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사회적경제, 사회복지를 통칭한 공익활동 조직들은 오늘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열심이다. 세상에 산재한 부조리와 불평등, 그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해결책을 찾고, 활동을 전개하여 수혜자들의 삶을 보듬고 보살핀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아직 이만큼 선한 균형을 맞춰가는 것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가치를 지향하는 이 공익활동 조직들도 고민은 있다.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활동의 효과성, 효율성에 대해 늘 염려하고 대안을 찾으려 한다. 업력이 되었지만 여전히 건강하다고 알려진 조직의 대표자들은 가끔 이렇게 묻곤 한다. “저희가 하고 있는 사업이 실제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지, 우리가 바르게 가고 있는 게 맞는 지 궁금합니다. 일에 싸이고, 돈에 힘들고, 관계에 지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그 부분이 약해짐을 느낍니다.”

이 질문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애썼지만 돌아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어떻겠는가. 영리만을 목적으로 했던 조직보다 훨씬 더 충격이 클 것이다. 마치 조직의 활동 전체와 그 일에 매진했던 개인들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처참한 기분일 것이다. 그래서 공익활동조직이 어느 시점에 정기적으로 조직의 방향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마치 조금씩 틀어지는 소총의 클리크를 조정하여 영점을 바로잡듯. 또한 처음 공익활동에 매진하고자 할 때도 이 활동(솔루션, 사업)이 과연 원하고 바라는 진정한 사회변화를 이뤄낼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고민과 저울질이 필요하다.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나 ‘소셜 워싱(social washing)’이란 말이 있다. 그린 워싱은 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팔기 위해 ‘친환경인척’ 포장하는 사기술을 일컫는 것이라면, 소셜 워싱은 실제로는 사회 공익적이지 않는데 그런 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단체들은 버려진 재료들을 재활용하여 패션 상품을 만드는 것이 환경에 이롭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재료를 수집하고, 제작하고, 판매하면서 쓰는 에너지와 그 과정에서의 환경오염을 대체할 만큼 그 활동이 ‘친환경’적일까. 지금 내 사무실에도 친환경 행사나 환경단체 기념품으로 만들어져 배포된 ‘에코백’과 ‘머그컵’, ‘텀블러’가 쌓여 있다. 과연 사회적으로 친환경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재활용 솔루션과 활동’의 그 근거는 실제 있으며,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의 크기가 유의미한 수준인가.

해당 활동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고민’하고 ‘증명’해보자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 공익활동을 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목적했던 변화를 만들지 못하거나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구성원들의 월급을 만들기 위해’, ‘개인적 창작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일을 했다는 허무한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활동에서도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것이 돈이 아닌 가치라서 더 아프다.

엉뚱한 짓을 했다는 비난과 자기부정을 피하기 위해 사회변화를 꿈꾸는 공익활동사업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이들이 미리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고 본다.

첫째는 해당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말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조직들은 이미 알려진 솔루션이나 사업을 진행하기로 먼저 결정한 후 역으로 문제를 ‘검색’하여 사업의 필요성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노숙인이나 폐지 줍는 노인들의 삶과 실상,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그들을 돕는 설비나 지원책을 구상한다. 문제의 현실을 조사하고, 만나고, 연구해서 문제의 원인에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고 섣부른 사업 따라 하기(솔루션 카피, solution copy)를 시도하는 것이다. 문제를 확실히 알아야 해결책도 잘못 가지 않는다.

둘째는 변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실험해야 한다. 어떤 활동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가설을 준비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다양한 과정으로 실험해 보면서 검증해봐야 한다. ‘장애인 여행 사업을 통해 자존감 향상에 기여한다’라는 단체는 사업과 결과의 인과성을 설명하지 못했다. 낮은 자존감이라는 ‘문제’와 여행이라는 ‘활동’, 자존감 향상이라는 ‘성과’ 사이의 논리적 연결성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일의 순서가 자존감 향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여행을 이미 하기로 결정했고 자존감 향상이라는 좋아 보이는 목표를 가져다 붙인 것이다. 이래서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한계가 있다. 일전에 국내 최고 권위의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검증된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 없다.’고 단언했던 것은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셋째는 사업의 이면을 늘 살펴야 한다. 청년들이나 경력단절여성에게 바리스타 교육이나 요리 교육을 시켜 커피숍이나 식당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과연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일까, 실패를 체험하게 하는 것일까. 사회활동을 어려워하는 취약계층에게 자활의 기회를 준다는 사업의 성과 지표는 ‘3년 내 창업 및 자립 성공’이다. 과연 이들이 사업에서 느끼는 것은 성취감일까 패배감일까. 재활용 사업 역시 사업 과정에서의 에너지 사용과 환경오염에 관심을 가지고, 줄이는 이산화탄소와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를 비교해야 할 것이다. 사업의 밝은 면만이 아닌 어두운 면이 어떻게 얼마나 발생할 지를 살피고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 일을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살짝 덮거나 애써 외면하고 싶을 때가 생긴다. 많은 생태주택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소나무의 90% 이상이 머나먼 캐나다나 미국에서 수입한 것을 외면하거나 먼 거리에서 공수한 황토를 사용해 집을 지으면서 ‘친환경 생태 주택’을 짓고 있다고 스스로 안위한다. 솔직히 ‘생태 <자재> 주택’을 짓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친환경적인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겉으로는 감동적이고 멋진 일을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는 ‘사회적 사기꾼’이 되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다섯째, 교정해 나가야 한다. 누구나 처음부터 모두 완벽할 수 없다. 위의 글에 쓰인 사례들도 어느 특정 시기에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향후 그 노력의 결과가 본 괘도에 오를 수 있다. 사실 무서운 것은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지 잘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으니까.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모니터링과 교정 작업이다. 현재의 상황과 활동이 초기에 예정했던 것과 어느 정도 일치되고 있는지, 활동으로 인한 역효과가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 바꿔진 환경 조건에서 더 나은 방식은 없는 지를 끊임없이 체크하고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 성과 지표가 만들어져 있지만 개별 조직 활동과 그 효과성을 다 체크해낼 수 없으니 자체적인 검증과 교정 시스템이 더욱 필요하다.

활동 규모의 대소나 사회적 파급력의 크기를 떠나서 행동하는 양심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 길에 나서서 사회적 목적의식과 사명감, 열정을 가지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 다만 이들의 애씀이 먼 길 간 후 돌아서서 봤을 때 허무하지 않기 위해 ‘성찰과 살핌’이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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