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존재로서 갖는 특성을 잃는다는 뜻이자,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뜻입니다. 정체성은 존재가치 그 자체이기에 잃어버렸거나 흔들리는 정체성을 찾는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회적 경제 역시 정체성을 찾고 확립하는 일은 존재가치, 존재의 이유를 다지는 일이기에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자,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질문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다섯 개의 사회적경제 기본법은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적경제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경제활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본권리로서 인권의 신장, 노동통합과 평등한 고용기회의 확대 등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규정된 사회적 가치는 헌법 상 국가의 의무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던져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는 국가의 일을 대행하는 곳인가?, 사회적경제에 대한 각종 지원이 이 때문인가? 그렇다면 하청 아닌가?”라는 질문입니다. 사회적경제 진영에 있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대행 역할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명확히 어디가 경계인지, 어떻게 역할이 달라야 하는지 이야기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맞서 있습니다. “영리기업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것으로 환경보전과 지역사회 발전 등을 도모하고 있는데, 사회적경제는 영리기업과 무엇이 다른가?”, “사회적경제에서 만들어 내는 일자리와 사회서비스 등은 국가와 영리기업에서 만들어내는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회적경제의 선한 지향과 방법은 사업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는 게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 존재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언과 보고서는 정체성 논의의 마중물”, 릴레이 정체성 선언 제안  

이와 같은 사회적경제 정체성과 관련해 지난 7일 강원도 원주에서는 원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주관으로 의미 있는 포럼이 진행됐습니다. 지난 3월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총회에서 만들기로 결의한 ‘사회적경제 정체성 선언과 보고서(이하 선언과 보고서)’를 처음 발표하는 자리이자, 정체성에 관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언과 보고서 공동 집필자인 이경란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교육연구원 부원장은 기조 강연을 통해 “우리 안에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많은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고, 이는 사회적경제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했다는 증거”라며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다시, 사회적 경제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지난 7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포럼. 원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주관했다.
'다시, 사회적 경제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지난 7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포럼. 원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주관했다.

이어 사회적경제를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를 바탕으로 조직되고 구성원들의 평등한 참여가 보장되며, 국가 및 시장으로부터 자율성을 지향하면서 연대의 실천을 통해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제활동”으로 정의하고, 이는 법제도에 따른 정의가 아닌 한국의 현실과 사회적 경제의 실체에 기반을 둔 정의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현재적, 잠재적 규정이라는 점과 제도로서 규정된 조직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사회적경제의 범위를 규정해야 하고, 제도화된 사회적경제가 실체로서의 사회적경제로 품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사회적경제다운 모습을 갖는 것은 시장경제의 지배를 제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가려는 태도와 품성을 실천으로 옮길 때 가능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경제 다움의 실천을 위해서는 사회적경제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사람의 문제와 결합해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사회적 이상을 가져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년여 동안 학습회와 인터뷰 등을 통해 집필하고 있는 선언과 보고서가 정체성 논의를 시작하는 마중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며, ‘2021 한국 사회적경제 공동행동’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릴레이 ‘사회적경제 정체성 선언’과 미션과 비전을 이야기하는 공론장 만들기 등을 제안했습니다. 

“비영리적 분배를 구체화하고 보편화해야” 

이날 포럼에서 ‘사회적경제 정체성과 지역사회 운동의 방향’을 주제로 발제한 박준영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이사장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모든 사회적경제 법인은 비영리성을 명확히 내재하고 있다.”라며 “사업체로서 매출행위에 기반을 둔 비영리적 분배 정의의 개념을 세우고, 지역사회 중심의 재분배적 실물경제를 사회적경제가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서비스와 돌봄의 영역 등에서 비영리적 분배를 구체화하고 보편화해야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문보경 경기도사회적경제센터장은 ‘사회적경제 정체성과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거버넌스는 사회적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며, 지역사회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적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 방안을 찾아내고,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정부와의 공동생산을 실현하기 위해 전제돼야 하는 것”이라며, 사회적경제가 주체가 되는 지역사회 발전계획 수립 등 거버넌스에 있어 사회적경제의 주도성 회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이야기했습니다.  

토론에 나선 오인숙 한국자활기업협회장은 “혁신과 포용성장, 사람중심의 경영, 한국판 뉴딜 등 사회적경제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는 당사자 조직과는 거리가 멀다.”라며 현장에서의 실천을 위해서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사회적 경제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지난 7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포럼. 원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주관했다.
'다시, 사회적 경제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지난 7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포럼. 원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주관했다.

이강익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정체성을 논의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 실천하면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이야기해야 한다.”라며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 등을 위한 공동 실천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 남들과 소통하며 남에게 인정받는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길주 강원도사회적경제위원회 위원은 “각 부문별 주체가 자기가 아닌, 어떻게 옆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자기 조직의 사업을 놓지 못하는 현재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사업연합회와 더 나아가 연맹체를 구체적으로 만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상훈 원주사회적기업협의회장은 “시민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라며 “더불어 잘 먹고 잘 살자고 이야기하지만, 자기조직 이익에만 국한돼 있고, 지역사회의 이익에는 무관심한 게 현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조세훈 강원사회적경제연대 사무국장 “제도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환경에 적응하는 동형화가 문제”라며 “제도화에 대한 경계가 아닌 동형화를 가져오지 않는, 제대로 된 제도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토론에 나선 하재찬 한국사회적경제연대 상임이사는 “필요와 욕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정부에 휩싸여, 제도적 동형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게 문제”라며 “역량강화를 통해 시민 체감도를 높여 스스로도, 외부에서도 인정할 때 정체성이 나온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존재가치를 빛낼 정체성과 실천방법을 위해 

선언과 정체성 보고서를 통해 밝힌 사회적경제 정의에 비춰보면 사회적경제의 목적은 우리시대의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입니다. 또한, 이를 위한 수단은 경제활동입니다. 결사와 구성원들의 평등한 참여,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자율성, 연대와 실천은 사회적경제로 불리기 위한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의에는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경제활동의 목적이 영리에 있지 않다는 것과 잉여에 대한 사적 취득을 제한한다는 것,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 구성원과 지역주민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사회적경제에 중요한 특징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이 사회적경제의 정의와 사회적경제로 불리기 위한 조건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다운 경영방법을 도출해 전파하고 실천함으로써 다른 범주로서의 사회적 경제 존재가치를 드러냈으면 합니다.

8시간 노동, 최저임금제 도입, 여성참정권 보장, 구성원 밖 어려운 이웃에 대한 환대 등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진영이 역사적으로 제도와 시대적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사업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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