨는 원하던 비디오를 대여했다. 이런 일들이 보호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긴가민가 싶을때도 있지만 작은 변화들이 나타난다. 동네의 아이들도 이전에 한 공연을 보고 “살 빠지는 춤 추는 오빠다!”라고 하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동네를 걷고 있는 사부작 활동가들/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동네를 걷고 있는 사부작 활동가들/출처=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부작 모델 확산 위해 다양한 활동 이어갈 것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 말을 걸지 또는 저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학문적으로 공부하세요? 그렇게 하기 보단 자주 보고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잖아요. 물론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달라요. 낯설죠. 사람들은 누구나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그 담이 낮아서 금방 (낯선 것과)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래 걸리기도 하고 또 안되는 사람도 있어요.”

'연애를 글로 배웠네'라는 문장은 단편적으로 사람 간 관계의 방법과 방식을 설명한다. 관계 속에선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똑같다. 관계는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살피고 부딪쳐야한다. 사부작의 일들이 그런 것이다. 다양한 활동으로 마을은 알게 모르게 이들이 익숙해졌다. 정찬씨를 비롯한 발달장애 청년들의 삶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날이 갈수록 이전에 없던 신기한 경험이 늘고 있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사부작 사부작 즐거움을 느끼는 일에 몰입하면서 마을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연결의 힘이에요. 좀 더 자연스럽고 좀 더 신나는 방식을 고민해야죠.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같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해요.”  

하나의 연결은 더 많은 연결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사부작은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단체를 넓혀가고 있다. 마을 안에 있는 작은나무카페, 되살림가게, 마을예술창작소 릴라 등을 비롯해 인근의 옹호가게들이 점점 늘면서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또 마포장애인평생교육센터, 마포장애인복지관 등 공공과의 협업 기회도 나타나고 있다. 연대는 마을 밖에서도 이어진다. 마을축제에서 진행한 공연을 계기로 발달장애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결의대회에서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공동체의 활동이 활발한 대구 안심마을, 홍성 홍동마을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최 대표는 "'연결'을 고민하는 단체는 많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고민이 있는 이들을 모으는 활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부작은 앞으로 장애당사자가 함께하는 장애인권교육,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옹호가게 프로젝트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사부작 모델이 확산 될 수 있는 활동을 이어나간다. 또 모델 확산에 관심을 가지는 단체와의 협력도 적극 진행할 예정이다. 모델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다지는 정책제안도 계획에 있다. 오는 10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포럼을 개최할 준비를 하고있다.  

"장애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시스템만으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관계를 기반으로 한 모델을 어떻게 실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다양한 사람들과 이 고민을 나누고 싶어요. 교육, 포럼, 콘텐츠 개발 등 사부작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이전처럼 또 앞으로도 해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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