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보통 채용 공고를 내면 지원서가 100개 정도 들어와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지원서가 50개 정도만 들어왔어요. 왜 그럴까요?” 

설립 10주년을 맞은 베어베터(공동대표 김정호, 이진희)의 이진희 대표는 최근 경험담 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왜 베어베터에 지원하는 사람의 수가 줄었을까. 이 대표는 “베어베터 말고도 발달장애인이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게 10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발달장애인들이 ‘성인이 되면 갈 데가 없다’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했는데, 이제 그보다는 덜 심각하게 느낀다. 전보다 일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이 생겼다”면서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베어베터가 '발달장애인도 일 할 수 있다'고 증명해낸 덕분이기도 하다. 베어베터는 지난 10년을 거치며 사업에서 성공하고, 세상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에 마련된 베어베터 10주년 팝업스토어에서 이진희 대표를 만났다. 멀리서 눈에 띌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던 매장에서 그는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로 반갑게 인사했다.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 사진=정재훈 기자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 사진=정재훈 기자

2012년 6월 17일, 발달장애 사원 5명이 입사한 날

지금은 발달장애인만 약 250명(비장애인 매니저까지 포함하면 300여명)이 근무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10년 전 시작은 작았다. 이 대표는 “사실 법인 설립일은 따로 있다. 6월 17일을 창립기념일로 정한 이유는 그날이 첫 번째 훈련생 5명이 입사한 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베어베터는 첫해에만 50명 정도의 발달장애인 사원을 채용했다. 비장애인들도 한 직장에서 10년을 일하기란 쉽지 않은 요즘, 초창기 함께한 사원 중 3명은 지금까지 베어베터에서 일하고 있다.

10년의 시간 동안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그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전에는 자폐성 장애인 취업률이 1%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 지역에 사는 등록 발달장애인의 30%는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등록장애인 중에 아이와 노인을 제외하고, 일할 준비가 됐다면 일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베어베터 장애 사원들이 10년간 한결같이 출근하면서 ‘발달장애인도 일 할 수 있다’는 걸 우리 사회에 보여준 결과라는 말도 덧붙였다.

베어베터는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며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그동안 기업 고객과 주로 거래하다가, 올해 초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개인 고객들에게도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베어베터를 널리 설명하고 10주년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다.

“매장 앞에 적힌 'WE MAKE THINGS TO OUR OWN RHYTHM(우리는 우리 속도대로 물건을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는 빨리 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우리의 속도대로 한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우리가 10년간 성장해서 당당해진 모습을 사회에 보여주려고 팝업스토어를 기획했어요. ‘우리 10살 생일이에요. 와서 같이 축하해요’라는 의미죠.”

“어려웠던 점이요? 늘 영업이죠”

이진희 대표에게 10년간 기업을 운영해오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는지 묻자 고민 끝에 “역시 영업”이라고 했다. 그는 “초기 장애인 연계고용 모델을 찾았을 때, 기업에서 안 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베어베터를 설립하기 전에 맺었던 네트워크를 활용해도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찾아가고,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A기업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며 연락이 왔고, 거래가 이어지면서 다른 기업들에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간혹 우리에게 ‘당신들은 자본이나 네트워크가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영업은 똑같아요. 네트워크를 통하면 그나마 만나주긴 했지만, 10곳을 찾아가도 1곳 계약이 될까 말까 했거든요. 네트워크도 중요하긴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간절하면 통하게 돼 있어요. 가만히 앉아있으면 누가 나에게 네트워크나 자원을 가져다주지 않아요.”

좋았던 일은 너무 많아서 무엇 하나 꼽기 힘들다고 했다. 굳이 하나를 말하자면 장애 사원들이 일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그는 "장애 사원 중에 말을 잘 못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명절 잘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정말 좋았다"면서 "그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기억에 남는 순간 같다"고 했다.

기존 정책을 제대로 활용한게 성공 비결

베어베터는 장애인 연계고용 부담금 감면제도를 활용해서 기업과 안정적인 B2B 거래에 집중하는 사업전략을 펼쳤다. 이 제도는 국가가 정한 장애인고용의무 기준(2022년은 상시근로자의 3.1%)을 충족하지 못해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야 하는 기업이 베어베터와 같은 장애인표준사업장과 1년 이상 계약을 맺고 꾸준히 거래하면 거래 금액의 최대 50%를 고용부담금에서 감면해주는 것이다. 베어베터에게 가격경쟁력을 안겨줬다.

