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는 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 이동약자들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설계한 주택을 의미한다. 보통 이렇게 설명하면 약자들‘만’을 위한 주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운영을 맡은 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이하 ‘유니버설하우징’)의 이범재 이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유니버설하우징은 ‘이동약자를 위한 주택이 곧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강조한다.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 망우 전경사진/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 망우 전경사진/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지난 4월 27일 수요일, 서울 중랑구에서 유니버설하우징의 두 번째 사회주택인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 망우(이하 ‘망우’) 입주식이 열렸다. 유니버설하우징은 세대 일부를 개방해 주택 내부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주택탐방’ 시간을 마련했다. <이로운넷>도 직접 망우를 찾았다. 이동약자를 위한 디자인이 정말 모두를 위한 디자인인지 눈으로 보고 직접 만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일주일에 한번은 조카를 돌보는 삼촌의 입장에서 주택탐방 시간을 가졌다.

푸쉬카 태우고 들어가는데 출입문 문턱이 높았다면

제일 먼저 만난 유니버설디자인은 무단차 디자인이었다. 단차(段差)는 바닥의 면이 평평하지 않고 층이 졌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문턱을 확 낮추거나 제거하면 무단차 디자인이다. 유니버설하우징은 무단차 디자인을 입주민 모두가 사용하는 1층 공용 현관문은 물론이고 세대별 현관에도 적용했다. 휠체어, 유모차, 보행보조기 등 바퀴가 있는 이동수단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출입문 턱을 확 낮추거나 제거한 망우. 공용 현관문(왼쪽)과 세대별 현관문(오른쪽)/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출입문 턱을 확 낮추거나 제거한 망우. 공용 현관문(왼쪽)과 세대별 현관문(오른쪽)/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무단차 출입문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바로 조카의 푸쉬카였다. 푸쉬카는 아이들을 태우는 유아용 자동차다. 보통 어른들이 직접 밀어서 이동한다. 기자 경험상 조카와 밖을 나설 때에는 아이가 신나서 뛰어나가거나 걸어가지만, 시간이 지나 집에 갈 때가 되면 본인도 힘들었는지 안아달라고 하거나 푸쉬카에 타려고 한다. 그런데 이 때쯤 되면 삼촌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단차를 만나면 더 힘들다. 조카를 태운 푸쉬카를 힘으로 들어 올려야 출입문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두 번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뭐’ 정도 수준이겠지만, 자주 다녀보면 안다. 무단차 디자인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접이식 의자 덕에 조카 신발 신겨 줄 때 무릎 굽힐 필요 없어

세대 내부로 들어가니 현관에 설치한 접이식 의자가 눈에 띄었다. 평상시에는 접어놓고 필요시에 펴서 앉을 수 있다. 유니버설하우징은 몇몇 세대에 현관 접이식 의자를 설치했다. 이동약자들의 외출 준비와 귀가 준비를 돕기 위함이다. 가령 휠체어를 타지는 않지만 (사발)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어르신들이 신발을 신거나 벗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접이식 의자가 없다면 땅 바닥에 앉아 신발을 신고 다시 지팡이를 짚거나 부축을 받아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현관에 설치된 접이식 의자. 펼쳤을 때(왼쪽)와 접었을 때(오른쪽) 비교/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현관에 설치된 접이식 의자. 펼쳤을 때(왼쪽)와 접었을 때(오른쪽) 비교/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삼촌 기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기자는 조카와 외출 할 때 또는 집으로 돌아올 때 거의 무릎을 굽혀 조카의 신발을 신겨 주거나 벗겨주곤 한다. 하지만 당일 기자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현관 접이식 의자가 있다면 신발 신겨줄 때 무릎을 굽히지 않아도 된다. 조카가 의자에 앉기만 하면 허리만 굽힌 상태에서도 신발을 신겨 주거나 벗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실에 적용된 안전 디자인 3대장...얼마 전에 샤워하다가 넘어진 조카를 떠올리며

욕실은 미끄럼방지 패드와 안전손잡이, 접이식 의자 등 유니버설디자인이 패키지로 구성됐다. 미끄럼방지패드는 욕실 바닥에 적용돼 있었고 안전손잡이는 샤워공간과 변기 옆에 설치돼 있었다. 안전손잡이는 다리에 힘이 부족한 이동약자들이 손잡이를 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배려한 시설물이다. 접이식 의자는 일부 세대에 적용된 디자인으로, 서서 샤워하기 힘든 이동약자들이 앉아서 샤워할 수 있도록 만든 디자인이다.

