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2015)’을 보면 인터넷 의류 업체 대표가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65세 이상 시니어 인턴을 고용한다. 처음에 시니어 인턴에게 회의적이던 대표는, 시니어 인턴이 가진 각종 경험과 노하우를 발견하면서 결국 그를 신뢰하게 된다.

영화 인턴의 국내 실사판이다. 수많은 일을 경험하고, 노하우를 가진 은퇴한 시니어들을 사회적경제기업에 연결한다. 대표는 중요한 선택을 할 때나, (경험해 보지 않은)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시니어 직원에게 조언받는다.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의 제주도 워크숍. 이날 워크숍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출처=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의 제주도 워크숍. 이날 워크숍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출처=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은 은퇴한 시니어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지난 2014년 사회연대은행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시니어들이 ‘우리도 협동조합 형태로 뭔가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 미디어에서는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많아지면서 사회문제’라는 소식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이들은 “나름대로 사회에 이바지하며 경력도 쌓고 열심히 했는데 왜 우리를 '사회문제'라고 하는지. 그렇다면 문제로 지칭된 당사자가 직접 문제가 아니라는걸 증명해 보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고, 그게 현재 앙코르브라보노의 시작이 됐다. 공무원, 대기업, 은행 등 큰 규모의 조직에서 활동했던 이들로 구성된 앙코르브라보노는 ‘우리의 앙코르 삶을 프로보노로 브라보 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은퇴한 시니어들의 전문성 사회적경제기업과 연결

앙코르브라보노는 은퇴한 시니어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면서 일하게 하고, 사회적경제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니어들이 멘토링을 진행하는, 크게 두개 방식으로 나눠 진행한다.

하지만 시니어들이 일하던 기업 환경과 사회적경제기업은 업무 환경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조직 규모가 다른 것은 물론, 과거와 업무방식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박경임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시니어들은 출근 시간 10분전에는 회사에 도착해서 사무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른 직원들이) 반바지 등 비교적 편안한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고 전했다.

앙코르브라보노는 시니어들이 변화하는 기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청년들의 조직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인드 세팅’을 하고, 사회적경제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교육도 있다. 은퇴 직전 관리업무만 맡는 시니어들은 실무를 어려워하기도 해 경우에 따라 사무자동화(OA) 관련 교육도 진행했다.

사업 방식에 따라 세부적으로 담당하는 일이 다르지만 앙코르브라보노는 50+재단, 중간지원조직 등의 기관과 함께 시니어 인턴십을 진행한다. 함께하는 기관들은 재취업에 의지가 있는 시니어를 모아 교육하고, 수요가 있는 사회적경제기업을 찾아 면담하고, 직무를 세팅한다. 이후 시니어들에게는 기업을 소개해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매칭한다. 인턴십 기간 중 문제가 생기면 양자 조율하며 고용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박 이사장은 “내가 시니어 당사자라면 완전히 새로운 기업에서 일하기가 어색하고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면접이나 첫 출근할 때 동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앙코르브라보노는 2015년 창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 매주 월요일 정기적으로 모인다. 조합원들은 물론 인턴으로 참여했던 사람 등 앙코르브라보노와 연결됐던 사람들은 누구나 참여해도 된다. 모임에서는 지난주에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해야하는 일 등에 대해 공유하며 소통한다. 

앙코르브라보노 조합원들이 전문 코치를 섭외해 효과적으로 코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공부하기도 했다. /출처=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앙코르브라보노 조합원들이 전문 코치를 섭외해 효과적으로 코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공부하기도 했다. /출처=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경제기업에서 은퇴한 시니어들의 역할

“P2P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에 투자 전문가로 일하다가 은퇴한 A씨가 일하게 됐어요. 그 기업은 대표, 직원들이 전부 20~30대로 매우 젊은 조직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직원들도 처음부터 쉽게 다가오지 않았겠죠. 어느날 금융감독원에서 감독을 나오게 됐는데, 그 기업에서는 아무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 A씨가 흩어져 있던 자료를 모으고 지휘해 감독관에게 전달할 자료를 만들었어요. 감독관은 자료를 몇 장 읽어보고는 ‘더이상 안 봐도 되겠다(잘했다)’고 이야기 했다고 해요. 이 일로 그 기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시니어 직원이 왜 필요한지 한 번에 알게 된 거죠.”

박경임 이사장은 "기업의 (젊은)대표들은 ‘업무적으로 도움을 받았다’거나 ‘모르는걸 배웠다’며 만족해 한다"며 "가장 좋은것을 물으면 ‘인생의 선배님을 만났다’는 것을 꼽는다"고 말했다. 어떤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리거나, (경영)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던 기업 대표들이, 수많은 경험을 가진 시니어 직원들에게 어려움과 고민을 공유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덜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기업과 시니어 직원들이 서로 만족하기 위해서는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유지에 성공한 시니어들을 보면 '젊은이들이 나는 모르는 걸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기업의 빈틈을 메꾸겠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젊은 구성원들도 시니어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경임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출처=이로운넷
박경임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출처=이로운넷

“퇴직은 끝이 아니에요”

“직장을 퇴직하게 되면 당황하시죠. 어떤 분들은 ‘이제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집밖에 안나오는 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퇴직이 끝이 아니에요. 퇴직을 앞두신 분들이나, 지금 퇴직하신 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퇴직 후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시고,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교육이나 프로그램들을 잘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박 이사장은 “보통 사람들은 퇴직하면 인생을 마무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퇴직은 사회적인 기능이나 관계를 멈추는게 아니라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시기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요즘은 40대, 50대에도 퇴직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하고 똑똑하다”면서 “더구나 퇴직한 베이비부머 세대들 중에는 고학력, 고경력자들이 많아서 퇴직을 기점으로 은퇴하면 사회적으로 손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니어들이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개인적, 사회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줬으면 좋겠다”면서 “우리 조합에서 다 할 수는 없기에, 여러 곳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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