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성(性)문화 만들기, "우리가 있어요!"

Q.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명섭(이하 명): 세이사회적협동조합(이하 세이) 이사장 김명섭입니다. 세이는 여성가족부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과 교육, 보호 및 지원을 주로 하는 법인이에요. 기업명인 ‘SAY’는 ‘Safeguard Always You’, ‘성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을 말하다’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취약계층 사회서비스형으로 2020년 법인이 정식 운영됐고, 보다 전문성 있게 하기 위해서 2020년 6월부터 21년 12월까지 ‘원주성폭력장애인성폭력상담소세이’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세이가 장애인 성폭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폭력예방교육을 각 시·군으로 다니다가 장애인 성폭력 사건들의 심각성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재정난으로 지난해 상담소 문을 닫게 되면서 강원도내 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다시 속초 1곳만 남게 됐는데, 18개 시·군을 모두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터라 고민과 걱정이 많아요. 

세이는 폭력예방교육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데, 특히 성교육의 경우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문 강사로 위촉된 분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폭력예방교육을 시작한 지 5년여 정도가 되니 유관기관 쪽에서 교육 의뢰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고요. 현재는 비장애인 대상 교육이 60~70%, 장애인 대상 교육이 30~40% 정도예요. 

특징적인 건 폭력예방교육도 하지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위촉받아서 행위자(가해자)들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도 함께 진행한다는 점이에요. 피해자와 행위자 둘 모두에게 필요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하고 있죠.

김옥경(이하 옥): ‘너나들이’는 순우리말이에요.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네는 사이를 말해요. ㈜너나들이성문화센터(이하 너나들이)는 허물없이 성을 이야기하면서 ‘차별 없는 세상 만들기’를 미션으로 하는 기업이에요.

10년 이상 성교육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마음 맞는 분들과 함께 '2019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 과정'을 통해 법인을 설립했고, 마찬가지로 여성가족부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았어요. 법인 설립,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등으로 활발한 교육 활동을 기대하던 차에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상품 개발이나 유튜브 채널 개설 등 여러 가지 시도로 내실을 다지는 시기를 보냈어요.

너나들이는 성문화센터를 표방하고 있어요. 교육의 대상은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교, 일반을 아우르고 있고 최근에는 마을회관들을 돌며 노인 성교육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저희가 지향하는 건 교육이라는 매개를 통해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서로 평등하게, 성 평등한 세상, 함께 더불어 가는 사회를 위한 인식개선을 이루고픈 목표를 갖고 있어요.

전세원(이하 전): 올두성교육연구소(올두) 전세원 대표입니다. 올두는 다른 두 곳처럼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으로 출발해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았고, 발달장애인 영역의 성교육을 다루는 곳이에요. 장애, 비장애 모두를 아우르거나 일부 발달장애 영역을 다루는 곳은 많지만 발달장애 영역만 다루는 성교육연구소는 전국적으로 봐도 몇 곳 되지 않아요. 그렇다고 비장애인 성교육을 안 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발달장애 아이에게 비장애 형제자매가 있는 때도 있고, 당사자 부모와 사회복지사, 특수학교 교사 및 공익요원, 특수교육 지도사, 보조교사 등 발달장애인 관련 종사자 교육도 진행하기 때문이죠. 이 밖에도 대기업이나 공기업, 교도소, 의대 등 기관 교육도 이뤄지고 있고요. 

발달장애 성교육연구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저희 둘째 아이였어요. 아이가 10살 무렵이 됐을 때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인지했고, 실현이 어려운 특수교육 대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심리 상담, 그리고 사회복지 쪽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성교육’을 하게 된 건 정말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우리 아이는 정말 안 되는 성(性)만 있는 걸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실제 발달장애 부모들조차도 안 돼, 안 돼만 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통제에서 통제로의 연속선상에만 놓이게 돼요. 

올두(All Do) 기업명은, ‘다 해! 모든 걸 할 수 있어’라는 의미예요. 즐거운 성, 재미있는 성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성관계’를 조장하는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규칙’을 알려주는 거예요. 배울 기회도 주지 않으니, 의사소통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달장애 아이들도 답답하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문제행동, 도전행동’으로 나온다고 봐요. 성인이 되면 어떨까요? 올해부터 강동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로 재직하게 됐는데, 절반 이상이 발달장애 아이들이에요. 그 사이에서 교제가 이뤄지기도 하는데, 학부모들이 걱정돼서 연락하기도 해요. 그러면 기다려 달라고 하죠. 피임이나 우리 몸에 필요한 교육을 배워갈 건데, 너무 앞서가지 말자고요. 우리 아이들은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반복해서 ‘제대로’ 알려주어야 해요. 