변기 옆에 설치된 안전 손잡이(왼쪽)와 샤워 공간에 설치된 접이식 의자와 안전 손잡이(오른쪽)/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변기 옆에 설치된 안전 손잡이(왼쪽)와 샤워 공간에 설치된 접이식 의자와 안전 손잡이(오른쪽)/출처=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해당 공간에서는 얼마 전 조카를 씻기다가 조카가 미끄러져 넘어진 기억이 떠올랐다. 보통 유아용 욕조에서 앉힌 후 씻기곤 하는데, 지난주에는 시간이 없어 어른용 욕조에 조카를 세운 후 목욕을 시켰다. 근데 조카가 점점 가만히 있질 않았다. 결국 머리를 감기고 몸에 비누칠을 하다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었다. 만약 그 때 당시에 욕실에 안전손잡이가 있었거나 접이식 의자가 있었다면 쉽게 넘어지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형 공동주택에 다양성을 불어넣는 것도 사회주택의 역할

종합해보면 이날 입주식은 기자에게 ‘이동약자를 위한 디자인이 정말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줬다. 물론 처음 설명을 들었을 당시에는 바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카와 생활하면서 아찔했던 사고, 바랐던 디자인 등을 떠올려보니 유니버설디자인의 효용이 이동약자 뿐 아니라 기자와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사회주택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보통 사회주택은 청년⋅신혼부부 등이 안정적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시세 이하(주변시세의 80%)의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망우는 여기에 더해 주택 수요자들의 다양한 생활 편의와 필요를 담은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이범재 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 이사장은 도시형 소형 공동주택들의 다양성을 확산하는 것이 곧 사회주택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서울시 주거형태의 40%가 단독주택, 다세대, 연립 등 소형 공동주택”이라며 “소형 공동주택에 보다 다양한 생활상 편의와 필요를 담아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경제주체들처럼 민간이 공공의 마인드에 기초해서 주택 공급에 나서지 않았다면 유니버설디자인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민관협력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사회주택 공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 망우를 소개합니다]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 망우(이하 ‘망우’)는 유니버설하우징 협동조합(이하 유니버설하우징)의 두 번째 사회주택이다. 망우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으로서 토지는 서울시 등 공공이 소유하고 유니버설하우징(사회적경제주체)은 건물을 소유⋅운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청년⋅신혼부부 등이 안정적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시세 이하(주변시세의 80%)의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한다.

망우는 원룸(화장실1개) 2세대, 1.5룸(화장실1개+방1개) 29세대, 2룸(화장실1개+방2개) 6세대 총 37세대를 모집했다. 유니버설하우징은 2015년 서울시에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을 실시한 이래 역대 가장 많은 공급규모라고 밝혔다. 전세대 입주계약이 완료됐으며 22년 4월 27일 기준 17세대가 입주를 완료한 상태다. 입주계약 구성원들은 전부 청년 및 39세 미만 신혼부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정 유니버설하우징 본부장은 “일부 세대에 대해서는 이동약자들에게 우선공급의 문을 열어놨으나 최종적으로는 청년들 위주로 모집이 완료됐다”고 설명했다.

임대보증금은 8520만원부터 1억7204만원까지이며 월 임대료는 18만5천원부터 37만5천원까지다.

아직 입주완료가 되지 않아 커뮤니티 활동은 준비 단계에 있다. 김익 유니버설하우징 본부장은 “망우는 총 37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라 한 번에 입주민이 다 모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커뮤니티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텃밭 운영이나 줍깅(쓰레기 주우며 조깅), 기타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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