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섬나라 피지는 국내 총생산 (GDP)의 13.3%를 화석 연료 수입에 쓴다. 태풍으로 배라도 끊기면 연료 수입에 차질을 빚어 칠흙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전기부족으로 평상시에도 많은 지역에서 하루에 3-4 번 정전이 일어나는 건 일상이다.

# 2017년 4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인근에서는 90미터 높이의 쓰레기 산이 붕괴해 최소 3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실종됐다. 쓰레기더미가 주변 민가 145채를 덮친 결과다. 희생자 대부분은 빈민층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두 나라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해결책은 하나로 모아질 수 있다. 소셜벤처 엔벨롭스가 내놓은 처방전은 신재생에너지이다.

 

깨끗한 전기도 생산하고 작물도 키우는 태양광 발전소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자연계 산학관 5층 LG소셜캠퍼스안에 자리잡은 엔벨롭스 사무실

엔벨롭스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개발 전문회사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디젤이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 이른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보급한다.

지난 7일 엔벨롭스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기후변화 대응사업의 하나로 피지에 5MW 농업공존형 태양광에너지 사업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김 선 엔벨롭스 대표

 

피지는 태양이 너무 강렬해 특정 작물을 심기가 어렵습니다.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힘들어 인근 뉴질랜드나 호주로부터 수입하고 있지요. 태양광발전소를 지으면 구조물 아래로 그늘이 생깁니다. 구조물 밑에 스프링클러와 같은 장치를 달아 습도를 조절하면 버섯이나 강황 같은 고부가가치 작물을 키울 수 있습니다. - 김선 엔벨롭스 대표

5MW급 태양광발전소는 피지주민 2만 여명이 전기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발전량이다. 발전은 특정시간대에만 이뤄지지만 에너지저장장치를 활용하면 정전의 위험 없이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 

농업공존형 태양광에너지 사업은 깨끗한 전기를 공급하고 농작물도 재배해 저개발국가의 환경을 지키고 소득증대에도 기여하는 모델이다. 100% 수입에 의존하는 디젤을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와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자국 안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쓰레기 발생을 줄여 주는 바이오매스 발전소

엔벨롭스는 요즘 인도네시아에서 생산기술연구원과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을 논의 중이다. 바이오매스 발전소는 폐목재나 볏짚 등 식물성 자원을 활용해 전기를 만드는 시설이다. 김 대표는 인도네시아가 열대우림지역으로 팜오일 산업이 발달해 부산물이 많이 버려지는 점을 주목했다.

2017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3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레기 산 붕괴 참사 현장(사진 출처: as tweeted by Azzam Ameen (BBC reporter)

“비위생적인 쓰레기 매립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쓰레기 더미가 폭우로 무너져 인명피해가 나고 침출수가 흘러들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켜 건강을 해칩니다.”

쓰레기는 매립과정에서 메탄이라는 강력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그러나 가연성 폐기물을 태워 전기를 발전시키면 메탄으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이고 쓰레기 매립양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공동창업자 윤 성 엔벨롭스 이사

남태평양지역의 국가들은 디젤발전 의존도가 70%나 됩니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만으로는 그 높은 발전량을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바이오매스처럼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저발전이 필요합니다. 바이오매스 발전은 저개발국가에선 절실한 발전 시스템이고 글로벌 관점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입니다- 공동창업자 윤성이사

엔벨롭스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스리랑카, 푸에르토리코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개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엔벨롭스는 전 세계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국가별 적합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쓰고 있다.
지역과 상생하는 발전 모델 지향

엔벨롭스란 이름은 에너지와 환경을 개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디에 어떤 형태의 발전소를 지을 것인지 기획하고 자금을 모아 발전소를 지은 뒤 전기 판매에 따른 수익을 지분에 따라 나누는 일이다.

엔벨롭스는 창업한지 5개월밖에 안된 새내기이지만 운영진들은 10여 년 전 부터 해외에서 굵직한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 많은 실력파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에너지 개발자'라고 칭하면서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창업에 도전했다.

