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구 지역 사회적경제기업들은 공공시장 개척을 꿈꾸며 유통전문 기업 무한상사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임영락 무한상사 이사장은 “공공은 우리(사회적경제)를 모르고 우리(사회적경제)는 공공을 몰랐다”는 말로 출범 당시를 설명했다.

공공기관은 사회적경제기업의 제품(서비스)에 대해 정보가 없으니 어디에, 무엇을 주문해야 할 지 잘 몰랐다. 사회적경제기업들은 공공기관이 원하는 제품(서비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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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기업 단위의 유통역량 부족...공동기업 설립으로 해결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공공기관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로 했다. 하지만 개별 기업 단위에서 공공기관과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유통 전문 인력(조직)을 두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문성과 매출 규모 등 갖춰야 할 갖춰야 할 역량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당사자기업들은 힘을 모아 공동의 유통전문 기업을 설립하기로 했다. 

무한상사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종합상사’ 역할을 했다. 과거 국제무역시장에서 활약하며 수출 신화를 써내려간 ‘상사맨’을 롤모델 삼아 지역과 전국을 누볐다. 무한상사는 직접 발로 뛰며 온오프라인 유통망을 구축한 뒤 조합원 기업들의 제품을 그 위에 태워 공공기관에 전달했다. 때로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제품을 직접 매입한 후 공공기관에 되팔기도 하고 홍보 및 프로모션 등을 통해 양 기관 사이의 거래를 주선해주기도 했다. 

“없던 시장이 열렸다”...공공시장 문 여는 데 성공한 무한상사와 경북종합상사 

21년 기준 무한상사는 자사를 통해 거래된 공공기관-사회적경제기업의 제품(서비스) 규모가 약 84억원이라고 밝혔다. 무한상사의 매출과 연계매출 모두가 포함된 수치다. 개별 사회적경제기업들의 매출도 포함됐다는 뜻이다. 임영락 이사장은 “84억은 무한상사가 번 돈이 아니다. 무한상사가 번 건 이것보다 한참 적다. 이건 함께 참여한 우리 기업들의 성과도 일부 포함한 금액”이라고 말한 뒤 “이 수치는 시장이 열린 거라고 봐야 한다. 무한상사가 교두보 역할을 하고 우리 기업들이 노력해서 얻은 시장이다”라고 설명했다. 임 이사장의 말처럼 무한상사는 공공시장의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84억 매출 중에 공공기관 상대 매출은 약 75억원으로 전체 거래규모의 90%에 육박했다. 총 69개의 기업들과 1005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모두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서비스)였다. 

2015년 설립된 경상북도사회적기업종합상사 협동조합(이하 경북종합상사)도 선도기업 역할을 톡톡히 했다. 163명의 생산자 조합원과 46명의 후원자로 구성된 경북종합상사는 21년 기준 약 2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경상북도청 25개 실/과와 유관기관 37개, 경북 도내 23개의 기초자치단체와 93개의 공공기관(경찰서⋅소방서⋅세무서⋅보건소⋅고용센터) 등이 모두 경북종합상사가 도전하고 개척한 시장이다. 주로 △상품중개 및 발주지원 △직접 조달 및 위탁 조달 △경영지원 △행사기획 등을 통해 사회적경제기업들의 판로개척에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도 △공공기관 회계부서 및 구매담당자 대상 정책설명회 진행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사업부서 설명회 △우체국 쇼핑몰 입점 지원 80개소 △e-store 36.5 입점지원 10개소 등의 사업실적을 이뤄냈다.

제2의 무한상사⋅경북종합상사를 꿈꾸며...뒤 따르는 10개의 기업들

무한상사와 경북종합상사의 성공에 이어 광역자치단체별로 종합상사 설립 붐이 일었다. 이로운넷 취재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12개의 기업(무한상사와 경북종합상사 포함)들이 지역에서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상사맨’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들 모두 지역에 위치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출자자(회원・조합원)로 참여했으며 설립 시기는 대부분 무한상사와 경북종합상사가 주목받았던 2019년에서 2020년에 몰려있다.

