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에 의하면 2015년 기준 식용 GMO(유전자재조합식품·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수입량은 약 214만 5천 톤으로, 전 세계 1위이다. 그런데 2017년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소비자시민모임,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한국YMCA전국연맹조사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유통되는 식품에서 ‘GMO’ 또는 ‘Non-GMO(유전자재조합식품 아님)’ 표시가 있는 국내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 GMO 표시제 개선의 시급성을 알리기 위해 '소비자 알권리와 GMO 표시제 한미일 국제 심포지엄'이 19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한국은 GMO 의무 표시제를 택했다. 하지만, 비의도적으로 최종식품에 남은 GMO 원료 성분이 3% 미만이면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허용치인 0.9%보다 3배 높은 수준이다. Non-GMO 표시는 최종식품에 남은 GMO 원료 성분이 하나도 없을 때만 사용할 수 있어 사실상 표기할 수 있는 식품이 없다.

김아영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회장은 “GMO든 Non-GMO든 표시가 돼있는 제품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GMO를 인식하기조차 힘들다”고 비판했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GMO 완전 표시 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GMO 완전 표시 제도는 해당 식품에서 GM이 원료의 얼마를 차지하든 모두 표시한다는 뜻이다.
 

현행 GMO 표시 개정을 촉구하는 청원에 21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GMO 표시제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지만, 문 정부의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시민단체들은 GMO 완전표시제를 촉구하는 국민 청원을 제기했고, 한 달간 2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에 호응했다. 지난 5월 정부는 GMO 안정성 논란, 물가인상 우려, 계층 간 위화감 조성, 통상 마찰 가능성 등 때문에 아직 완전표시제 시행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 GMO 표시제 개선의 시급성을 알리기 위해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8개 시민단체는 지난 19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소비자 알권리와 GMO 표시제 한·미·일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 미국, 일본의 식품안전 전문가들이 참석해 각국의 GMO 표시제 사례를 공유했다. 이들은 “GMO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더라도 소비자들이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정확히 표시해야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 미국, 일본, EU의 GMO표시제도 현황
일본, ‘Non-GMO’ 표시 적극적

일본은 1996년부터 GM 작물을 수입했고,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2001년 GMO 표시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GMO는 표시를 의무화하고, Non-GMO는 자발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한다. GMO 의무표시 대상은 농산물 8종과 그것을 원료로 한 가공식품 33식품군이다.

일본소비자연맹 코케츠 미치요 사무국장은 “일본은 최종식품에 남은 GMO 원료 성분이 5% 미만이면 표기를 안 해도 되기 때문에 GMO 표시가 적힌 제품은 별로 없지만, 그나마 Non-GMO 표시가 적힌 제품들이 있어 소비자들은 이 표시에 의지한다”고 말했다.

최종식품에 GMO 원재료의 성분이 0%여야 Non-GMO 표기를 허용하는 한국과는 달리 5% 미만까지 허용한다. 김 회장은 “일본의 Non-GMO 표시 기준은 관대하다는 허점이 있으나 적어도 소비자들이 그 표시를 보면서 GMO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버몬트가 쏘아올린 공

미국은 GMO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다. 미국 가공식품 85%에 GMO가 포함돼있다. 미국은 그동안 자율표시제를 채택했다. 그런 이유로 소비자단체들과 연방의원들은 GMO 표시제 법안을 채택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건 2014년 5월. 동부 버몬트주에서 ‘GMO 의무 표시제’ 법을 제정했다. 미국 최초다. 버몬트주에서는 GMO를 사용한 가공식품인 경우 ‘유전 공학 기술로 생산됨(produced with genetic engineering)’이라고 표시해야 하며, ‘자연(natural, naturally made, naturally grown, all natural)’이라는 표현은 사용할 수 없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의 타 지역도 GMO의무표시 법안을 상정했고 2016년 오바마 행정부가 GMO 표기를 의무화하는 연방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올해 7월까지 미 농무부가 표시기준을 마련하게 했다. 미 농무부가 제안한 기준안은 ‘GM’을 ‘BE(생명공학으로 만들어진·bioengineered)’라고 표시하거나, 스마트폰 QR코드로 대체할 수 있게 하는 등 여전히 문제점이 있지만,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처음 통과된 GMO의무표시법이라는 의미가 있다.

비영리단체 ‘미국 전역의 엄마들(Moms Across America)’의 창립자이자 상임이사인 젠 허니컷은 이날 포럼에서 “한국은 사람이 섭취하는 GMO 수입량이 세계 1위이며, 초·중·고등학생들의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수입 원재료들이 전부 GMO로 만들어진 혼합가공식품이라고 들었다”라며 “GMO가 표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해 현재 38개국이 GMO를 금지한다”며 “한·미·일도 비슷한 수준으로 나아가야 하고, 적어도 소비자들이 GM 식품을 제대로 구분하며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GMO’·‘Non-GMO’ 모두 보기 힘들어

김 회장은 “수입된 GMO 원료는 228만 톤인데 GMO가 표기된 국내 식품은 0건이라는 게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GMO 원재료를 사용했더라도 최종제품에 남은 GMO 성분이 3% 미만이면 GMO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최승환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도 EU나 중국처럼 GMO DNA 잔류 여부와 관계없이 원재료가 GMO라면 표시해야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은 모든 식품이 아니라 콩, 옥수수, 감자 등 식약처에서 지정한 7개 작물을 사용한 147건에 한해서만 GMO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수입된 GM 식품은 국내법상 표시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GM 식품으로 표시되지 않은 채 유통·판매된다. 최 교수는 “‘소비자 정보제공 및 기만적 관행방지’라는 표시제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모든 GM 식품에 대해 표시하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은 식품 최종제품에 GMO 원재료 성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경우에만, 농산물 최종제품에는 남은 GMO 성분이 3% 미만일 때 Non-GMO 표시를 허락한다. 최 교수는 이에 대해 “식품과 농산물의 최대 허용수준을 같게 할 필요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완전한 GMO-free는 불가능하므로 최대허용수준을 1% 정도로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글. 박유진 이로운넷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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