Q. 각 기업들의 성교육 현장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옥: 너나들이는 남녀노소 즐겁게 성을 이야기하길 바라는데, 제일 반응이 좋았던 콘텐츠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하는 콘텐츠였어요. 영화 콘텐츠를 두고 ‘예술 vs 외설’이란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를 하는 활동인데, 사춘기 자녀와 성을 주제로 대화하기 참 어렵잖아요. 이걸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접근해 보자는 취지였어요, 부부가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참여한 사례가 있는데, 오히려 초등학생 자녀가 굉장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서 흥미로웠던 적이 있어요. 전문적으로 상담을 하는 상황이 아니라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이 영화라는 매개로 성을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를 두었어요. 

또 참여형 수업도 많이 해요. ‘거꾸로 교실’이란 말, 들어본 적 있으세요?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 개념'을 착안해 만든 수업 방식인데, 교사의 주입식 교육 대신 학생들 스스로 정보를 이해해서 토론과 활동을 펼치는 수업 방식이에요. 이론적인 성 지식을 주입하기보다는 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토론과 토의로 채우는 방식으로 수업해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 강의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옷 예쁘게 입고 왔네요.”란 말이 조직문화에 따라 성희롱일 수도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럼 우리 조직문화는 무엇인지 대화하고 합의점을 도출해 볼 수 있도록 이끌어요. 서로 경계를 지키면서도 소통으로 상호 간의 이해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들을 많이 해요. 

전: 올두 또한 성교육은 소통과 관계,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여겨요. 수업 방식도 대화 형식으로 이뤄지고요. “남자, 여자 사귀는 게 뭐야?”, “데이트요!”, “데이트 중에 가끔 싸우기도 해.”, “왜요?”, “엄마, 아빠도 맨날 ‘좋아~’ 이러셔?”, “아니요.”, “그래, 다툼이 있어. 이 다툼이 때론 폭력이 될 수 있어.” 이렇게 대화로 진행돼요. 

발달장애 부모 당사자의 경우에는 사례 중심으로 진행되고요. 사회적 편견, 성인권,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유아기부터 성인이 돼서 필요한 교육 등등 단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죠. 아이들이 배움에 더디다고 해서 손 놓고 있으며 안 돼요. 비장애 아이들도 배우는 것들을 알게 모르게 자기 안에 쌓아두었다가 꺼내 쓰잖아요. 발달장애 아이들도 끊임없이 넣어주어야 꺼내 쓸 수 있어요, 똑같아요. 

‘거절’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자기결정권은 경험의 축적이에요. 성적 자기결정권에서 중요한 게 거절인데, 가장 친근한 가족에게 “뽀뽀 싫어, 하지마!”라고 아이가 말했을 때 ‘가족들이 가족인데 뭐 어때?, 내 새끼 이뻐서 그러는데’라고 생각하고 거절을 무시하면 아이 내면에는 거절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축적돼요. 가족부터 기관 종사자들에게 발달장애 아이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강조하는 까닭이에요. 오랫동안 축적되어야 발달장애인이 주도적인 자기결정권을 학습할 수 있어요. 

또 부모 상담의 경우에는 아이에게 기회를 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 아이가 대학을 가도 될까요? 연애를 해도 되는 건가요?” 성에 관련되지 않아도 여러 질문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비장애 아이였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을 왜 우리 아이들은 안 된다고 여기냐 되묻곤 해요. 아이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기회를 박탈해서, 성공이나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경험조차 주지 않는 게 맞느냐고요. 늦은 밤까지 상담이 이어질 때도 있지만, 당사자 부모의 심정을 아니까 성에 관련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돼요.

명: 세이의 경우, 선제적으로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3년여 전부터 디지털성폭력(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해 관련 교육 콘텐츠 개발에 착수했어요. 저희도 두 곳과 마찬가지로 이론식 교육을 지양하기 때문에 놀이형, 활동형 교육을 위한 활동지나 교구들을 자체 제작하고 수행할 수 있는 강사도 함께 양성했어요. 

