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사회문제들을 남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도전은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혁신가들이다. 아름다운가게, (사)아쇼카 한국, 카카오는 전폭적이지만 매우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사회혁신가들을 발굴하고 경제적 지원과 연대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있다. 사회혁신가들이 바꾸는 세상을 함께 따라가봤다

“산업재해로 손가락 하나를 못 쓰게 됐습니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때 사장이 ‘빨리 퇴원하게 손가락을 계속 치료하지 말고 그냥 자르라’고 했어요. 저는 안된다고 했죠. 당시 사장은 산재보험도 안 해줬어요. 퇴원 후 노무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 보상금을 받았어요. 4년 10개월이 돼 미얀마로 돌아가야 할 때 사장이 퇴직금 잔액을 제대로 주지 않았어요. ‘손가락 잘렸을 때 보상금 많이 받았잖아’ 하면서요. 성실근로자 재입국 제도로 한국에 와서 다시 일하고 싶어서 꾹 참았습니다.”

어느 미얀마 노동자의 슬픈 이야기다.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협력 사업으로 실시한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기가 대한민국인가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무거운 마음에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다.

“우리의 활동은 이 보고서를 끝내는 순간 본격 시작됩니다. 실태조사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인권위가 관련 부처에 권고사항을 보냅니다. 하지만 실제 반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 -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그래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나마 보고서가 있어야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정책담당자들을 만날 기회나 구실이 주어지기 때문이란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그는 2010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논문 작성을 계기로 이주민 인권 분야에 몸담게 됐다. 그가 선택한 해결 방식은 앞장서 시위하기보다는 실태 조사를 기반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정책 제안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 사진 = 백선기 에디터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그는 2010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논문 작성을 계기로 이주민 인권 분야에 몸담게 됐다. 그가 선택한 해결 방식은 앞장서 시위하기보다는 실태 조사를 기반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정책 제안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 사진 = 백선기 에디터

 

만일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김사강 연구위원은 10년 넘게 부산에 있는 '이주와 인권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부산에 정착한 이유는 뭘까. 이주노동자들 가운데도 어업에 종사한 사람이 가장 열악하기 때문이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한두 달씩 머무르다 보니 임금은 둘째 문제고 그 안에서 다치거나 폭행당하거나 혹은 더 큰일이 발생해도 해결이 잘 안됩니다. 한국인들은 선장, 기관장, 갑판장 등 간부 선원들이고 실제 조업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주노동자들이에요. 문제를 제기해도 외국인들이다 보니 관계당국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김을 키우는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영상.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이주노동자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카드 뉴스나 웹툰, 소책자, 동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은 이들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수면 위로 끌어올려 놓았다. 김 연구위원은 두 달 전 여권 압수 문제로 제주도 출장을 다녀왔다.

“이주노동자들은 신분증 없이는 자유롭게 다닐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게 무기가 되는 겁니다. 노동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선주나 관리 업체들은 여권이나 외국인 등록증 등을 빼앗아 돌려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때문에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간의 불법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거죠. “

김 연구위원은 “지난해 선원 이주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제주도에서 일하는 응답자139명 전원이 여권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이 같은 행위는 출입국관리법, 여권법, 근로기준법, 선원법에 모두 위배된다”라고 밝혔다.

“유관부서와 간담회를 거친 뒤 ‘선주들을 만나 지도하고 다 돌려주라 하겠다. 안되는 경우 신고하면 처리해 주겠다’라는 답변을 들었어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떤 반응인지 아세요? ‘믿을 수 없다. 선원들이 거짓말하는 거다. 당신들이 편파적인 조사를 한다’고 얘기합니다. 솔직히 백신 문제가 아니었다면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졌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어요.”

한국에는 3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지만 어업과 양식업에 종사하는 한국인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 것이 젊은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없으면 산업 자체가 붕괴될 정도다.

김 양식장에서 채취한 김을 퍼담고 있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
김 양식장에서 채취한 김을 퍼담고 있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안 되니까 ‘잘해줘야겠다’가 아니라 ‘붙잡아둬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불법행위가 난무합니다. 임금체불은 다반사고 어떤 섬에서는 이주노동자가 터미널에 가면 매표소 직원이 선주에게 전화해 표를 팔아도 되는지 물어봅니다. 만일 선주가 안된다고 하면 섬 밖으로 못 나가요. 섬 노예나 다름없는 거죠.”

산적한 이주민 인권 문제들 속에서도 그가 관심을 쏟는 분야는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아동문제와 건강보험차별 문제다.

유령처럼 살고 있는 아이들

 

이주아동이란 한국 국적 없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18세 미만의 사람을 말한다. 외국에서 태어나 부모나 보호자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한 아동뿐 아니라, 외국인 부모의 자녀로 국내에서 출생한 아동도 포함된다.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주아동은 10만 명이 넘고 그 가운데 10~20%가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추산된다.

 

2015년 이주아동 권리 보장기본법 제정 활동 당시 제작한 정책 브리프. 이주아동의 현황과 보장돼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을 담아냈다.
2015년 이주아동 권리 보장기본법 제정 활동 당시 제작한 정책 브리프. 이주아동의 현황과 보장돼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을 담아냈다.

