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없나요? ‘유모차(乳母車)’에는 ‘모(母)’자만 들어가 평등육아에 반하므로, 아이 중심의 ‘유아차(乳兒車)’가 더 성평등한 표현입니다.”

지난달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성차별 언어를 시민과 함께 개선한 ‘성평등 언어사전’에 나온 의견이다. 여성이 아기를 적게 낳아 인구 감소의 책임을 진듯한 ‘저출산(低出産)’은 아이가 적게 태어난다는 뜻의 ‘저출생(低出生)’으로, 결혼을 아직 못했다는 의미의 ‘미혼(未婚)’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비혼(非婚)’으로 바꿔 쓰자는 주장도 나왔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 안에 누군가를 향한 차별이나 선입견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사용해왔기 때문에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말들이 많았다.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가 주장한 ‘언어결정론’에 대해 들은 적 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이론인데, 인간은 자신이 쓰는 언어에 따라 대상을 인식하고 사고방식을 결정짓는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 사람의 언어와 사고가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지만, 언어와 사고는 유기적이며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에 학계에서도 이견이 없다고 한다.

멀리 학계까지 가지 않아도 가까운 일상 속에서 단어의 중요성을 느낄 때가 많다. 사소하게는 맞춤법을 자꾸 틀리는 상대방 때문에 소개팅 전부터 호감이 떨어졌다는 친구의 경험담, 자기소개서 오타 때문에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는 취업준비생의 토로도 들었다.

어떤 때는 단어 하나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무심코 받은 말 속에 비하하거나 희롱하는 뜻이 있으면 당장 불쾌감이 몰려온다. 편견을 담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차별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야 할 단어들은 일상에 널렸다.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몸의 현상인 ‘월경’은 ‘생리’라고 에둘러 말하지 말고 원래 명칭대로 부르는 것이 맞다. ‘가지고 놀다’라는 뜻을 지닌 ‘애완동물’ 대신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반려동물’이 적절한 표현임에 동의한다. 장애인의 반대말로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고 쓰는 것이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에 공감한다.

‘단어 하나 바꾼다고 무엇이 달라지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단어 하나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바뀐 생각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못된 단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하나씩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양승희 이로운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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