개발하는 것만큼 지속적으로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세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발달 단계별 성교육에 대한 체계를 조금 더 세분화한 매뉴얼 작업이에요. 교육 현장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이들이 “이거 작년에도 들었는데, 올해도 똑같네요.”라고 한다는 거예요. 반복된 교육은 아이들에게 교육에 대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아무리 활동형으로 운영해도 아이들의 교육 참여도가 낮아지고, 교육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요. 

성교육 활동가도 양성하지만 실질적으로 세이가 갖춘 전문가 풀(Pool)을 갖고, 단계별로 교육을 세분화하는 매뉴얼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에요. 매뉴얼 작업이 마무리되면 각 학교 보건교사 등 교육 현장에 보급해서 잘 활용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Q. 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명: 세이사회적협동조합(이하 세이)은 강사 양성 교육 종료 후에도 계속 반복해서 기본 교육을 하고 있고, 저 스스로도 끊임없이 성 감수성을 점검하고 있어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남성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리 잡은 편견이 꽤 있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계속 끊임없이 생각의 틀과 편견을 깨고 있어요. 성교육, 폭력 예방 교육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도 하고요. 드물지만 교육 후 소송에 걸리는 경우도 봤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해요. 

옥: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요. ‘가해자’보다는 ‘행위자’란 용어를 사용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고, 성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운 부분들이 많죠. 성교육 자체도 이런 경계를 유연하게 풀어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교육 그거 다 소용없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결국 교육의 부재와 불친절성 때문이에요. 일상에서 ‘몰라서’ 발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때문에 ㈜너나들이성문화센터(이하 너나들이)도 그렇고 같은 영역의 분들이 교육의 효과도 의미도 건질 수 없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계속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그런 교육이 너무 많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라에서 내려온 성교육 지침서가 있어요. 해당 지침서를 근간으로 교육을 해야 하는 게 현행 관련 조항인데, ‘성폭력 상황을 예방하려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려면 데이트에 친구와 함께 한다’ 이런 식으로 시대와 동떨어져 있어요. 이런 부분의 개선이 시급해요.

명: 성교육과 폭력 예방교육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봐요. 성교육 시 내 몸이 소중한 것처럼 타인의 몸도 소중하기 때문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서로의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하고 타인에 대한 영역들은 반드시 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요. 이게 좀 더 확대되면 이제 폭력 예방 교육과 맞닿게 되는 거죠. 폭력이라는 게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 힘을 더 가진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무너뜨리면서 발생하는 것인데,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평등하게 바라본다면 폭력이 발생할 여지가 없어지거든요. 세이의 슬로건인 ‘성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을 말하다’는 나를 소중히 하는 성교육으로부터 평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에요. 

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제가 행동치료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성교육을 하다 보면 행동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요즘 많이 듣는 질문이 ‘말을 못 하는 친구들은 어떻게 교육하나요?’란 질문이에요. 일대 일로 그림을 갖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요. 놀이식 접근이죠. 커뮤니케이션은 꼭 말이 아니어도 돼요.

그래서 개발한 게 발달장애인 성교육 카드 ‘찾았성!’이에요. 발달장애 아동이 사춘기를 맞이하기 전 미리 알려줄 수 있는 성교육을 고민한 결과물이에요. 부모가 아이들한테 성교육을 하자 하면 무언가 매개체나 도구가 있어야 해요. 올두성교육연구소(이하 올두)가 만든 찾았성!은 생식기, 생리컵, 콘돔 등 명확한 그림카드로 이뤄져 있어요. 성을 터부시하는 분들이 보기에는 겨드랑이에 털이 나고 여성의 가슴이 커지고 하는 그림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그걸 더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여요. 그림 맞추기 게임하듯이 접하면서 게임 카드의 요소들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물건인지 재밌고 자연스럽게 습득해요. 카드를 한 장씩 돌리고 본인 카드를 설명하게 하거나 강사가 대신 설명해 주면서 쭉 한 바퀴 돌고 나면 처음보다 설명도 훨씬 잘하고 재밌어해요. 

찾았성! 카드게임을 접한 분들한테 교육 내용을 책으로 내달라는 요청을 많이 들어요. 여러 여건이 부족해 아직은 어렵다고 고사하고 있지만 대신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전국 최초 장애·비장애 통합 아동·청소년성문화센터)의 발달장애학생을 위한 ‘포괄적 성교육 매뉴얼’ 작업의 집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문을 열고 톡톡톡>이란 제목인데, 강원권에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저 하나예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임하고 있고요. 

