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 제작 프로그램

여름방학을 맞이해 소셜디자인 기술혁신랩이 진행한 ‘진공관 스피커 만들기’ 워크숍 현장.

“오늘 여러분이 만드실 거!”
문이 열리고 류재용 장인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진공관 스피커 완성본이 들려있었다. 진공관 앰프가 비치는 아크릴 덮개와 나무 외관, 잔잔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어 삼삼오오 앞에 모이게 한다. 몇몇은 핸드폰을 스피커에 블루투스로 연결해 음악을 틀어본다.
 

진공관 스피커의 매력은 부드럽고 질리지 않는 소리다.

참가자들은 곧 만들게 될 스피커 실물을 보고 신이 났다. 이날 워크숍에 참가한 ‘적정기술공방’의 함승호 대표는 어렸을 때 음악실에서 쓰던 오디오를 떠올렸다. 그는 “진공관 스피커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이전에 기술혁신랩에서 일하며 류재용 장인과 진공관 스피커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김국봉 씨는 “언니가 스피커를 탐내서 하나 만들어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1시 반쯤 모두 모인 13명의 참가자들. 스피커를 만들 준비물을 가져오기 위해 아세아전자상가 8층에 있는 장인의 사무실로 향했다. 특허증, 공구, 스피커 등으로 가득한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서니 참가자들의 이름이 적힌 쇼핑백들이 일렬로 놓여있었다. 류재용 장인이 참가자 개개인을 위한 스피커 제작 키트를 하나씩 만들어 넣어두었던 것.

랩으로 다시 돌아와 열어본 키트 안에는 자작나무 합판, 아크릴 커버, 진공관 앰프, 스피커, 스위치, LED 단자 등이 들어있었다. 참가자들은 랩에 준비된 납땜인두기, 전동드라이버, 임팩트드릴 같은 공구로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류재용 장인의 사무실 한 켠에는 진공관 앰프들이 놓여있다.

스피커 본체는 스피커실, 진공관실로 구성된다. 진공관실에서 증폭된 소리는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제작 과정으로는 먼저 고무발과 뒷판 지지대로 나무 합판을 고정시킨다. 이어 스피커실 뒷판에 부속품들과 스피커를 장착한다. 마지막으로 진공관실을 조립할 때는 좀더 조심스러운 작업이 필요하다. LED 단자, 블루투스 PCB, 진공관 등을 고정하는 과정에서 인두기, 펜치 등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 시간을 4시간 정도 계획하고 열린 워크숍이었는데, 모인 참가자들이 평소에 스피커에 관심이 많고 류재용 장인이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가르쳐줘서 그런지 다들 어려움 없이 척척 만들어나갔다.
 

류재용 장인은 테이블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참가자들을 도왔다.

“아니, 이렇게 빨리 만들면 재미가 없잖아?”

류재용 장인이 웃었다. 가장 먼저 스피커를 완성한 참가자는 공익프로그램 전문기획사 ‘그리고’의 김정현 대표. 김 대표는 기자에게도 나사를 조여보라며 드릴을 쥐어줬다. 그는 “평소에도 취미 반 직업 반으로 스피커를 만든다”며 스피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Box Interview

세운상가를 50년간 본거지로 삼았던 ‘토박이’ 류재용 장인은 자동제어 전문가이다. 스크린골프에서 공을 추적하는 시스템, 자동차 운전면허 기능시험기 등 등록한 특허만 25건이다. 이번에 3번째 워크숍을 진행한 그는 스스로를 ‘진공관 스피커 마니아’라고 부를 정도로 애정이 크다. 70이 넘은 그는 왜 진공관 스피커에 푹 빠졌을까? 몇마디를 나눠봤다.
 
사무실에서 작업 중인 류재용 장인. 책상은 온갖 공구, 부품들로 가득하다.
Q. 어떻게 진공관 스피커 제작에 애정을 갖게 됐나요?A. 아날로그로 회귀하는게 트렌드가 됐다면서요? 저도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젊을 때는 다들 진공관 스피커를 썼어요. 그 때도 진공관 스피커를 만들곤 했죠. 지금은 더 만들기 편하고 전기 효율이 높은 반도체 앰프가 개발돼서 요즘 사람들은 이를 활용한 ‘트랜지스터 스피커’를 주로 사용하죠. 저는 최근에 자동제어 일을 그만두고 취미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60만원 내고 특허청에 디자인 등록도 했어요.

Q. 워크숍을 열게 된 계기가 있나요?A. 혁신랩에서 일하던 분들이 가끔 놀러와서 음악을 듣고 가곤 했는데, “선생님, 혼자만 진공관 스피커로 듣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들을 수 있게 해요!”라며 워크숍을 제안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말 열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준비해서 시작했죠.

Q. 진공관 스피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A. 트랜지스터 스피커는 소리가 날카로워서 오래들으면 질리고 재미가 없어요. 진공관 스피커는 소리가 부드러워서 자꾸 들으면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마니아들이 많죠.

Q. 사무실 이름이 ‘KNOT LAB’이던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A. 옛날부터 기술과 관련해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이제는 ‘매듭을 짓자’는 의미로 지은 이름인데, 어쩌다보니 지금도 이렇게 일을 벌려서 하고 있네요. 허허.

Q. 무척 즐거워보이네요.A. 정말 좋아해요. 아내도 음악을 좋아해서 같이 LP판을 구하러 다니거나 오디오 전시회를 다니곤 한답니다. 그렇게 삽니다, 재미있게.

 

소셜디자인 기술혁신랩, 사회적경제의 실험실

기술혁신랩에서는 다양한 교육, 워크숍 등이 열린다.

기술혁신랩은 지난 7월 28일 진공관스피커 만들기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6가지 테마의 워크숍을 진행하는 중이다. 진공관 스피커 워크숍(12만원)을 제외한 다른 워크숍의 참가비는 모두 3천원이다. 기술혁신랩의 김민창 활동가는 “여름 프로그램을 준비하다가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이 쉽게 참가할 수 있는 적정기술 활동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청소년 및 청년들은 3주간 다양한 적정기술을 체험한다. 31일에는 십년후연구소와 20명의 참가자들이 저비용·저전력 DIY 공기청정기를 제작했다. 마을기술센터 핸즈는 3일 청소년들과 태양광 아두이노 RC카를 조립해 조종하고 독립형 태양광을 연결했으며, 10일에는 나무 LED 스탠드와 줄넘기 발전기를 제작한다. 또한 참가자들은 11일에 기묘제작소와 코딩을 활용한 원격조종 기관차를 만들고, 17일에 북한산 마을 목공방과 직접 사이드테이블을 만들며 목공을 배운다.
 

소셜디자인 기술혁신랩의 다양한 공구. 소셜디자인 기술혁신랩은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려있다.

서울시사회적경제센터가 운영하는 소셜디자인 기술혁신랩은 아세아전자상가 3층, H-창의허브 SE클라우드에 있다. 기술혁신랩은 사회적경제 업종의 생산 기술 혁신, 기술·제조 기반 주체 발굴, 협업 기반 조성 등을 지원하며 기술 관련 워크숍, 교육, 강의 등을 진행한다. 공간은 평소에 개방돼있어 사회적경제기업 관계자, 세운상가 입주자, 일반인 등이 방문해 3D 프린터, 레이저커터, CNC 등의 장비를 활용할 수 있다.

기술혁신랩은 여름방학 후에도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민창 활동가는 “하루 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이틀 이상 걸리면서 3D 프린터, 드론 등을 활용한 제작 워크숍을 연다”고 말했다.

글. 박유진 이로운넷 인턴기자
사진. 장영은 객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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