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의 의미는 ‘안전망’으로 충분히 설명되지만, ‘금융혁신’이라는 의미도 덧붙일 수 있습니다. 모은 돈을 돌려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반 금융과 유사하지만, 일반 금융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다르고 남의 돈을 돌려쓰는 방식이라면, 공제는 우리 돈을 돌려쓴다는 방식이므로 수요자와 공급자가 같죠.”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회연대공제 활성화 정책 토론회’에서 김정현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자문위원은 사회연대공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반 금융의 대출 대상은 신용등급과 능력의 크기가 결정한다면, 공제에서의 대출 대상은 회원등급과 필요의 크기가 결정한다. 또, 일반 금융은 신용창조(예금액 일부만 지급 준비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대출하는 것)가 가능해 과열 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이 있지만, 공제는 신용창조 효과가 없으니 금융 본연의 중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등 기존 공제가 금융 체계에 혁신을 부르는 원리상 차이를 설명했다.

2월 9일 열린 토론회는 정책전달식을 곁들였다. 공익활동가·노동·생협·자활 등 사회연대경제 분야별 대표가 정책 제안을 낭독하고, 민주당 선대위에 정책을 전달했다./사진=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2월 9일 열린 토론회는 정책전달식을 곁들였다. 공익활동가·노동·생협·자활 등 사회연대경제 분야별 대표가 정책 제안을 낭독하고, 민주당 선대위에 정책을 전달했다./사진=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날 열린 토론회에는 공제 사업 사례가 있는 기관들과 사업을 준비하는 기관들이 현황을 공유하고 정책 과제 등을 나눴다. ▲두레생협연합회 ▲아이쿱생협연합회 ▲한국대학생협연합회 ▲한살림연합 ▲행복중심생협연합회 ▲전국주민협동연합회 ▲공익활동가 공제회 동행 ▲노동공제연합 사단법인 풀빵 ▲재단법인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재단법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과 국회의원 김영배·민병덕·민형배·이해식·전재수가 주최했다.

공제란 구성원들이 각자 일정 금액을 갹출해 필요시에 도움을 받는 공동분담·공동혜택의 보장 시스템으로, 상조회에서 협동조합 보험까지 다양한 상품을 설계할 수 있다. 기조 발제를 맡은 김형미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는 전 세계의 협동조합 보험이 전체 보험시장이 20% 차지한다고 보고, 협동조합 공제가 발전한 일본의 경우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손해보험 업계 보상액의 71.4%가 농협공제에서 지불됐다”며 “그만큼 국제적으로 공제 형태가 보편화됐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공제가 한국에서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우리나라에서 1년 이내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비경제활동 인구는 400만명으로 집계됐다. 김 교수는 “여기에는 경력단절여성, 시니어 등이 포함되는데, 향후 갖게 될 일자리로 대기업 중심의 정규직 취업을 상정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며 “이들이 가질 새로운 일자리는 기존의 사회보험에 포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이들을 위한 사회보험의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 대안으로 공제를 제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사례와 시도가 있었다. 지역자활센터를 중심으로 이뤄진 자활공제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생긴 금융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2003년 지역상조회로 시작했다. 지역마다 만들어진 공제조합들은 2010년 연합회를 결성했고, 현재 전국에 39개 회원조합이 활동 중이다. 조합당 적게는 50명, 많게는 450명의 조합원이 있다. 유유미 전국주민협동연합회 이사장은 “연합회는 매년 출자금의 약 80%를 신용 사업을 위한 공동체 기금으로 조성해 2021년 기준 11억원을 대출로 운용했으며, 상환율은 95%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5년 전부터는 ‘천원의 행복’이라는 의료상호부조도 하고 있다. 가입비 1만원과 매달 1000원을 내면 30만원까지 비급여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연합회는 이외에도 조합원을 대상으로 교육사업, 소모임 활동 등을 지원한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공익활동가의 사회안전망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은 현재 자산 규모 30억원, 공익활동가 조합원 2205명으로 구성돼있다. 그동안 1602명 공익활동가들에게 의료, 재충전, 교육, 대출 지원으로 약 36억원을 지원했다.

이러한 개별 사례들은 있지만, 여전히 관련 법·제도가 미비해 난관에 부딪히는 일이 많다. 동행 역시 법적으로 공제회 설립이 어려워 공제회 기능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탄생했다. 그러다보니 기금운용이나 상품 확대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보험업도 못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20~21대 국회에서 ‘공익활동가 공제회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표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공익활동가들이 정식으로 공제회를 설립할 수 있고 정부가 예산 범위 내에서 출연·보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생협의 경우 공제회 설립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지 12년이 넘었지만, 아직 사례가 없다. 오귀복 아이쿱생협연합회 상무는 “생협이 공제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인데, 주무부처에서 시행규칙이나 감독규칙을 내놓고 있지 못해서 표류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동공제조합도 비슷한 벽에 부딪히고 있다. 대기업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한 다양한 혜택을 마련할 수 있지만, 대다수 기업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석호 노동공제연합 풀빵 운영위원장은 “10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가입률이 0.8%고, 노조를 만든다고 해서 임금 협상을 할 수도 없는 실정인 곳이 대다수”라며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위한 공제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관련 법이 없어 사단법인 형태로 ‘노동공제연합 풀빵’을 창립한 수준에 그쳤다. 한 위원장은 “교원공제, 군인공제 등 소득 기준 상위 10%에 진입한 계층에게는 공제를 특별법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비정규직-플랫폼-프리랜서-하청노동 등 하위 50% 계층을 형성하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공제를 인정하지 않는 건 납득 불가능하다”며 특별법 마련을 주장했다.

사진=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사진=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민병덕 의원은 “사회연대공제는 각자의 자원을 모아서 공동체의 생산적 필요를 해소하고, 사회 구성원 간 연대에 기초해 위험에 대비하는 금융의 기본 모습을 갖고 있다”며 “이는 금전적 보상 이상의 가치를 만들 것이므로, 제도적·입법적 지원을 다 하겠다”고 전했다. 김영배 의원은 “이전부터 논의를 많이 했던 내용들이지만,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힘에 부칠 때도 많다”며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자세를 가다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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