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가 7~8대 있으면 비행기 예약조차 하기 힘든 경우가 부지기수에요. 식당도 마찬가지구요. 밥 먹는 건 둘째 치고 들어가는 것부터 문제니까요” - 이은실 두리함께 대표

서울 충무로에서 무장애 여행 전문기업 두리함께의 이은실 대표를 만났다. ‘무장애 여행’은 신체적 제약 때문에 관광활동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 영유아동반가족 등 여행 약자들을 위해 제공되는 여행 서비스다. 사회적기업이기도 한 두리함께는 3년 이상 경력의 여행기획자(코디네이터)들이 여행 약자들을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이동 및 안내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충무로 인터뷰 현장에서. 이은실 두리함께 대표
지난 5일 서울 충무로 인터뷰 현장에서. 이은실 두리함께 대표

‘살던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잠시 떠나는 것’이 여행이건만, 여행 약자들에게는 사전 속 단어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동’은 물론이고 어디 들어가서 식사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은실 대표는 ‘사람’이 곧 무장애 여행의 핵심자원이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보통 여행업의 기본적인 기능은 예약이다. 근데 무장애 여행은 예약이 문제가 아니다. 예약을 해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무장애 여행=인력서비스’인 셈”이라고 말하며 여행의 전 과정에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틀 후, 이 대표의 추천으로 트래블헬퍼 현장실습이 열리는 경복궁을 찾았다. 무장애 여행의 현장감을 보다 생생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트래블헬퍼란 ‘여행동반자’라고 불리는 무장애 여행 지원 전문가로 여행 약자들과 동행하며 여행 시 이동 및 안내 등 다양한 도움을 준다. 무장애 여행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두리함께와 상상우리 등 유관기관들이 나서 양성하기로 한 '현장 전문 인력'들이다. 대학생, 여행사 가이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 등 약 30여명이 교육생으로 참여했다.

현장 와보니...트래블헬퍼 없었다면...

이날 현장실습의 주제는 ‘시작장애인’과 함께하는 동반여행이었다. 교육생 2인이 한 조가 돼 한 명은 시각장애인(안대 부착) 역할을 하고 다른 한명은 트래블헬퍼로 분해 여행약자들의 이동 및 안내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시각장애인 역할을 하는 교육생은 트래블헬퍼 교육생의 팔을 살며시 잡고 이동을 시작한다. 트래블헬퍼는 반 보 내지는 한 발 앞에서 시각장애인을 리드하고 위험요소를 사전에 인지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박석을 지났더니 높은 문턱이 기다리고 있었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박석을 지났더니 높은 문턱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실습이 열리는 경복궁은 여행약자들이 이동하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다. 바닥에는 막돌을 거칠게 다듬은 박석이 울퉁불퉁 깔려있었고 구역과 구역을 지나는 문턱도 높았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계단 내려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계단 내려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계단도 문제였다. 계단 손잡이가 없는 곳에서는 트래블헬퍼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시각장애인 역할로 참여한 한 교육생은 “경복궁 계단이 참 높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계단보다 높다보니 올라갈 때에는 힘이 더 들고 내려올 때 심리적으로 더 무섭다”고 말했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교육생들이 '머리조심' 구간을 지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교육생들이 '머리조심' 구간을 지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궁궐을 돌아다니다보면 몸을 숙이고 지나가야하는 문들이 있다. 이런 경우 ‘머리조심’이라는 팻말을 써 붙여 관광객에게 사전에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이 때 트래블헬퍼가 먼저 앞장선 후 시각장애인의 팔을 문틈 위에 올려 놓아준다. 여행약자가 직접 손으로 장애물을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몸을 숙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두루마기에 대해 말로만 설명을 들은 교육생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두루마기 이미지로 방한내피(일명 깔깔이)를 골라 웃음을 자아냈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두루마기에 대해 말로만 설명을 들은 교육생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두루마기 이미지로 방한내피(일명 깔깔이)를 골라 웃음을 자아냈다

