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성소수자 모임 정보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 ‘모임’의 대표에게 취재요청을 한 적 있다. 돌아온 답은 “사업 초기 단계이고 팀원들이 아직 언론 노출을 부담스러워해 어려울 것 같다” 였다. 충분히 이해갔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은 큰 결심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들을 차별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그 존재를 지워버린다. 예를 들어 흔히 남성에게 “여자친구가 있나요?”라고 묻는데, 이는 그가 동성애자, 무성애자, 범성애자일 가능성을 모두 배제한 질문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여심저격 코디’ 목록에는 남자 모델밖에 없다. 여자도 여심을 저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운 결과다. 두 가지 예 모두 이성애자들에게만 적용되는 표현이다.

프랑스 리서치 회사 입소스(IPSOS)가 2013년 16개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 동료, 친한 친구, 혹은 친척 중에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또는 트랜스젠더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한국이 4%로 가장 낮았다. ‘캐롤,’ ‘아가씨’ 등 성소수자 소재 영화들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축제는 올해로 19년이 됐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지우기’는 만연하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2014년 약 3200명의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터에서 만난 당신의 동료들은 귀하의 LGBTI 정체성을 압니까?’라는 질문에 80% 이상이 ‘거의 모른다’ 혹은 ‘아무도 모른다’고 답했다. ‘LGBTI’란 레즈비언(lesbian)·게이(gay)·바이섹슈얼(bisexual)·트랜스젠더(transgender)·인터섹스(intersex)를 줄인 말이다. 흔히 “내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다”고 말하지만,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 지인 게이는 “나는 커밍아웃하지 않은 주변인들에게 내 애인에 대해 말할 때 ‘여자친구’라고 거짓말 한다”고 토로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대상을 지워버리는 건 혐오의 한 종류다. 혐오에는 대상을 싫어하고 꺼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없던 듯 배제하는 행위까지 포함된다. 대놓고 하는 욕보다도 존재를 지워버리는 게 더 큰 상처일 수 있다. 차별과 혐오 극복에 동의한다면, 소수자들의 존재부터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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