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의미를 담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활동가’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미래세대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다. 이로운넷 광주 주재기자가 전남 지역 활동가들의 생생한 현장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달에는 광주 양림동에 거주하면서 양림동을 지키고 보존하는 활동에 앞장서는 정헌기 문화기획자를 만났다.

사회적기업 '아트주'가 위치한 광주시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언덕
사회적기업 '아트주'가 위치한 광주시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언덕

“지금은 양림동이 역사문화마을과 펭귄마을로 유명하지만 2006년까지는 그저 낙후된 구도심에 불과했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오래된 동네로 하수구 냄새가 많이 났었죠.”

처음 정헌기 대표가 양림동을 접했을 때의 인상이다. 양림동에 들어와 산지 어느덧 20년째다. 그는 양림동에서 사회적기업 ‘아트주(Artzoo)’ 대표를 맡고 있다. 아트주는 인간과 자연, 예술을 테마로 문화콘텐츠를 개발 생산하는 기업이다. 전시와 교육, 아카이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복합형 문화예술파크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옛 사직동물원 자리를 살아있는 동물원이 아닌 문화예술로 채우는 예술동물원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트주가 예술동물원을 2009년에 계획했지요. 주위사람들에게 내 계획이 어떠냐고 물어보고 다녔는데, 그 당시 그게 뭔지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이상길 원장이 좋은 생각이라며 한 번 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시작된 게 아트주 입니다.”

하지만 사직공원 전체를 예술 공원으로 채우고자 했던 목표는 잠시. 당시 시는 아트주가 하고자 하는 문화사업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화예술과 연결된 도시재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정 대표는 시 공무원들이 추진하는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의 관심이 너무나 달라 벽을 느꼈다고 한다. 사직공원을 문화예술공원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은 일부만 진행되고 중간에 접어야만 했다. 

문화콘텐츠 개발·생산하는 사회적기업 ‘아트주(Artzoo)’ 

“처음부터 아트주가 사회적기업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기업을 만들게 된 이유는 양림동에 좋은 자원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직공원 프로젝트를 접고 다시 기회를 얻은 건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언덕 인근이다. 이곳은 호남신학대학교의 사유지로 100년 전 선교사들의 사택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정 대표는 폐허나 다름없던 이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호랑가시나무창작소를 열었다. 작가를 지원하는 레지던스와 갤러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2014년 아트주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사회적기업 아트주 정헌기 대표. 그는 문화기획자라는 호칭보다 활동가라는 호칭이 더 좋다고 말한다.
사회적기업 아트주 정헌기 대표. 그는 문화기획자라는 호칭보다 활동가라는 호칭이 더 좋다고 말한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탄력적 지원 필요

“현재 레지던스 운영 비용만 한달에 600만원 정도 연 7200만원이 투자되고 있어요. 게스트하우스에서 2500만원 정도 대줍니다. 해도 나머지는 수시로 다른 사업을 통해서 돈을 벌어 계속 충당해야 해요. 사람들은 저희가 하는 일에 공적자금이 들어오는 줄 알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지원 비용에 기대서 사업을 한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업을 통해 경비를 벌어야 한다. 고충은 이뿐만이 아니다. >>

시민들이 즐기는 이 공간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공용화장실 인가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밤길 안전을 위해 밤에는 가로등을 켜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아트주가 부담한다. 정 대표는 “모든 관리 운영은 아트주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직원 인건비를 제하고도 적지 않은 고정비용이 나가니까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잡는 게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털어놨다. 

정 대표는 사회적기업 지원에 대해 탄력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 아닌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몇 년 지원되고 그 이후로는 지원이 없다보니 어떤 방법으로 헤쳐 나갈까 하는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가 목표점을 어떻게 더 잡아야 되는가도 고민이죠. 내후년인 24년이면 임대기간도 끝나고 총장이 바뀔 경우 우리가 해왔던 노력들이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이루었던 공적을 인정받아 학교 측에서 배려해준다면 지속하겠지만… ”

이 공간을 통해서 전국의 예술가들이나 해외의 예술 작가들이 광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고 갔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일들이 사회적가치에는 부합하나 사회적기업의 이익과는 별개로 작용한다는 것이 정 대표가 갖는 생각이다.

“가치 추구를 하는 단체들이 이 부분에서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저희 역시 이 부분을 겪고 있지요. 현재는 이런 가치를 사회적경제에서 평가 받을 만한 지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를 추진하는 사회적기업들은 살아남기가 쉽지 않습니다.”

숲속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모습. 사회적기업 아트주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이곳 인근은 쓰레기가 넘쳐나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기피 장소였다. 지금은 광주 양림동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숲속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모습. 사회적기업 아트주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이곳 인근은 쓰레기가 넘쳐나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기피 장소였다. 지금은 광주 양림동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미래세대와 연결할 수 있는 도시공간이어야

“도시재생 하면서 전국의 많은 마을들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새 건물을 짓는 것이 과연 도시재생일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 대표는 도시재생에 있어서도 할 말이 많다. 그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은 가치 있는 지역의 많은 공간이 그 지역 특색에 따라 개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개발됐을 때는 우리가 대만이나 일본으로 선진지 견학을 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제는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 뭘 이룬다기보다는 개념 자체를 달리 가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도시재생도 기간을 길게 잡아 장기계획을 세우고 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며 지역의 이야기 발굴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미래세대에게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남겨주어야 되는데 우리 선에서 다 부수고 개념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이라면 저는 단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손을 대지 않아야 하지요.”

정 대표가 도시공간을 대하는 방식이고, 양림동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