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 상장은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특별한 소식이다. 2020년 말 기준 국내 사회적경제기업(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자활기업, 협동조합)은 2만 6,429개사. 상장한 소셜벤처는 2,031개사 중 5곳뿐이다.

‘노을(noul)’이 지난 3월 3일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노을은 진단기기 제조업체이자 중기부가 소셜벤처로 판별한 스타트업이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과는 달리, 상장 전부터 찬바람이 불었다. 기관 의무보유확약 비율 0%, 공모주 평균보다 낮은 수요예측 경쟁률, 희망 공모가 범위(1만 3,000원~1만 7,000원)를 하회하는 공모가(1만원) 결정에 이어 공모청약에서도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상장 이후 약 1달이 된 지금도 주가는 공모가를 밑도는 중이다.

노을은 말라리아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알려져있다. 조 단위 매출 이야기가 오고 가는 바이오 업계에서 말라리아는 중·저소득국가의 특이 질환 정도로 여겨진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급등했던 바이오주가 지난해부터 휘청하면서 저평가 요소로 작용했던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관점이다.

24일 경기도 용인 본사에서 만난 임찬양 노을 대표는 여유로워 보였다. 임 대표는 “며칠이나 몇 달만에 팔고 나오는 단기 수익을 기대했던 투자자라면 모르겠지만, 중장기 투자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며 “노을은 상장을 출구 전략 수단(엑시트)이 아닌 이정표(마일스톤)로 여기는 회사”라고 말했다. 또 "브랜드 가치, 해외 파트너와의 신뢰 형성, 직원 동기부여 면에서 상장 전과 후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고 덧붙였다.

임찬양 노을 대표. 그는 브랜드 가치, 해외 파트너와의 신뢰 형성, 직원 동기부여 면에서 상장 전과 후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고 말했다.
임찬양 노을 대표. 그는 브랜드 가치, 해외 파트너와의 신뢰 형성, 직원 동기부여 면에서 상장 전과 후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고 말했다.

빠르고, 정확하고, 경제적…진단 질병 늘리고 가정용 기기 개발 계획도

노을이 개발한 기기 ‘마이랩(miLab)’은 내장형 AI 기술을 바탕으로 혈액과 조직세포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한다. 혈액이 담긴 카트리지를 기기에 넣으면 자동으로 질병을 검출한다. 실험실이나 전문 인력 없이 언제 어디서나 검사할 수 있고, 대학병원 수준의 정확성을 갖춰 의료 접근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게 노을 측 설명이다.

말라리아 진단으로 시작한 노을은 혈액 분석과 암 진단 시장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말라리아의 경우 2030년에는 치료제를 포함한 전체 시장 규모가 약 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찬양 대표가 마이랩 사용 시연을 하고 있다. 화면은 꺼져 있는 상태다. 혈액이 담긴 카트리지를 기기에 넣으면 자동으로 질병을 검출한다.
임찬양 대표가 마이랩 사용 시연을 하고 있다. 화면은 꺼져 있는 상태다. 혈액이 담긴 카트리지를 기기에 넣으면 자동으로 질병을 검출한다.

“마이랩 기기에는 노을의 카트리지만 호환돼요. 빠르면 내년까지, 늦어도 3년 안에 마이랩 1,000대를 공급할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비용 다 제하고 카트리지 판매만으로 연 100억원 이상 수익이 납니다. 카트리지만 가지고도 회사가 수익을 내면서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될 겁니다.”

혈액 분석과 자궁경부암 시장은 각각 연간 10조원 이상의 규모로 인식하고 있다. 올해는 자궁경부암, 내년에는 유방암과 갑상선암을 진단하는 카트리지를 출시할 예정이다.

사업 확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임 대표는 “원격 의료 시대를 대비해 가정용 진단 기기도 개발할 계획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병원용 기기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정에서도 쓸 만한 더 작은 기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암 환자 같은 경우 주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데,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집에서 할 수 있다. 대형병원으로 집중되는 의료 수요를 분산한다는 장점이 있다.

원격 의료의 전망을 너무 낙관하는 건 아닐까. 임 대표는 “시간 문제일 뿐, 큰 틀에서 보면 소비자의 편의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를 통해 앞당겨 경험해봤고, 당장 국내에서도 윤석열 당선인이 후보 시절 원격의료 공약을 내걸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투자 시장서 'ESG 프리미엄' 기대”

소셜벤처라는 정체성 덕에 노을은 ESG 경영으로도 주목받는다. 그러나 투자업계에서는 여전히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노을도 투자자로부터 “그게 주주한테 무슨 도움이 되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임 대표는 “노을의 기술 혁신은 창업 당시부터 갖고 있던 지속가능성 철학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의료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혈액 고정에 사용되는 독성의 메탄올을 무독성의 에탄올로 교체하고, 폐수가 나오지 않는 친환경 염색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소비자 편익을 늘리는 방향과 맞닿아 수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경영진 개념인 C레벨에 지속가능성 담당자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를 두고 있고, CSO에게 조직 문화와 인사를 맡기고 있다. 지속가능성 철학을 보고 지원해 들어온 입사자들도 많다. 정규직 기준 30~40명 입사해야 3~4명 나가는 정도의 낮은 퇴사율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 대표는 “지속가능성 철학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처럼 보일 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높은 성과로 이어진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했고, 이를 받아들인 기관만 투자했다”고 부연했다. 노을은 상장을 추진하며 시리즈C 투자도 유치했는데, 시리즈B 단계에서 투자했던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프리미어파트너스·데일리파트너스·알바트로스인베스먼트가 후속 투자했다.

임찬양 노을 대표. 노을은 임찬양, 이동영 공동대표 등 4명의 엔지니어가 모여 만든 스타트업이다./사진=노을
임찬양 노을 대표. 노을은 임찬양, 이동영 공동대표 등 4명의 엔지니어가 모여 만든 스타트업이다./사진=노을

ESG에 민감한 해외 투자자들도 관심을 보인다. 그는 “‘한국에서 ESG 경영 제대로 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라 눈여겨보고 있다’, ‘시가총액이 조금만 더 커지면 투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아직 국내에서 생소한 ‘CSO’라는 직급도 국제적으로는 회사뿐 아니라 대학에도 있는 잘 알려진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임 대표는 오히려 ‘ESG 프리미엄’을 확신한다.

“주식시장에는 다양한 투자 방법이 있잖아요. ‘단타’를 하고 싶다면 몰라도, 멀리 보는 주주라면 노을은 굉장히 좋은 성과로 보답할 회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지속가능성 철학을 가진 기업이기도 하지만, 기술적으로도 저희만의 혁신성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거든요.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10억명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임팩트를 주자’는 게 노을의 비전인데요, 저희는 아직 반도 안 왔습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