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의미를 담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활동가’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미래세대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다. 이로운넷 광주·전남 주재기자가 이 지역 활동가들의 생생한 현장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달에는 광주 농성1동에 거주하면서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고 있는 정선희 활동가를 만났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농성1동 정선희 활동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농성1동 정선희 활동가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마을활동가로 일할 수 있었던 동력은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마을 이장을 지내셨고 어머니는 새마을부녀회 활동을 하셨지요. 마을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부모님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다 보니 마을에서의 활동이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농성1동 마을활동가 정선희씨의 말이다.

봉사로 시작한 마을 활동

정선희 활동가는 2009년 새마을부녀회장의 권유로 새마을부녀회에 가입하면서 ‘내 집앞 내가 쓸기’ 사업에 처음 참여했다.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막상 하고 보니 만족스러웠다. 당시 어린 쌍둥이 자매를 키우고 있어 육아에 전념하기도 바빴지만 틈나는 대로 마을 일을 도왔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마을활동에 앞장서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주민자치조직인 주민사랑협의체 대표를 맡으면서다. 그때는 전국에서 유행처럼 벽화사업을 하던 때라 농성1동도 골목의 벽마다 그림을 그리고 아름다운 싯구를 적었다. 골목벽화 사업으로 골목에 활력이 생기고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도 다함께 모여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농성1동의 특색을 살리면서 주민들이 재미있게 참여하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 것이다.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았을 때 회원들과 함께 닭죽 나눔 봉사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았을 때 회원들과 함께 닭죽 나눔 봉사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어쩌다 도시농부 텃밭’은 마을 사랑방

“주민들이 마을에서 텃밭을 일구면 좋겠다는 데에 많은 분들이 동의를 했어요. 대부분 주민이 나이가 많은데다 농사 경험이 있어 어렵지 않을 것 같았어요. 더구나 마을이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밭을 일굴 수 있는 땅들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2015년 공동텃밭사업 ‘어쩌다 도시농부’다. 텃밭을 일군지 올해로 벌써 8년째다.

“마을에서 텃밭을 일궈 마을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에 주민들이 선뜻 도움을 주셨어요. 자신이 경작하던 텃밭 한 귀퉁이를 내어 주신분도 있고, 마늘밭을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해주신 분도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현재 마을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어쩌다 도시농부 텃밭’이다. “물론 여기서 재배한 채소들로 반찬을 만들고 김장을 해서 매년 나눔을 하고 있지요.”

‘어쩌다 도시농부 텃밭’은 농성1동의 대표 브랜드다. 이 공간을 기반으로 주민들은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생태를 이야기 한다. 몇 백억씩 들어오는 마을사업에도 크게 흔들리거나 별반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다 도시농부 텃밭’을 통해 이미 ‘지속가능한 마을’에 대한 학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작년까지 5년 동안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농성1동 코디를 하면서 행정과 주민의 가교 역할을 했다. “농성1동은 정선희 활동가 없으면 일이 안돌아간다”는 말은 그녀가 농성1동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어쩌다 도시농부 텃밭'에서 작업 중인 농성1동 주민들
'어쩌다 도시농부 텃밭'에서 작업 중인 농성1동 주민들

“어르신들이 많은 마을에서 마을활동가로 뛰어들기는 사실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세대차에서 오는 생각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지요. 저 또한 주민들에게 인정받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농성1동이 마을경진대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을 하는 등 그 가치가 알려지고 있어 그간의 노력들이 인정받는 것 같아 보람됩니다.” 

마을활동가 처우개선 필요

마을에서 활동한지 10년이 넘은 그녀에게 이제 나름의 구력도 생겼다. 그녀가 그동안 일을 해오면서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밥을 많이 먹는 것’이다. “주민과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보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소통부재로 인한 갈등은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활동가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지요. 그래서 저는 주로 많은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지요. 아무리 바쁜 사람도 밥 먹을 시간은 있잖아요.” “밥값이 많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좀 들긴 하지만 마음 편하단다. 자신을 성장시켜 준 마을 사람들의 안부를 살피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즐겁단다. 그녀가 얼마나 유쾌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하는 일들이 무조건 봉사의 형태였지만 지금은 시대도 많이 바뀌었고 마을에 대한 문화인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마을활동가들도 그 나름의 전문성을 부각시켜 주어야 하고 처우개선도 필요합니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마을에서 일하기를 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마을이 지속가능하려면 마을 안에서 인적 자원을 발굴하여 성장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을이 직장이 될 수 있다면 미래세대 아이들이 더 풍요롭게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지속가능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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