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시와 가곡 ‘향수’의 도시 충북 옥천에 21일 공동체라디오가 개국한다.

옥천FM공동체라디오(OBN)는 지난 7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FM주파수 104.7Mhz의 출력허가를 받았다. 현재 옥천 인구는 약 5만명 정도로 방통위가 새로 공동체 라디오 허가를 내준 전국 20개 지역 중 강원도 영월과 태백 등과 함께 인구가 가장 적은 곳 중 하나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에 공동체 라디오 OBN이 옥천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개국을 준비하는 현장을 미리 찾아가 봤다.

(사)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옥천FM공동체라디오(OBN)'이 21일 개국한다. OBN 사업은 옥천 출신의 걸출한 언론인 송건호 선생((전 한겨레신문 대표)의 뜻을 기리는 의미있는 사업을 한번 해보자는 군민들의 생각이 모여져 시작됐다. 
(사)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옥천FM공동체라디오(OBN)'가 21일 개국한다. OBN 사업은 옥천 출신의 언론인 고 송건호 선생(전 한겨레신문 대표)의 뜻을 기리는 의미있는 사업을 한번 해보자는 군민들의 생각이 모여 시작됐다. 

사회적경제가 운영하는 옥천FM공동체라디오(OBN)

OBN의 개국은 주민들의 기금으로 이뤄졌다. 옥천에는 이미 30년전인 1989년에 군민 주주 방식으로 '옥천신문’이 창간된 바 있어, 공동체 라디오 개국을 위한 기금 모금에 지역주민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모금액의 대부분은 리모델링과 장비 및 스튜디오의 설치 등 OBN의 인프라 구축에 투입되었다. 운영을 위한 추가재원의 확보가 필요했는데, 운영주체인 (사)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가 지난달 13일 문화체육관광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이 되면서 기본적인 운영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OBN은 연간 10명 내외의 인건비와 사업개발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OBN은 앞으로 후원·협찬의 확보와 진로체험·체험학습과의 연계 등을 통해 안정적인 운영모델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11월에 개최된 ‘청암송건호 언론문화제’에서는 지역공동체 라디오의 안정적 운영기반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의 필요성이 언급돼 공감을 얻기도 했다.

듣는 라디오 No, 주민들이 만드는 라디오 Yes

공동체 라디오인 OBN은 열린 매체를 지향한다. 하루 6시간을 운영하는 OBN의 제작·진행에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나이 제한이 없고, 일정 정도의 사전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옥천신문을 통해 한 두 차례 사전홍보를 하자 많은 옥천주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개국 준비를 위해 사전녹음을 하고 있는 OBN의 진행자들은 청소년, 아주머니, 다문화인, 버스킹팀, 장애인 등 다양하다.

방송 내용도 사람 살아가는 얘기 중심이다. 우리 동네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들을 수 있는 풀뿌리 지역밀착형이다. OBN은 방송 비전문가들이 직접 만드는 투박한 아마추어 냄새를 지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옥천 주민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담아낼 계획이다.

GNJ라디오는 옥천여중 3학년 학생 세사람이 만든다 / 출처=OBN 페이스북 페이지
GNJ라디오는 옥천여중 3학년 학생 세사람이 만든다 / 출처=OBN 페이스북 페이지

Z세대가 틱톡(Tik Tok) 대신 라디오?

라디오는 올드미디어다. 그런데 한참 소셜미디어(SNS)와 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공동체 라디오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공중파를 통해 세상에 나온다는 대목에서 Z세대인 10대들도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에 OBN에서 방송될 프로그램 ‘GNJ라디오’는 3명의 옥천여중 3학년 청소년들이 모여 함께 준비하고 있다. 김가람(G), 김나라(N), 최주희(J) 세사람의 이름 중간글자 이니셜을 하나씩 따서 붙여졌다. 22일 예정된 첫 방송 주제는 ‘여행’이다. 첫 방송 콘텐츠를 위해 제작팀은 3번 모였고 함께 큐시트를 만들고 시그널 뮤직을 골랐다.

김가람양(옥천여중 3)은 “헤드셋으로 듣는 제 목소리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직접 해보니 방송 날이 기다려져요.”라고 말했다.

‘GNJ라디오’’외에도 프롬틴(from Teenagers)’, ‘청라반(청소년 라디오에 반하다)’, ‘인생초짜 틴에이저’ 등 청소년 방송활동가의 참여와 비중이 작지 않다.

공동체 라디오는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줘야 하고, 청소년들의 미디어 참여는 청소년의 사회적 포용에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옥천FM공동체 공동체라디오의 주파수는 FM 104.9MHz이며, 출력은 방송국 반경 10km까지다.
옥천FM공동체 공동체라디오의 주파수는 FM 104.9MHz이며, 출력은 방송국 반경 10km까지다.

