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소비자 모두 만족하는 공산품 직거래 플랫폼 단골공장

 

# 20년 넘게 주방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제조해온 태원산업에서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만 알음알음 쓰던 섬유탈취제가 있었다.

콩에서 추출한 탈취 성분으로 사람은 물론 반려동물에게도 안전한 제품이다. 김종원 태원산업 대표는 3년 전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상품화하진 않았다. 대형 유통사에 OEM(주문자 생산)으로 납품만 해온 터라 자신의 브랜드가 없었고 판로가 막막해 출시할 자신이 없었다.

2년 전 이 공장에 젊은 두 청년이 찾아왔다. 그들은 ‘공장의 이름을 내걸고 좋은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연결하고 싶다’며 김 대표에게 자신들의 플랫폼 '단골공장'에 첫 단골공장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팩토리얼이 운영하는 플랫폼 단골공장에는 고객이 한 곳도 없었다. 당시 변변한 홈페이지도 없고 거래 실적이 전무했다. 팩토리얼은 이미 9개 공장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품질만은 자신 있었고 청년들의 취지에 공감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소비자들에게 낯선 이름 ‘태원산업표 섬유탈취제’는 크라우드펀딩으로 한 달 동안 1420명의 고객을 모았고 2000만 원이 넘는 돈을 마련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단골공장의 1호 제품 태원산업이 만든 섬유탈취제

 

그로부터 1년... 태원산업표 섬유탈취제는 고객들의 사용 후기를 반영해 3차례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출시했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 사이 단골공장들은 20개 이상으로 늘었고 이를 찾는 단골손님도 3000 명이 넘는다.
 

40년 동안 양말 생산 외길을 걸어 온 준희어패럴 제품.

40년 동안 양말만 만들어온 공장, 특허를 4개나 보유한 국내 유일한 우산 제조 공장이 만든 명품 우산, 국내 최초로 친환경 화장실 전용 세제를 만든 사장님 등 단골공장에 참여하는 공장들의 이력은 다채롭다. 모두 그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업력과 기술을 지녔지만 유통업체의 브랜드에 가려 소비자들이 그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장인들이다.

잘 만드는 공장을 발굴해 소비자들과 연결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공장이라고 하는데 실제 가보면 공장이 아닌 곳이 있어요. 맨 마지막 단계인 포장만 해서 팔거나 공장은 해외에 있고 상표만 부착해 파는 곳들은 저희 거래 대상이 아닙니다. ” -- 홍한종 ㈜ 팩토리얼 공동대표

 

홍한종 ㈜ 팩토리얼  공동대표/사진=백선기

 

 

㈜팩토리얼은 2017년 제조공장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생활용품 플랫폼 '단골공장'을 개설했다. 단골공장의 판매 방식은 두 가지다. 기획단공(크라우드펀딩)과 바로단공(커머스)이다. 기획단공은 크라우드펀딩이라는 방식을 도입해 숨겨진 제조공장의 가치를 알리고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을 점검해보는 창구다.

공장 입장에선 소비자를 모은 뒤 생산하는 방식이라 재고 부담이 적다. 소비자의 의견이 제조사에게 바로 전달돼 품질 향상에 기여한다. 국내 산업용 마스크 생산 5위 안에 드는 진아산업의 황사마스크가 좋은 예다.
 

플라스틱 고리를 달아 끈 길이의 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든 황사마스크

“황사마스크를 사용한 고객들이 차단력은 좋지만 조임이 심해 착용에 불편함을 호소했습니다. 제조공장은 2차 펀딩 때는 고리를 달아 끈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마스크를 출시했습니다. 연결이 만들어낸 효과이지요.”

바로단공은 커머스 방식으로 제조사의 제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장과 소비자의 연결이 일회성 프로젝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단골공장에선 공장의 이름이 곧 상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상품이 출시되니 자부심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45년 동안 칫솔을 제작한 백남물산의 백민정 대표는 “입안에 넣는 제품이니 양심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제품을 생산한다”고 전했다.

 

 

단골공장을 지탱하는 힘은 품질과 신뢰다. 신뢰란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단골공장의 모든 제품에는 상세한 제품 설명서가 곁들여진다. 공장의 제조 원칙·역사·제품의 원료와 제조 과정 등이 담겨있어 제품에 얽힌 깨알 같은 지식을 함께 얻는다.

 

 

 

상품설명서에는 대표자의 기업가 정신·제조 과정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시장 조사를 하면서 제품의 출처를 확인해보고 제조 과정을 궁금해 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효능이나 사용법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원리로 기능이 작동하는지 설명해드리고 있습니다.”

