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내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어떨까요? 능력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난해 10월 16일 토요일, 협동조합 학습공동체아카데미쿱(이사장 박대건, 이하 ‘아카데미쿱’) 서대문북가좌 지역의 중등고전반 수업시간. 해당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박대건 이사장이 학생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미덕이 더럽혀지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학생1)

"대학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는 학생들은 배제되지 않을까요?" (학생2)

학생들 앞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놓여있다. 학생들이 미리 책을 읽어오면 강사는 능력주의와 관련된 기사, 유튜브 등을 보여주며 토론 주제를 제안한다. 학생들은 책의 내용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경험담을 꺼낸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림이 없다.

아카데미쿱 서대문북가좌 지역 중등고전반 수업/사진=정재훈 청년기자
아카데미쿱 서대문북가좌 지역 중등고전반 수업/사진=정재훈 청년기자

자유롭고 활발한 분위기의 아카데미쿱 수업에는 다른 학원의 아주 흔한 세 가지가 없다. 첫 번째는 위계질서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의견에 딴죽을 걸어도 학생들이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금 의견을 표현한다. 선생님도 학생들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준다.

두 번째는 ‘국영수’가 없다. 국영수로 대표되는 입시교육 위주의 커리큘럼을 가르치지 않는다. 정답도 오답도 없다. 세 번째는 진도의 압박이 없다. 한 가지 주제가 예상보다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수업을 이어간다. 학생들의 이야기가 수업 전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선생님도 “시끄럽고, 교재나 펴!”라고 말 하는 법이 없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다. 수업에 참여한 진효겸(충암중3) 학생은 수업을 통해 몰랐던 역사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어간다고 말했다. 수업을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고백한 친구들도 있었다. 눈치도 없고 자기중심적이었던 학생들은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으며 친구들과 관계도 원만해졌다고 한다. 꾸준한 독서와 토론 덕에 비문학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어 학교공부에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수업 참관 2시간 전, 서울 서대문 소재 서대문마포은평 아이쿱생협에서 박 이사장을 만났다. 아카데미쿱이 지향하는 교육적 가치관부터 협동조합 생태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Q. 아카데미쿱은 대안교육을 표방하고 있다. 아카데미쿱이 가졌던 문제의식과 대안은 무엇인가.

아카데미쿱이 설립된 2014년도 당시, 대한민국의 사교육비 지출액이 약 18조원이었다. 가계소비 지출 순위로 따지면 주거비 다음 2위가 사교육비다. ‘이렇게 많은 돈이 지출되는데, 우리 아이들은 과연 잘 크고 있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설립한 게 아카데미쿱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학생들이 ‘올바르게 산다는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쿱 교육과정/출처=협동조합 학습공동체아카데미쿱
아카데미쿱 교육과정/출처=협동조합 학습공동체아카데미쿱

아카데미쿱은 인성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보통 인성교육은 그저 ‘우리 아이 착하게’ 수준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카데미쿱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우리는 인성의 구성 요소로 도덕성, 사회성, 정서성을 꼽는다. 도덕성은 정직, 책임, 준법이라는 가치를 포함하고, 사회성은 공감과 소통 및 협력하는 능력을, 정서성은 긍정적 자기이해와 자기 조절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가 잘 갖춰지면 인격적 내구성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아카데미쿱의 교육과정에 인성교육의 가치들을 녹여냈다.

Q. 이렇게 빨리 변하고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인성교육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다소 낯선 커리큘럼 탓에 첫 수강생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기존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동일한 출발선 상의 경쟁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내가 쟤보다 몇 문제 더 맞춰봤자 저 친구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더 많으면 과연 경쟁에서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인공지능 시대로 오면서 우리가 누구와 경쟁하는지도 불분명해졌다. 사람인지 아니면 엄청난 속도의 과학기술인지. 이럴 때 일수록 남을 이기려고 하기 보다는 나의 특징과 장점을 개발해 어떤 분야에서건 나의 업무적 성과와 인문학적 소양을 증명해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설립 당시에는 아이쿱 생협의 도움을 받았다. 설립 멤버 중 한 분이 아이쿱 생협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우리 교육의 문제와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초기 수강생 모집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Q. 수강생 모집과 선생님 선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모집대상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다. 등록은 지인 소개 또는 설명회 참석 후 이루어진다. 설명회는 거점 지역별로 진행되는데,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으로 참석이 가능하며 수업 소개 및 반 개설/합류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수업이 열리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한다. 학생들 집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이곳처럼 생협의 대관 규정에 따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비용을 지불하고 운영하는 거점공간도 있고 온라인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9개 자치구에서 32개의 클래스, 약 16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직까지 큰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선생님 선발은 조합원 모집 형식을 취한다. 아카데미쿱은 선생님들로만 조합원을 구성한다. 현재 총 10명의 조합원이 있고 그 중 8명이 수업을 진행한다. 가입할 때 지원서를 작성하는데 질문이 조금 어렵다. ‘인성이란 무엇인가’, ‘공간과 나에 대해 설명하시오’ 등 지금 나보고 쓰라고 하면 왠지 떨어질 것 같은 질문들이다. 이 주제에 대해 지원자가 고민한 흔적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후 면접을 봐서 합격을 하면 2개월 간 팀 회의 참석, 커리큘럼 개발, 교재 스터디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수업에 투입된다.

Q. 아이쿱 생협과의 협력이 꽤 오래된 듯하다. 이제까지 경험에 비춰봤을 때, 협동조합 간 연대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상호거래다. 각자의 전문성이 상호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쿱 생협 사례를 들어보면, 우리는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전문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고 아이쿱 생협은 전국에 네트워크가 깔려 있다. 그럼 우리는 아이쿱 생협 조합원을 대상으로 성인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아이쿱 생협은 우리에게 설명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기본적으로 열정페이식의 협력과 연대는 서로를 모두 지치게 한다고 생각해서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아카데미쿱 박대건 이사장/출처=정재훈 청년기자
아카데미쿱 박대건 이사장/출처=정재훈 청년기자

Q. 아카데미쿱이 협동조합으로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는 두 가지에 집중하려 한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사업성과 챙기기다. 민주적 의사결정의 경우, 우리가 정말 민주적으로 했는지 되돌아보면 그러지 못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스터디를 조직했다. 외국 서적들도 들여다보면서 심리적 안정감, 갈등을 풀어내고 조율하는 방법 등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해 보고 있다.

조합 사업도 챙겨야 한다. 수업 외에 조합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의 필요한 업무, 즉 문서관리, 외부강연, 교재개발 등의 역할을 분배할 예정이다. 분배 후 성과를 내면 서로 격려하면서 이를 매뉴얼화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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