Q. 최근에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명: 창립 멤버들의 공통된 고민이 강원도에 속초 말고 ‘성폭력피해상담소’를 한 곳 더 운영해 보자는 것이었어요. 상담소를 3년 이상 운영하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 방식을 채택했는데, 여러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돼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물론 비슷한 일을 하는 조직이 많이 있지만 사건이 발생하면 통합사례관리가 되지 못한다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어요. 비밀 보호 유지 차원도 있고, 각각의 영역이 있다 보니 사건 자체가 절대 공개되지 않기도 하고요. 

옥: 시스템적으로 하나로 연결이 안 되죠. 문제는 사건 자체는 각 기관의 영역에 연계돼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가정폭력 사건이지만 성폭력이 포함된 경우 관계 기관의 연계가 필요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죠. 

명: 어느 정도는 경계를 정비할 시기를 맞았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여성가족부 폐지 이야기가 나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기도 하고요.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얼마만큼 인정받아야 하는 일인지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충분히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반성의 여지가 있고요. 

전: 발달장애 당사자 부모로서 느끼는 사회적 사각지대를 체감하는 일이 최근에 있었어요. 엄마가 발달장애 아들을 안고 투신한 사건인데, 해당 사건 한 달 전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삭발을 감행하며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했음에도 안타까운 선택을 목도하게 된 거죠. 복지나 모든 영역에서 발달장애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요. 사회적 보호망 없이 오롯이 각 가정의 문제로 풀어야 하고 또 그렇게 치부되는 현실이 서글퍼요. 상담 시설에 상담을 요청해도 거부되거나 전문 영역이다 보니 ‘자신이 없다’며 거절당한 경험도 있어요. 

올두를 발달장애 전문 연구소로 키우고 싶다는 비전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발달장애인과 관련된 전문기관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전문성 있는 기관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혹자는 올두의 사업 분야를 틈새시장이라고도 하는데, 너무 어려운 틈새시장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교육 연구소를 운영하냐고 하면,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걸 안 순간부터 친절했던 세상이 더 이상 친절하지 않아요. 문제 행동이 발생하니까 집에만 있게 되는데, 어떤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물어보거나 상담할 수 있는 전문기관은 부재해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스스로가 당사자 부모니까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일 수 있게 나 같은 사람 하나는 이런 데 미쳐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올해 초에는 ‘사업을 접어야 하나’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조금씩 내 비전과 소신이 맞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버티고 있어요. 

Q. 기업 또는 스스로 그리고 있는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옥: 편하게 성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너나들이의 목표는 성(性)과 성교육에 대한 인식개선을 목표로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해 다양한 사례로 이야기 해보고, 공감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예전에 너나들이가 ‘완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어요. 어려움을 겪거나 고민을 나누는 상담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눈물을 흘리는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며 큰 호응을 해주었는데, ‘책’이 평소에 잘 이뤄지지 못했던 이야기들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겠다 싶어요. 곳곳에 뿌려두면 책 한 권만 있어도 동아리든 소모임이든, 또 가족이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2~3년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전: 저는 치료를 위한 발달장애인의 삶을 지양해요. 대신 아이들이 지역사회 공동체, 그러니까 커뮤니티에 속한 삶을 살길 바라요. 발달장애 부모들이 정말정말 바라는 모습이죠. 발달장애 아이들이 지역사회에 속한 삶을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세상의 인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교육의 힘이 장애 아이도 부모도, 기관 종사자와 모든 사람들을 변화로 이끌길, 그래서 세상 장애인과 사람들이 뭐든 할 수 있는 올두(All Do!)의 세상이 오길 꿈꿔요. 

명: 세이는 앞서서 말씀드린 발달 단계별 성교육 매뉴얼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매뉴얼 작업은 발달단계별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활동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활동지와 교구재까지 다 망라하고 있어요. 초등, 중등, 고등 그리고 성인까지 정성을 들여 정리하고 수많은 토론을 거치는 등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장에 배포하면 상시적으로 성교육이 이뤄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잘 완성해서 현장에 보급도 활성화하고, 지금의 세이에게는 매뉴얼 작업이 꼭 성과를 이루고픈 숙원 과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