비단 장점뿐 아니라 제품의 소재 상에서 오는 불가피한 오점이나 단점도 솔직하게 털어놓아 정보의 투명성을 강화했다.

 

“이렇게 숨은 장인과 소통하고 거래할 수 있는 창이 생겨 좋아요. 가습기니 치약이니 요즘 신뢰하기 힘든 물건들이 많은데 믿어보겠습니다.” -김똥당(아이디) 고객 후기

 

 

단골공장의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는 국내 물티슈 생산업체 1위인 제이트로닉스가 만든 ‘갓 생산한 물티슈’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물티슈는 펀딩 종료 후 생산에 들어가 진균검사를 마친 뒤 열흘 만에 소비자에게 도착한다. 제품 뚜껑에는 생산일자가 표시돼있다.

이 제품은 소비자에겐 참 좋은 상품이지만 생산자인 공장에겐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계속 생산하는 이유는 뭘까.
 

상품 중앙에 제조일자가 선명하게 찍힌 물티슈

“이윤이 남도록 기계를 돌리려면 최소 5만 개 이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펀딩에서는 많이 모아봤자 1만 개 이하이다 보니 기계를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죠. 하지만 이정호 제이트로닉스 대표는 ‘합리적인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중심의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단골 공장의 제품 가격은 ㈜ 팩토리얼이 아니라 제조 공장이 책정한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조공장은 스스로 가격을 매긴 경험이 적다.

“이분들은 공장을 돌리는 수량 확보가 중요한 것이지 최종 판매 가격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어차피 최종 판매가는 납품가와 상관없이 유통사에 의해 정해지니까요.”

 

100% 천연 유래 성분으로 만든 손 세정제

㈜결고은사람들이 만든 손 세정제는 천연 유래 성분으로 만들어져 브랜드를 달고 나가면 꽤 비싸게 팔릴 수 있는 제품이다. 천연계면활성제로 만든 동일 용량의 수입제품은 만 원이 넘게 팔리지만 단골공장의 제품은 5000원 선이다. 직거래로 유통의 단계가 줄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된 결과다.

공장은 조금 더 이윤을 남기면서 더욱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는 기존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믿고 사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이 같은 혁신성으로 팩토리얼은 소풍(SOPOONG)의 엑셀러레이팅 투자 프로그램 3기에도 선정됐다.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것이 아니라 거품 하나 없는 참가격에 정직한 제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판매자가 공들여 만든 제품을 적정한 가격에 사고파는 것이 결국은 정직하고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고객 후기

 

 

단골공장은 ‘농산물은 직거래하면서 공산품은 왜 못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대기업 상사맨 출신인 홍한종, 이참 공동대표는 동남아시아로 한류제품을 수출하는 플랫폼을 만들려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OEM(주문자생산)방식으로 생산된 물품의 가격은 브랜드와 포장 디자인 등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져 최종 가격이 형성된다.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유통 채널에 따라 다른 가격에 팔리더라고요.”

두 대표는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이로운 중소 제조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창업 취지를 설명했다.

단골공장은 일반 오픈마켓이 판매자들과 소비자들을 단순히 연결하는 것에 그치는데 반해 상품 기획에서 포장, 배송까지 전 공정을 책임진다.

 

 

서울 서초구 효령로 윤민창의투자재단 1층에 위치한 ㈜ 팩토리얼 사무실/ 사진=백선기

 

 

“제조공장은 직접 소비자를 대한 경험이 적습니다. 투박하다고나 할까요? 큐레이션 작업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기업의 가치를 전파하고 때로는 라벨과 용기 디자인도 함께 합니다. 배송과 고객 관리도 저희 몫이죠.”

단골공장은 제품 기획과 판매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평균 10~20%의 수수료를 받는다.

 

단골공장을 선정하는 조건은 꽤 깐깐하다.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제품 조사와 공장 탐색을 거쳐 기획이 끝날 때까지 한 달 정도 소요된다.

“우수한 품질이란 정량적인 평가는 기본이고 정성적인 평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해도 대표자분들의 진심과 열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거절한 사례도 있습니다.”

 

단골공장과 제휴한 공장지도. 올해 단골공장을 50개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단골공장의 두 대표를 만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장인정신이 깃든 숨은 공장을 찾아 밖으로 나돌기 때문이다. 이참 공동대표는 자신을 심마니라고 소개했다. 단골공장을 찾아내는 일을 산에서 산삼을 캐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단골공장은 올해 안에 50여 곳과 제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심봤다’라는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 팩토리얼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