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워진 '팹시티 캠퍼스' 모습. 간판에 '우리는 도시의 미래를 함께 만든다'고 쓰였다.

“세계 도시 인구는 점점 늘어나 2050년 전 세계 인구의 75%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다.”

최근 국제연합(UN)은 보고서를 통해 세계 도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주택, 교통, 공해, 에너지 등 도시문제도 함께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원을 소비하는 도시에서 시민 주도로 자체 생산력을 갖춘 도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팹시티(Fab City)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팹시티’의 ‘팹(Fab)’은 제작, 제조를 뜻하는 영단어 ‘Fabrication’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디지털 기기, 소프트웨어, 3D 프린터 등이 갖추어진 실험 공간인 ‘팹랩(Fab lab)’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여기에 각종 도시 문제가 결합하면서 프로젝트가 본격화했다. 특히 지역 내 생산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 정보,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졌다.

 

서울시, 7월 파리 ‘국제 팹시티 서밋’에서 국내 지자체 중 처음 동참 의사 밝혀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팹시티서밋’ 개막식에서 박원순 시장이 영상 메시지로 서울시의 참여를 알렸다.

‘팹시티 프로젝트’는 세계 도시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해 지속가능성을 확대하는 네트워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2011년 시작됐으며 회원 도시가 지역 커뮤니티, 기업 등과 협력해 지속가능한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지원한다. 현재 파리(프랑스),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보스턴(미국), 심천(중국) 등 18개 도시가 참여 중이며, 서울시가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국제 팹시티 서밋’에서 국내에서는 처음 동참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는 지속가능한 자원 순환 구조와 자체 생산력 강화를 위해 불광동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를 팹시티 지구로 선정해 여러 가지 실험을 시도하기로 했다. 오는 2054년까지 자원 순환 구조, 자체 생산력 등을 갖춰 파크 내 에너지 및 식량 자급자족률(소비율 대비 생산율)을 50% 이상 달성하는 게 목표다.

혁신파크 제작동에 자리한 ‘서울이노베이션팹랩’이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한다. 구혜빈 서울이노베이션팹랩 단장은 “팹랩에서는 도시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시민들이 모여 실험을 통해 다수의 선택지를 만드는 일을 한다”며 “3D 프린터, 레이저 가공기, 분쇄기, 용접기 등 장비를 통해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만들고, 기존 물품을 고쳐 쓰면서 자급자족을 실천해보는 것이다.

생산 소비형→데이터 교류형 전환…오픈소스 등 공유’ 통해 아이디어 발전

팹시티 프로젝트는 ‘PITO(Product In Trash Out)’에서 ‘DIDO(Data In Data Out)’ 모델로 전환을 지향한다.

팹시티 프로젝트의 지향점에 대해 구 단장은 “‘PITO(Product In Trash Out)’에서 ‘DIDO(Data In Data Out)’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파는 1유로짜리 에펠탑 모양 열쇠고리는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해온 것이다. 중국은 원재료를 수입해 제품으로 가공한 뒤 프랑스로 수출하고, 해외 관광객은 이를 기념품으로 구입해 자신의 나라로 가져간다. 이때 생기는 각종 폐기물은 다시 중국으로 모여 버려진다.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 제조, 유통, 사용, 배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엄청난 탄소가 발생하고 환경은 파괴된다. 팹시티는 이러한 생산?소비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역 내에서 제조부터 소비, 배출까지 이뤄져야 함을 주장한다.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데이터’만 서로 주고받으면 가능하다고 보는데, 데이터에는 설계도와 지식, 경험, 프로그래밍 소스코드 등 각종 정보가 포함된다.

구 단장은 “여태껏 국가들에서 내세운 글로벌화의 척도가 ‘얼마나 많은 제품을 수출했느냐’였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수출하느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은 ‘공유’의 개념에 가깝고, 특정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록한 소스코드를 무료 공개 및 배포하는 ‘오픈 소스’와도 연관성이 크다.

“어떤 아이디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요. 공유를 통해 여러 경험과 생각이 더해져 더 나은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 오픈소스로 어떤 데이터를 올려놓으면, 똑같이 모방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원작자는 재료, 크기, 성능 등을 조금씩 바꿔서 다르게 만들어보고, 그 과정을 사람들에게 다시 공유하기를 원하죠.”

서울, 인구?소비 많아 자체생산력 확보 어려워…아시아 타 도시와 연대 계획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팹시티서밋’ 행사장 바깥의 모습.

서울시는 팹시티 프로젝트의 목표인 ‘2054년까지 자급자족률 50% 이상 달성’을 이뤄낼 수 있을까. 구 단장은 “서울은 인구(990만명)가 굉장히 많고, 주로 소비가 이뤄지기 때문에 자체생산력을 갖추기 매우 어려운 도시”라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시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 단장은 “모든 자원이 밀집돼 관련 콘텐츠 생산을 빠르게 할 수 있고, 다른 도시로의 확산이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다른 지역과의 동반성장을 저해한다는 면에서 자원 집약은 장점이자 단점이다”라는 생각을 덧붙였다.

바르셀로나(160만명), 파리(230만명) 등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인구는 적지만, 관광객이 거주민보다 많아 외부에서 자원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구 단장은 “일본 가마쿠라, 대만 뉴타이페이시티 등 최근 아시아에서 팹시티 참여를 원하는 도시들이 많다”며 “주거, 식량 등 이들이 안고 있는 도시 문제가 서울과 비슷해 앞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구 단장은 팹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로우 테크’냐 ‘하이 테크냐’의 문제가 아닌 ‘슬로우 테크’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통해 무엇을 만들어 어떻게 사용할지’ 천천히, 오랜 시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왜’라는 질문이 빠진 기술은 개발해도 유용하지 않아 폐기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면서 “기술은 늘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인문학적 고민은 더 많이, 자주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양승희 이로운넷 기자
사진제공. 팹시티프로젝트, 서울이노베이션팹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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