엔벨롭스는 대표 1명에 공동창업자 4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 4명은 미국 버니지아공대에서 2년 동안 룸메이트로 지내며 '사회에 의미있는 일을 할때 함께 뭉치자'고 결의했다고 한다.

기존의 흔한 방식은 해외업무 경험이 많은 공기업 인사들이 그 나라의 장관이랄지 현지 인맥을 활용해 사업권을 따내는 브로커성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러다보니 ‘사기’ 혹은 ‘검은돈’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때론 일단 사업권부터 따고 보자는 식으로 저가입찰경쟁에 뛰어들어 부실공사의 위험성을 제공하기도 하죠.

엔벨롭스는 이런 이미지를 거둬내고 신재생에너지 개발 기획 단계부터 건설, 운영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주가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코디네이팅하는 것이 주 임무다.

개도국에서 발전소가 지속가능하려면 현지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유지관리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적개발원조(ODA)의 기금으로 지어진 많은 시설들이 설치만 하고 나서 관리가 안돼 흉물이 되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저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상생모델을 제시하고 기술이전을 통해 현지인들이 지속적으로 관리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에너지 빈곤층의 삶에 빛이 되줄 ‘솔라박스’

김 대표와 윤성 이사는 2017년 한국이 피지에 최초로 건설한 12메가와트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이들은 함께 일하며 에너지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창업 후 이를 개혁의 과제로 삼았다.

“에너지 발전사업은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금융쪽 입김이 셉니다. 꼭 전기가 필요한 지역인데 돈이 안 된다거나 국가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린 수요자 중심으로 전기가 절실히 필요한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고 그 수익은 100%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모델을 지향합니다.

엔벨롭스는 이 사업의 첫 프로젝트로 ‘솔라박스’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솔라박스는 소규모의 태양광 발전기로 자연재해로 고립되거나 개발도상국의 에너지빈곤 지역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장치다. 컨테이너형태의 태양광발전소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안에는 냉장시설을 갖춰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관해주는 구조다.

솔라박스 아이디어 (이미지제공=엔벨롭스)

남태평양의 작은 섬마을에는 아예 전기가 없거나 전기가 공급되도 정전이 자주 발생합니다. 수산자원이 풍부하지만 냉장시설이 없어 음식의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잉여수산물을 사업화하기 힘듭니다. 냉장고 부착형 태양광컨테이너는 이같은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주민들에게 새로운 생계 수단을 제공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올해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이 주관한 글로벌임팩트챌린지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싱귤래리티 대학은 10년 안에 10억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혁신사업가를 육성한다는 목표로 세워진 곳으로 구글과 나사 등이 후원하고 있다.

글로벌 임팩트 챌린지 대상 수상팀은 2달동안 실리콘밸리에 있는 싱귤래리티 대학에서 머물며 첨단 과학기술과 창업에 관해 집중 교육을 받는 특전이 주어지며 장학금도 지급된다..

전기가 없다고 생명권을 위협받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없으면 너무 불편하죠. 특히 여성이 더 힘듭니다. 전기 없이 청소, 빨래, 요리를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거의 12시간 이상을 소모해야합니다. 우린 그 삶을 전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하고 이를 통해 보장된 시간들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삶을 개선시키는 것이 목표이고 이를 깨끗한 에너지를 통해 이뤄내는 것이죠.

공동창업자인 조영재 엔벨롭스 이사는 다음달 미국 실리콘밸리로 출국한다. 글로벌임팩트챌린지 수상팀인 엔벨롭스를 대표해 2달간 싱귤래리티 대학에서 수학하며 구글이나 테슬라, 나사와 같은 세계 최고의 혁신가들과 교류할 전망이다.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의 설익은 솔라박스가 혁신가들의 협업으로 어떻게 무르익어 갈지 사뭇 기대가 된다.

 

사진 이우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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