주민주도 미디어와 사회적경제가 함께 만드는 도시재생

OBN이 둥지를 튼 곳은 금거북이길로 불리는 옥천읍 금구리의 구도심 골목이다. 이 곳은 경부선 옥천역 건너의 옥천 시가지가 시작되는 곳이지만 오랫동안 저녁 8시 이전에 불이 다 꺼지는 쇠락한 곳이었다.

그런 금거북이길에 변화가 시작됐다. 6년전 옥천신문은 금거북이길 안에 방치된 식당을 리모델링해 사옥을 옮겼다. 구성원 평균연령이 20대 후반인 옥천신문의 젊은 에너지가 신문사 문지방을 넘어 금거북이길에 밝은 기운을 만들기 시작했다.

옥천신문의 사내 조직이었던 문화콘텐츠 사업단이 모태가 되어 지역창작 문화공간 ‘둠벙’과 ‘월간 옥이네’를 발간하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만들어졌고 금거북이길에 자리를 잡았다. 노부부가 운영하다 문을 닫은 금거북이길 안의 한 식당은 옥천신문의 구내식당팀이 독립해 ‘옥이네 밥상’이란 로컬푸드 식당으로 바꿔 문을 열었다. ‘옥이네 밥상’도 사회적기업이다.

이렇게 하나 둘씩 늘어난 금거북이길 골목안의 사회적경제와 주민주도 미디어의 종사자만 약 50여명에 이른다. 평택, 김해, 양산, 청주 등 외지에서 옥천에 와서 청년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옥천신문과 고래실에서 일을 하던 청년들이 정착한 경우도 꽤 있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은 옥천의 소소하고 위트 넘치는 이야기를 취재하고 궁금했던 지역의 모든 것들을 질문하는 풀뿌리 언론 기자가 되어보는 과정이다. 2주, 한달, 2개월, 3개월 등 기간선택이 가능하다 / 제공=옥천신문
옥천저널리즘스쿨은 옥천의 소소하고 위트 넘치는 이야기를 취재하고 궁금했던 지역의 모든 것들을 질문하는 풀뿌리 언론 기자가 되어보는 과정이다. 2주, 한달, 2개월, 3개월 등 기간선택이 가능하다 / 제공=옥천신문

옥천신문이 3년전부터 시작한 숙식형 수련 프로그램 ‘옥천 저널리즘 스쿨’에도 서울, 경주, 안동, 청양 등 전국 각지에서 매달 10여명의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다. 달라진  풍경의 금거북이길의 골목 안에서 예비사회적기업인 OBN도 21일 문을 연다.

공동체 라디오 OBN의 애칭은 오븐이다. ‘풀뿌리 방송을 굽는 오븐, OBN’이라는 뜻으로 주민들이 붙였다. 다양한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내는 플랫폼이자 도시의 생동감을 계속 뿜어내는 성능좋은 오븐(OBN)의 역할을 기대하며 붙인 애칭이다.

◇ 옥천FM공동체라디오(OBN) 추진위원회 미니 인터뷰

사진 왼쪽부터 황민호 옥천 FM공동체 라디오 추진위원장 겸 옥천신문 대표, 이범석 (사)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이사 겸 ‘고래실’ 대표
사진 왼쪽부터 황민호 옥천 FM공동체 라디오 추진위원장 겸 옥천신문 대표, 이범석 (사)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이사 겸 ‘고래실’ 대표

Q. OBN은 어떻게 추진되었나 ?

공동체 라디오 OBN 사업은 옥천 출신의 걸출한 언론인 고 송건호 선생(전 한겨레신문 대표)의 뜻을 기리는 의미있는 사업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모여져서 시작되었다. 21일 OBN의 개국일자도 송건호 선생의 기일에 맞췄다.

OBN의 개국은 옥천신문이 산파역할을 했다. 군민 주주로 출발한 옥천신문의 유료 독자수가 현재 3500명에 이른다. 현재 인구수 5만명을 고려하면 큰 숫자다. 옥천신문의 군민 주주 발족이나 유료독자 확보의 경우처럼 OBN의 개국준비에도 많은 주민들이 기금모금에 참여해주셨다.

OBN을 운영하는 (사)송건호기념사업회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어 최소한의 운영기반은 우선 마련되었다. 하지만, 안정적 운영기반을 위해서는 관련 지원조례의 제정 등 추가적인 방안이 필요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한 지역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만들어 갈 생각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

주민주도 미디어와 사회적경제가 지역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모델이 옥천에서 실험중이다. 새로 개국하는 OBN도 여기에 힘을 크게 보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옥천을 주민주도 공동체 미디어의 성지로 만든다는 구상을 세웠다. 구체적 실현을 위해서 미디어 분야 사회적기업가 육성기관의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이 '옥천' 하면 정지용 시인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와 공동체 미디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허브 도시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보겠다.

옥천FM공동체라디오 개국을 축하하는 옥천주민들의 영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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