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의미를 담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활동가’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미래세대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다. 이로운넷 광주·전남 주재기자가 이 지역 활동가들의 생생한 현장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달에는 광주 일곡마을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마을활동을 경험한 양귀순 활동가를 만났다.

인터뷰 중인 일곡마을 양귀순 활동가
인터뷰 중인 일곡마을 양귀순 활동가

“일곡마을로 이사를 왔는데 우연히 지나다 이곳 한새봉 농업생태공원(이하 한새봉)에서 모심기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거예요. 대학시절 ‘농활’ 했던 경험을 살려 아이들에게 논농사 체험을 시켜주고 싶어 신청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한새봉과 인연을 맺고 활동한지가 벌써 14년이 지났네요.” 세월 계산을 하지 않고 살아온 탓에 ‘한새봉’과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된지 몰랐다는 양귀순 활동가다.

일곡마을 개구리교실에서 출발

그녀가 마을활동가로 발을 디딘 첫 단추는 14년 전 한새봉에서 논농사 체험을 하면서 친해진 엄마들과 ‘개구리교실’을 열어 공동육아를 하면서부터다. 자신의 두 아이도 키울 겸 그녀는 공동육아 전담선생님을 맡았다. 하지만 자신의 두 아이와 한 공간에서 긴 시간 동안 다른 아이들까지 돌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개구리교실이 단초가 되어 그녀는 일곡마을에서 다양한 마을활동을 경험했다. 인권마을사업을 할 때는 마을공동체 ‘일곡품앗이’ 대표로 마을을 기록하는 일들을 진행했다. 마을을 기록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공간 곳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지원금 지급 방식에 대한 고민 필요해

“인권마을사업을 할 때 다른 마을활동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사업에서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어서인지 당시 만나는 활동가들의 훈훈한 분위기를 지금도 기억해요.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은 반드시 내부 논의를 거쳤고, 그러한 과정들이 꽤 많았어요. 그때 마음 통한 활동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지요.” 

일련의 다양한 활동 경험을 통해 그녀는 지원금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순수하게 마을활동을 하는 사람과 ‘마을코디’라는 명목으로 활동비를 받는 사람과의 미세한 갈등이 마을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협치코디로 활동할 당시에도 그녀는 이 고민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활동비를 받는 마을활동가는 마음 한 켠이 늘 무겁습니다. 그만큼 책임 있게 일해야 하고 활동비를 받지 않는 마을활동가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지녀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사업에 지원금을 주는 대신 마을에 직접 지원금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협의체 등 마을의 다양한 공동체가 들어가 있는 주민조직에 줘야 합니다. 사업에 돈을 주고 있어 사업이 끝나면 코디의 존재도 사라집니다. 코디의 인건비가 사업 안에 포함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마을에 직접 지원하면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청년들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마을로 들어오는데 비전을 찾지 못해 다시 나가는 사례들이 많단다. 

“청년들이 마을에 들어와 오래 가지 않아요. 누구든 어느 마을이든 실패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실패의 경험은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데 이 한계를 넘어서기가 힘들어요. 마을에서 일할 때는 매뉴얼 대로 가기보다는 사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 자체가 성과일 수도 있는데 너무 물리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마을에서 진행되는 활동은 항상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에 물리적 성과를 빠르게 보일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일곡마을은 지난해 에너지전환마을로 지정돼 한새봉에 에너지거점 센터를 마련하고 에너지전환 마중물 배움터와 전환마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일곡마을은 지난해 에너지전환마을로 지정돼 한새봉에 에너지거점 센터를 마련하고 에너지전환 마중물 배움터와 전환마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전환

양귀순 활동가가 일하는 거점공간 한새봉은 일곡마을의 허파와도 같은 공간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논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생태적 관점에서 상당히 매력 있는 공간이다. 

작년, 일곡마을은 광주시사업 에너지전환마을로 지정돼 한새봉에 에너지거점 센터를 마련했다. 6㎾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이곳 방문자센터 등 공원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하고 있다. 또 에너지전환 마중물 배움터와 전환마을 학교도 운영 중이다.

“에너지전환을 전기공학으로 바라볼 것인가, 인문학적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생각을 조금만 비틀면 모든 것이 다 에너지인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열정도 에너지이지요. 사실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을 주민들이 만들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쉽게 실천하는 일들을 찾는 게 필요해요. 마을에서 주민들이 에너지를 전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전기는 적게 쓰고 비닐봉지는 용기로 대체하여 안 쓰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즉 미니멀라이프가 마을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마을에서 실천하는 에너지전환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활동가들이 지탱할 수 있는 자율적 학습동아리

그녀의 이런 인문학적 사고는 2년 전 책모임을 통해 더욱 견고해졌다. 책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다 보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단다. 무조건 마을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나누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요즘 그녀가 갖는 생각이다. 

“처음 4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6명이 학습동아리 형태로 하고 있는데 바쁜 날은 새벽 6시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그만큼 이 활동이 재미있고 보람 있어요.”

책모임을 하면서부터 그녀는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 작성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드는 생각을 적는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적으면서 다시 들여다보면 해결점이 보이기도 해요.”

그녀는 마을에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제까지 그런 기반활동이 없다보니 마을에서 지탱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은 활동가가 마을을 위해 힘써준 덕에 마을은 많이 변화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사업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점검의 시기인 것 같아요. 그동안 했던 일들이 잘 가고 있는지, 마을에서 왜 이 일들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어요.”

동네 아이들의 생태학습장인 일곡마을 한새봉. 
동네 아이들의 생태학습장인 일곡마을 한새봉.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 던지기를 마다하지 않은 일곡마을 양귀순 활동가. 그녀가 있기에, 그리고 주변의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활동가들이 있기에, 오늘도 동네 유치원 꼬마들은 개구리논 논둑길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 한새봉 개구리논에 놀러온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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