트래블헬퍼가 이동 지원만 하는 건 아니다. 현장 묘사도 트래블헬퍼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능력이다.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눈으로 볼 수 없어 소리로 설명을 듣는데, 말로만 들어서는 관광지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내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시각장애인 역할을 한 교육생은 ‘두루마기’ 설명을 듣고 난 후, 떠오르는 이미지로 군시절 입었던 방한내피(노르스름한 색깔의 방한의류, 일명 깔깔이)를 꼽기도 했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트래블헬퍼가 손에 그림을 그려주며 전시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트래블헬퍼가 손에 그림을 그려주며 전시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여행 약자가 인지에 어려움을 겪을 때, 트래블헬퍼 손으로 시각장애인 손에 그림을 그려주면 도움이 된다. 물론 당사자의 동의 하에 말이다. 무장애 여행 강사인 송임숙 사회복지사는 “트래플헬퍼의 또 하나 역할은 시각장애인분들이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해설사분들이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해준다면 트래블헬퍼는 현장 묘사 중심이다. 아까 근정전의 경우에는 내부 묘사(임금님과 신하들의 위치, 공간의 넓이 등)가 필요하고 박물관에서는 전시대상에 대한 묘사(생김새, 색깔 등)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연히 여행 서비스”...전문성이 곧 여행 약자들의 권리보장

이처럼 비장애인들은 너무도 당연하고 쉽게 누리는 것들을 여행 약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은실 대표는 여기에 ‘전문성’을 덧붙인다. 이 대표는 “비장애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것? 어렵지 않다. 식당 들어가는 것? 그냥 들어가면 된다”라고 말한 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비행기를 탄다? 어디에 연락을 해서 예약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장애인들이 타고 내릴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맛집 찾아가서 식사하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들이 그냥 가면 안 받아줄 수도 있다. 이처럼 무장애 여행은 평범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전문가들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실 대표가 5일, 충무로에서 두리함께의 창립과정부터 지금까지의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은실 대표가 5일, 충무로에서 두리함께의 창립과정부터 지금까지의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현장실습을 맡은 김도유 본부장은 “이것도 엄연히 여행 서비스”라고 강조한다. 김 본부장은 “우리는 여행을 원하는 소비자로부터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 수요를 만족시켜드려야 한다”며 “단순히 복지나 봉사 또는 시혜의 관점으로 접근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접근해서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무장애 여행=서비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덕분일까? 두리함께는 무장애 여행사로서 나름 성공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한해에만 약 5800명의 관광객을 유치했고 약 23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이른바 ‘잘 나가는 기업’이었다. 2015년, 여행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창업을 결심한지 5년이 채 되지 않아 이룩한 성과다.

회사는 제주도에 위치해 있지만 여행 상품은 제주도와 내륙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과 중국 등 해외 무장애 여행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개인보다는 단체 관광 비중이 높다. 단체 관광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주로 사회복지기관이나 장애인 단체, 자립생활센터 등에서 두리함께를 찾아온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부터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은 물론이고 노인 등 이동 약자들의 안전한 여행을 책임져왔다. 이 대표는 "작은 불편함을 겪을 수 있는 모두가 우리의 고객"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여행업계가 그랬듯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얼마전, 도약을 위한 발판에 올라섰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2022 문화·체육·관광분야 사회적경제기업 우수사례 발굴 공모전’에서 당당히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이은실 대표는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는 기분”이라며 소감을 표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무장애 여행을 이끌어오며 겪었던 수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그는 “사실 어떨 때에는 기업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사회 운동을 하는 기분”이었다며 “한번은 리모트카(휠체어 탑승객을 안전하게 승하차 시키는 도구)를 구비하지 않은 지방 공항 직원이 ‘업고 가면 되지 뭘’이라고 해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무장애 여행 인식이 개선되는 것 보며 두리함께의 사회적 가치 느껴 

이 대표에 따르면 제주도 유명 관광지 중 한 곳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가격이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코스가 전체 코스 중 40%도 안 된다. 엄연히 같은 가격을 내고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보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고 꼬집는다. “‘요양원이나 시설에 있어야지 왜 나와’ 이런 식이다. 돈을 내고 여행 서비스를 누릴 소비자라는 인식을 안 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갈 길은 멀지만 판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 느낀다. 그는 여행 약자들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한다. '여행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과 세상, 가능성을 잇는 기업'이라는 두리함께 모토가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93세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세 딸이 여행을 왔다. 당시에 장애인들이 같이 패키지 여행을 하셨는데, 이 분들이 휠체어도 밀어드리고 장애인에 대해 인식도 점점 개선되더라. 여행을 마친 후에도 연락이 와서 ‘앞으로 이 분들과 갈 수 있는 여행지라면 어디든 꼭 같이 가겠다’고 해서 감동받았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교육생들이 현장실습 마무리하고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7일, 트래블헬퍼 경복궁 현장실습. 교육생들이 현장실습 마무리하고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당장 트래블헬퍼 양성과정만 해도 인력 양성이라는 기존의 목적 외에도 무장애 여행에 대한 필요성 그리고 여행 약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인식 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 교육생은 “막상 해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오늘 눈 가리고 경복궁 다녀보니까 여행 약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더라. 우리나라도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여행 약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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