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 6월 30일 ‘ESG와 젠더’를 주제로 제3차 국제 ESG 법제 포럼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암홀에서 진행했다./출처=한국법제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 6월 30일 ‘ESG와 젠더’를 주제로 제3차 국제 ESG 법제 포럼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암홀에서 진행했다./출처=한국법제연구원

ESG와 관련해 인종과 젠더를 주제로 한 논의는 이미 국제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20년 자본시장법이 개정 됐다. 이에 따라 자본금이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하는 것을 제한하는 의무조항이 생겨 젠더와 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자본시장법 개정과 8월 시행을 앞두고 미국과 유럽 등의 사례를 살피고 다양한 관점에서 성평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6월 30일 ‘ESG와 젠더’를 주제로 제3차 국제 ESG 법제 포럼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암홀에서 진행됐다.

이날 포럼은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좌장으로 나섰으며 최유경 한국법제연구원 사회적가치법제 팀장, Julie Suk 포드햄 대학 법학과 교수, 이유정 법무법인(유) 원 변호사, Dean Fealk DLA PIPER 총괄책임파트너, 장원경 이화여자대학교 스크랜튼학부 교수, 이화령 한국개발연구원 플랫폼경제연구팀장, 송영선 한국법제연구원 전문위원이 참여했다.

최유경 팀장은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8월부터 여성사외이사 제도가 시행된다”며 “미국의 선례가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 이번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도 단편적으로 사외이사를 임명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관점에서 젠더평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하는 자리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법사회학회와 공동으로 ESG 측정을 주제로 국내학술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외에도 노동관행, 산업안전, 인권, 장애인, 지역사회기여, 청소년 등을 다루며 사회공헌 관점에서의 연구 지평을 넓혀 갈 계획이다.

출처=한국법제연구원
출처=한국법제연구원

해외는 여성할당제 및 남녀동수 제도에 논쟁 시작... 한국도 준비 필요

유럽은 성별할당제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유럽보다는 소극적이며 민간부분에서는 성별할당제를 위한 법을 찾아보기 힘든 편이다. 노르웨이는 2003년 세계 최초로 모든 공기업의 이사회가 40%이상의 여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위해 노르웨이는 공공 유한회사법을 수정했다. 해당 법안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은 상황 시정을 위한 4주의 시간이 주어지며 이후 이를 계속 위반할 경우 법원은 회사를 해산할 수 있다. 2011년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는 기업 이사회에 성별할당을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의 경우도 성별할당제의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성별 및 소수자 할당제는 ▲여성과 소수자에게 동등한 성장기회 제공 ▲다양성이 주는 기업의 수익성 향상 등의 이유가 거론된다. 특히 다양성을 위한 비즈니스로 설명되는 기업의 수익성 향상 부분이 주목받는 경향이 높다. 유럽 역시 이사회의 다양한 구성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조직이 비즈니스를 양성평등 관점으로 보는 시도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리먼 시스터즈가 있었다면, 재정혼란에 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의제가 제안되기도 했다. 또한 2007년에 진행된 McKinsey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 및 소수자 비율의 증가와 기업의 성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결과에는 집행위원회에 여성 3인 이상이 포함되어 있는 기업은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면에서 약 10% 높은 성과를 보이고 약 2배 높은 영업이익을 창출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하지만 여성할당제나 남녀동수와 관련된 제도와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 역시 등장하는 추세다. 프랑스의 경우 여성할당제 도입이 위헌판결을 받았다. 이후 법안 개정을 통해 헌법적 기반을 마련한 뒤 남녀동수제를 도입했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이사할당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최근 여성할당제에 대해 주주가 위헌을 제기해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해당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는 시각은 여성할당제의 지속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바라보고 있다. 관련해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여성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반한다는 ‘기회 균등’적인 관점과 과거부터 이어져온 여성평등과 사회적인 문제에 대응해야 하기 위해 여성할당제와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실질적인 균등’ 사이에서 논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Julie Suk 포드햄대학 교수는 “앞으로도 계속 여성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성별균형에 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적 논쟁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안과 젠더 관점이 반영된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기업은 성평등을 위한 법안을 처벌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적극적 평등실현을 위한 것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출처=Getty Images Bank
이 변호사는 “기업은 성평등을 위한 법안을 처벌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적극적 평등실현을 위한 것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출처=Getty Images Bank

국내기업, 성평등 실현보다 처벌 면책에 집중하는 경향 커

이어 이유정 법무법인(유) 원 변호사가 국내의 성평등 현황과 관련된 발제를 이어갔다. 헌법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규정하는 규범이기 때문에 국민이 헌법을 근거로 기업에게 평등한 대우를 요청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헌법의 평등권을 근거로 법률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도록 한다.

평등권에 기반해 여성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이 포함된 법률로는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이 있다. 해당 법안들은 퇴직 및 해고, 동일임금, 육아휴직 및 출산휴가 등의 사안에서 차별에 대한 처벌규정이 담겨있다. 또한 2020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본금이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은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하는 것을 제한하는 의무조항이 생겼다. 법안 개정 후 법의 적용을 받는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이 4.5%에서 5.7%로 증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내에서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상장법인 2246개 기업 중 여성임원 비율이 5.2%로 OECD국가의 여성임원 평균비율 25.6%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또한 여성 등기임원이 0명인 기업은 63.7%를 차지했다. 이 변호사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해 임원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 육아 등 여성의 라이프사이클과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여성의 임원승진이 남성에 비해 어려운 것”이라며 “기업 역시 성평등을 위한 법안에 대한 이해를 처벌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만 다루기 때문에 적극적인 평등실현을 위한 것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성평등 실현을 위한 방향으로 ▲기계적인 여성임원 증대가 아닌 여성의 성장기반 조성 ▲성별 간의 차이로 발생하는 사소한 불평등까지 포괄하는 젠더 관련 데이터 축적 및 관리의 필요 ▲단순한 여성과 남성의 비율수치에서 벗어나 임신·출산·육아 등의 라이프사이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진단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 ▲성희롱, 성폭력, 성차별에 대한 구제 절차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개선 등이 제안됐다. 

라이프사이클에 있어 여성과 남성의 결혼 비율, 출산 육아를 필요로 하는 여성의 수, 육아휴직을 필요로하는 직원의 성비, 육아휴직 후 복직하는 직원의 성비, 승진 및 주요부서에서의 성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해 다양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ESG 평가 기관들은 기업 내부고발제도의 정비 수준을 준법경영에 관한 평가항목의 중요한 지표로 보고 있다. 지속가능보고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국제기구인 GRI(Grobal Reporting Initiative)를 비롯해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미국 지속가능 회계기준 위원회),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Index) 등이 해당 정책과 절차를 중요하게 살피고 있다. 

이후 종합토론에서는 Dean Fealk DLA PIPER 총괄책임파트너, 장원경 이화여자대학교 스크랜튼학부 교수, 이화령 한국개발연구원 플랫폼경제연구팀장, 송영선 한국법제연구원 전문위원의 논의가 이어졌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