이주아동들은 외국인이란 이유로 혹은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아동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요. 건강보험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 밖 청소년이 된 경우도 많아요. 초, 중,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마쳤지만 취업을 할 수 없고 성인이 되면 강제추방 위협에 놓인 청년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부모가 없거나 사망했거나 혹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분리돼야 하는 아이들인데 거의 방치되고 있어요. 만일 한국에서 보호받을 수 없다면 현지의 가족이나 친척을 찾아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인지 확인하고 본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를 개인의 힘으로 다 할 수는 없어요. 국가 차원에서 나서줘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는 거죠.”

최저임금 인상에도 팍팍한 삶

 

# 내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는 비닐 하우스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 박스, 유독성 농약이 천장까지 쌓인 창고 안 패널 집, 오물이 찰랑거리는 야외 간이 화장실… 최근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큰 사회 이슈가 됐다.

충남 논산의 한 이주노동자 숙소. 여성 2명이 함께 살고 있다. 숙소비는 1인당 30만 원씩 총 60만 원이다. 이 숙소에 딸린 야외 화장실에는 문이 없다.
충남 논산의 한 이주노동자 숙소. 여성 2명이 함께 살고 있다. 숙소비는 1인당 30만 원씩 총 60만 원이다. 이 숙소에 딸린 야외 화장실에는 문이 없다.

“기숙사 형태는 천차만별입니다. 여럿이 모여 살더라도 원룸처럼 깨끗한 집에서 살게 해주는 곳도 있지만 너무 엉망인 곳도 많아요. 그런데 형편없는 숙소를 제공하면서 상식선을 넘는 기숙사비를 받아요. 가령 비닐하우스 숙소에 5명을 재우면서 한 명당 20~30만 원씩을 받아요. 화장실도 없어서 땅을 파고 볼일을 보는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최저임금이 오르자 기숙사비를 임금 삭감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어요. 일을 많이 해 임금이 올라간 달은 기숙사비가 올라갑니다. 기숙사비는 시설이나 조건을 보고 매겨지는 것이지 월급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김 연구위원은 특히 2019년 개정된 건강보험제도의 이주민 차별 문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건강보험 문제가 중요한 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주민들도 의무적으로 직장 또는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내국인과 비교했을 때 차별이 심해요. 내국인은 6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지만 외국 국적 이주민들은 체납을 하는 순간 보험료를 완납할 때 까지 보험급여가 중단됩니다. 지역 가입자 보험금 기준도 희한해요.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한 것과 전년도 평균보험료를 비교해 더 높은 금액으로 보험료가 매겨집니다. 현재 아무리 소득이 낮고 재산이 없어도 매월 13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냅니다. 또 한 집에 살아도 이주민들은 원칙적으로 개인을 각각 하나의 세대로 보고 보험료가 산정돼요.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예외적으로 세대원이 될 수 있죠. 연로하신 부모는 물론이고 학업 중이거나 장애가 있거나 아파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자녀조차 성년이면 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각각 내야 합니다.

김사강 연구위원이 발제자로 나선 "개정된 건강보험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국회 토론회. 
김사강 연구위원이 발제자로 나선 "개정된 건강보험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국회 토론회. 

그는 해마다 국정감사 때면 이주민들의 체납액이 얼마인지, 이들이 보험급여로 입원해 쓴 돈이 몇 천억이 된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는 상당히 왜곡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국인과 동시에 비교해 보면 재정수지 면에서 내국인은 적자지만 외국인은 언제나 흑자로 나옵니다. 걷은 돈에 비해 지출이 적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외국인이 쓴 총액만을 부각해 갈등을 부추기고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인종차별적인 마음에 기대 표를 얻거나 주목을 받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닌지 그저 답답한 마음입니다.”

 

일회성 노동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김사강 연구위원은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이들을 일회용품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현행 제도를 잘 활용하면 최장 9년 8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어요. 이 정도라면 이들은 더 이상 단기 노동자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치 금방 돌아갈 사람처럼 여겨 가족도 데려오지 못하게 하고 웬만한 사회보장제도도 다 배제하고 있어요. 산재를 당하면 치료비와 보상금을 찔끔 손에 쥐여주고 나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회용 종이컵이 구겨졌다고 해서 펴려고 하지 않잖아요. 버리고 또 사면 되니까요. 사람도 이런 식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는 “조건이 까다로울 수는 있겠지만 지금보다는 장기 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나 시민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열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15년 넘게 이주민들의 인권을 지켜온 김사강 연구위원은 지난해 카카오 임팩트펠로우 2기에 선정돼 2년간 월200만 원의 지원을 받는다.

이주민 인권문제는 결코 혼자서는 해결 못해요. 소송도 필요하고 직접 지원도 필요하고 의료지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통역사도 필수인력이고요. 재능기부 차원에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최소한 교통비는 드리는 것이 도리죠. 개인적으로는 운영비를 벌기 위해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용역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현장에 못 가는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아쉬웠는데 이젠 꼭 해야 하는 일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이 일을 하다 보면 ‘한국인도 힘든데 왜 우리도 아닌 사람들한테 신경을 써야 해’ 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습니다. 우리가 가진 걸 뺏어서 주자는 게 아니에요. 이제 우리도 조금은 나눠줄 여유와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봅니다. 내가 조금 덜 가져도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요. 그때 그 사람들이 꼭 한국 사람들이어야만 할까요?”

사진제공= 이주와 인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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