△경기도(사단법인 경기도 사회적경제기업 종합상사) △강원도(강원곳간 사회적협동조합) △충청남도(사단법인 충청남도사회경제연대) △경상북도(경상북도사회적기업 종합상사 협동조합) △경상남도(365공유경제 사회적협동조합) △전라남도(전남상사 사회적협동조합) △제주특별자치도(제주종합상사 사회적협동조합) △부산광역시(사단법인 부산광역시 사회적경제 유통센터) △대구광역시(무한상사 사회적협동조합), △광주광역시(가치키움 사회적협동조합)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가치플러스 사회적협동조합) △울산광역시(더불업 사회적협동조합)등 12곳으로 확인된다.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는 사회적경제기업 전용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이 별도로 존재하지만 각각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아 중간지원조직(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인천 상생유통지원센터)이 운영하고 있었다. 충청북도는 독자적인 유통채널은 물론이고 운영 중인 종합상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전라북도에서는 전라북도사회적기업유통종합상사 사회적협동조합이 작년 10월 27일 설립인가를 받아 운영 중이었지만 자체 온오프라인 유통채널과 사업실적이 확인되지 않아 목록에서 제외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별 자체 유통망 및 유통조직 현황(충청북도와 전라북도는 제외)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별 자체 유통망 및 유통조직 현황(충청북도와 전라북도는 제외)

무한상사와 경북종합상사가 그랬듯 후발주자들 역시 지역에 위치한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 대학 등을 주요타겟 삼아 영업을 진행중이다. 대전세종 지역에 위치한 가치플러스 사회적협동조합(이하 가치플러스)은 2020년 18곳의 공공기관과 우선구매 사업을 진행했다. (지방)공기업(세종시설관리공단,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철도공사 등) 8곳, 지방자치단체(대전광역시청, 대덕구청 등) 6곳, 공기업 준정부기관(국립세종수목원, 한국연구재단) 2곳, 기타공공기관(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1곳, 대학교(충남대학교) 1곳에서 가치플러스를 통해 30개 이상의 사회적경제기업 상품 약3억3000만원 가량을 구매했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수히 많은 상담과 판매전, 설명회 등도 진행한다. (사)부산광역시 사회적경제유통센터(이하 부산유통센터)는 20년 한해 1458건의 공공기관 우선구매 상담과 사회적경제기업 제품 판매전(연금이네 금요장터 등) 4회, 공공기관 우선구매 설명회(찾아가는 공공구매 설명회) 5회, 부산 사회적경제 온라인 행사(60초 첼린지, 설명회, 박람회) 10회를 열었다. 

이 사업 저 사업 욕심내면 오히려 유통역량 떨어져

상사 모델이 항상 승승장구하는건 아니다.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었다. 충남따숨상사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따숨상사)는 올해 안으로 종합상사 사업을 정리할 예정이다. 그동안 따숨상사가 운영해왔던 사업들(따숨몰 등)은 사단법인 충남사회경제연대가 맡기로 했다. 

최영준 따숨상사 이사(現나눔커뮤네케이션 대표)는 유통사업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사업을 성공시켜보고자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은 좋은데, 그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2년 하고 익숙해질 만하면 사업이 새로 바뀌니 일하는 사람들은 전문성도 쌓이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순환근무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종합상사라도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정보와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역에 위치한 일부 공기업 지역사무소들 중에는 지역의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잘 알지 못해 수도권 및 타지역 기업 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김종완 가치키움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지방정부는 비교적 지역 사경 기업들을 신경 쓴다. 근데 일부 공기업 지역 사무소들은 (지역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나라장터를 활용하려고 하지 지역에 있는 기업들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대와 협력으로 도약 발판 마련해 생태계 성장 이끌 것

지난 5월 말, 전국 상사조직 9개사가 워크숍을 열었다. 판로지원 역량강화 협력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사회적경제 판로지원 당사자 조직이 연대하고 협력해서 상호성장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9개사는 판로지원 우수사례를 적극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별⋅업종별 사회적경제기업 DB구축 △공동홍보물⋅공동브랜드 추진 △대형 유통몰 공동진입 체계 마련 등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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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기업들 단위에서도 연대와 협력은 중요하다. 최영준 나눔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사회적기업 생태계에서도 이른바 잘 나가는 기업들이 있다”며 “해당 기업들의 수익일부와 유통정보가 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들에게 공유되면 생태계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도기업들이 개별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다른 사회적경제기업들과 공동으로 판로 개척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영락 이사장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다. 임 이사장은 “무한상사가 성장한 만큼 더 많은 기업, 더 약한 기업들이 시장 진입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우리 기업들이 시장진입의 기회를 골고루, 충분히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와 우리 직원들의 당면한 과제이며 목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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