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준 전국 주택 1852만채 중 빈집은 8.2%에 해당하는 151만 1300여채다. 5년 전인 2015년 106만 9000채와 비교하면 빈집이 41.4%나 늘어났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산하 연구기관 ‘토지주택연구원’은 올해 3월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며 “민관이 협력해 빈집을 적극 활용할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년 이상 빈집도 38만 7300채로, 전체 빈집의 25.6%를 차지했다. 4집 중 1집은 1년 넘게 방치됐다는 뜻이다. 빈집은 동네 경관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지역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한다. 문제는 출생률 감소와 고령화 가속화 등 현재 흐름을 감안할 때, 향후 빈집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20일 오후 2시 전북 전주대학교 스타센터 온누리홀에서 열린 ‘제25차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의 참석자들의 모습./출처=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일 오후 2시 전북 전주대학교 스타센터 온누리홀에서 열린 ‘제25차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의 참석자들의 모습./출처=과학기술정책연구원

지역 소멸 시대를 맞아 빈집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실험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0일 오후 2시 전북 전주대학교 스타센터 온누리홀에서 열린 ‘제25차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에서는 ‘지역소멸에 대응해 빈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이날 행사는 전주대학교,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최하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리빙랩네트워크, 전북리빙랩네트워크, 전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 주관했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은 행사를 후원했다.

빈집은 특별시나 광역시 등 대도시보다 전라도, 강원도, 제주도 등 지방의 소도시로 갈수록 더 많다. 특히 인구가 급감하는 농촌의 경우 빈집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빈집이 생기는 이유는 △부모의 사망 후 상속받았으나 거주하지 않음 △노환으로 자녀 집이나 요양병원에 거주 △생활 여건 악화로 타지역으로 이주 등이 꼽힌다.

전북 전주에서 활동하는 사회혁신 단체 ‘0과0사이’는 농촌의 방치된 빈집에 주목해 이를 새활용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시 청년들이 시골의 삶을 경험해보는 ‘웰컴투 사이집’, 농촌 집을 시간제로 빌려서 체험하는 ‘놀고먹공-가’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 국현명 0과0사이 대표는 “농촌의 빈집을 단지 주거의 기능만 수행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머물면서 일하고 놀고 쉬고 즐기는 공간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촌의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국 대표는 크게 4가지 의견을 제안했다. 먼저 빈집이 낙후돼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막고, 정부가 활용도‧안전등급에 따라 인증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민간 주체들이 쓸만한 빈집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정주 인구 외에도 체류 인구가 빈집을 쓸 수 있도록 이용 주체를 다각화하는 방식도 언급했다.

'농촌의 빈집문제 실태와 이용가치'를 주제로 발표한 국현명 0과0사이 대표(왼쪽)와 '지역관리회사를 통한 지역재생'를 주제로 발표한 조권능 ㈜지방 대표./출처=과학기술정책연구원
'농촌의 빈집문제 실태와 이용가치'를 주제로 발표한 국현명 0과0사이 대표(왼쪽)와 '지역관리회사를 통한 지역재생'를 주제로 발표한 조권능 ㈜지방 대표./출처=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북 군산을 기반으로 한 지역관리회사 ‘㈜지방’은 구도심 영화동의 쇠퇴한 공간들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활동을 펼친다. 앞서 전통재래시장인 영화시장은 공실률이 75%에 달했으나 민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여기에서 활동할 지역 청년들을 선발해 펍과 바, 카페 등을 열어 손님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조권능 ㈜지방 대표는 “일(WORK)과 놀기(PLAY), 살기(STAY)가 서로 연결돼야 지역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며 “지역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 콘텐츠와 사람, 부동산, 재원 등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동네를 발전시켜야 사람들이 머물게 되고 나아가 빈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산 원도심에서 빈집을 대상으로 진행한 리빙랩 사례도 공유됐다. 오광석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빈집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산업구조의 재편 등으로 초래된 사회적 현상이라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부산은 대도시이지만 원도심 구역에서는 공‧폐가가 늘며 인구 소멸까지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부산 원도심에서 진행된 동구 초량동 ‘이바구 캠프’, 영도구 봉래동 ‘봉산마을 프로젝트’, 동구 좌천동 ‘스스로 집수리학교’ 등 실험을 소개했다. 마을 단위 수익 사업을 개발하거나 청년을 도시재생사로 훈련해 공동체 활동을 늘리고, 주민 스스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교육을 제공했다. 

‘지역소멸에 대응해 빈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토론에 나선 패널들./출처=과학기술정책연구원
‘지역소멸에 대응해 빈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토론에 나선 패널들./출처=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어진 토론에서는 한동숭 전주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김만석 사회적협동조합 공동체세움 이사, 박연미 이레농원 대표,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지숙 군산대 공간디자인융합기술학과 교수 등이 참여해 지역사회 도전과제로 빈집 문제 대응의 필요성과 과제를 논의했다. 

패널들은 지역에서 빈집 활용을 가로막는 현실적‧제도적 문제를 꼬집으면서도 빈집을 새로운 가치 창출의 장으로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각 등을 다양하게 조명했다. 성 위원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역 쇠퇴로 빈집 문제는 지역사회의 도전과제가 됐다”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및 사회혁신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법제화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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