고용부담금 감면율은 장애인사업장이 실제 고용한 장애사원의 숫자에 따라 결정되는데, 베어베터는 '매출 비례 고용'이라는 원칙을 통해 기업고객에게 최대 감면율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얻으면서 매출과 고용인원이 크게 늘었다. 2022년 기준 베어베터와 거래하는 기업고객만 약 500곳에 이른다. 1996년 시작됐지만 일부 기업만 이용하며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연계고용 제도가, 이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사업에 적용한 베어베터의 등장과 함께 장애인 고용의 첨병으로 거듭난 셈이다.

이 대표는 장애인고용의무제도가 있다는 것 자체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고, 특히 대기업이 제도를 충실히 지킨다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은 중증장애인 고용 전국 확산의 여정

베어베터는 최근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새로운 고용 확산 모델도 선보였다. 지난달 오픈한 ‘브라보비버 대구’는 '지분투자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여러 기업이 지분 투자해 장애인사업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일하는 장애사원을 지분율에 따라 고용인원으로 나눠서 인정받는다.

이 역시 기존에 있던 제도였지만,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서로 관련 없는 기업들이 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런데, 베어베터가 중심에 서서 10년간의 경험을 활용해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모델을 선보이자 기업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실제로 첫 실험인 '브라보비버 대구'에는 라인플러스, 매일유업, 카카오엔터프라이즈, 한국투자증권, KCENC, 카페노티드 등 수도권 10개 기업이 지분을 투자했다. (관련기사: 중증장애인 고용 문제 해결하는 전국 단위 비즈니스 모델 탄생)

이 대표는 이 모델이 자리잡으면 전국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서울은 등록된 발달장애인의 30%가 일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방은 아직 취업률이 5% 정도에요. 그리고 베어베터에 지원한 사람이 50명 정도라고 했는데, 같은 시기에 채용한 브라보비버 대구에는 100명 정도가 지원을 했어요. 지역에는 아직 발달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거죠. 어떻게 하면 지역으로 확산할 지가 앞으로 10년의 과제가 될 것 같아요."

이진희 대표가 베어베터 캐릭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정재훈 기자
이진희 대표가 베어베터 캐릭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정재훈 기자

“우리가 혼자 잘해서 된 건 아니에요”

“왜 이런 말이 있잖아요. ‘아이를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요.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매일 출근해 준 직원들이 가장 큰 일을 했고, 장애 사원들을 집에서 잘 돌봐준 가족들, 그리고 직원들이 매일 출근할 수 있게 제품을 주문해 주는 기업 고객이 없다면 못했을 일이에요.”

이진희 대표는 베어베터가 10년동안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애써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우리 회사에 대한 응원과 기도가 지금까지 베어베터를 지탱해온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년을 운영해 오면서 현재 주요 사업 모델인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 확대 외에, (발달장애인들과 관련된) 다른 사회 문제 해결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을까.

이 대표는 향후 설립 예정인 재단법인 베어베터랩스(가칭)를 통해 체육센터를 적극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단을 통해서 발달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센터를 운영하고, 특수체육을 전공한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할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를 발산할 기회도 되고, 건강을 유지하기도 좋기 때문”이라면서 “그래서 현재 추진 중인 지분투자형 표준사업장에도 별별생활체육센터(발달장애인을 위한 체육 시설)를 함께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취재 후기: 이진희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최근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와 나눈 통화도 살짝 공개했다. 초등학생 두 자녀 모두 발달장애인인데, 어떻게 키워야 이 아이들이 베어베터와 같은 곳에 취업할 수 있을지를 물어왔다는 것.

이 대표는 ▲혼자 출퇴근 가능 ▲업무지시를 이해할 만한 의사소통 ▲본인의 일하고자 하는 의욕 이라는 베어베터의 인재상을 설명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업무지시를 이해할 만한 의사소통'은 막연했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견본을 가져다 주고, '견본의 길이대로 자르세요' 라는 정도의 지시사항을 이해하고 그대로 수행할 수 있으면 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했다. 막연하게 아이의 미래를 상상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아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 것이다.

기업이 발달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일 할 준비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모습에서 이 대표의 진심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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