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세금을 쓰는 정부. 하지만 꼭 돈을 들인 만큼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종종 '퍼주기'라는 지적도 받는다. 투입한 재원만큼 효과가 보장될 방법은 없을까? 최근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효율적인 재정 지출 방식으로 'SIB(Social Impact Bond, 사회성과연계채권)'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SIB의 국내외 성공·실패 사례를 다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한다.

2007년 '피터버러(Peterborough)' 시에서는 교도소에 1년 미만 복역하고 출소한 재소자들이 1년 이내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약 60%에 달했다. 손에 쥔 돈도 거의 없이 살 곳도, 일할 곳도 없이 풀려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약물 중독자이거나,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이유로 얼마 안 가 다시 교도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범죄를 저지르면 가두는 벌’ 정도로는 이들의 재범을 막기 어려웠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했다. 2010년, 영국 법무부는 이들의 재범률을 낮추는 실험을 시작했다. 약 500만 파운드(한화 약 73억 7000만원) 규모의 예산이 들어가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 좀 달랐다. 록펠러재단 등 17개 민간 투자기관이 먼저 돈을 모아왔다. ‘SIB(Social Impact Bond)'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민간 투자기관이 돈을 모아 재범률 낮추기 프로젝트를 6년 동안 수행하고, 감소율 목표치를 달성하면 정부가 이들에게 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선 사업 - 후 예산 집행’ 형태인 셈이다.

재범률이 떨어지면 이자를 준다...왜?

재범률 감소 프로젝트 대상은 피터버러 교도소의 12개월형 미만 남성 성인 재소자 약 2000명. 이들의 재범률이 7.5% 이상 감소할 경우, 투자자들은 원금과 함께 이자까지 받는다. 감소율에 따라 이자는 최소 연 2.5%, 최대 연 13%에 달할 수 있다. 그러나 7.5% 라는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원금마저 잃는 구조였다.

투자자들이 조성한 500만 파운드는 ‘원 서비스(One Service)’라는 사업수행기관에 주어졌다. 원 서비스는 6개 민간기관(MIND, Ormiston Children and Families Trust, SOVA, St. Giles Trust, Through the Gate Training CIC, YMCA)이 뭉친 조직으로, 재소자들이 출소 후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재소자 지원, 재소자 가족 지원, 지역 공동체 지원 등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또, 기존에는 하기 어려웠던 중장기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2017년 7월 영국 법무부는 사업 최종 평가 결과, 적용 대상자인 약 2000명의 재범률이 9%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목표치였던 7.5%를 넘어선 수치다. 결과적으로 해당 SIB 사업에 출자한 투자기관들은 원금에 더해 연 3%를 조금 넘긴 이자를 받았다. 이렇게 세계 최초 SIB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세계 첫 SIB 사업은 영국 '소셜파이낸스'라는 사회적 금융기관이 2010년 운영기관으로 주도하면서 시작됐다./출처=소셜파이낸스
세계 첫 SIB 사업은 영국 '소셜파이낸스'라는 사회적 금융기관이 2010년 운영기관으로 주도하면서 시작됐다./출처=소셜파이낸스

이 같은 SIB 사업은 2020년 7월 기준 영국에서 누적 69건이 실행됐다. 영국만이 아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확산해 33개국에서 183건이 완료됐거나 실행 중이다. 피터버러 교도소 SIB 사업의 운영기관을 맡았던 사회적 금융기관 '소셜파이낸스(Social Finance)'는 “2010년 소셜파이낸스가 처음 개척한 이후, SIB라는 개념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뒤를 미국이 26건으로, 네덜란드가 15건으로 잇고 있다.

사회적 성과 높으면 정부가 이자 얹어서 구매

SIB 사업은 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을 먼저 집행하는 게 아니라, 민간기관이 알아서 해결하면 정부가 그 성과를 ‘구매’하는 개념이라 의미가 있다. 기존에 정부는 정책을 실행할 때 그 성과와 무관하게 실행 비용에 예산을 써왔는데, 그렇기 때문에 종종 ‘재정낭비’라는 비판을 받는다. 성과가 생겨야 예산이 집행되는 SIB 사업은 효과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

SIB 사업의 운영구조.
SIB 사업의 운영구조.

SIB 사업에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관여한다. ▲사회적 성과를 구매하는 ‘성과보상자(주로 정부)’ ▲직접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수행기관’ ▲사업수행 기간 자금줄이 돼주는 ‘민간투자자’ ▲성과를 측정하는 ‘평가기관’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사업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운영기관’이다.

사업 방식은 이렇다. 성과보상자는 특정한 사회문제의 해결 정도에 따라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계약을 운영기관과 체결한다. 계약서에는 사업대상, 기간, 성과지표, 성과기준, 집행예산 등 주요 내용이 포함돼있어야 한다.

이후 운영기관은 정부와의 계약을 근거로 민간투자자로부터 사업자금을 조달한다. 정부와의 계약서는 사업 성공 시 투자자에게 자금을 상환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운영기관은 사업 수행기관을 선정하고 관리한다. 수행기관은 수혜집단(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직접 실행할 현장 중심의 단체로 선정한다.

수행기관은 사업 기간 사회문제 개선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 종료 후에는 평가기관이 정해진 성과지표에 따라 사업 성과를 측정하고, 이때 나오는 결과에 따라 원금과 이자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 성과지표, 기준, 측정 시기 등은 사전에 정부와 운영기관과의 계약에 명시된 바에 따른다.

SIB 사업 A to Z

어떤 사업이 SIB에 적합할까?

효율적이라고 해서 모든 공공사업에 SIB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국내 SIB 사업 기획·운영기관인 ‘팬임팩트코리아’의 곽제훈 대표는 “수급비를 주거나 긴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전통적인 복지 사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영역은 계량화된 효과와 관계없이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본만 투입하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 사업도 적절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질병 예방 대신 사후적으로 약을 제공하는 일, 물품을 구입해 전달하는 일 등이다.

곽 대표는 SIB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객관적·정량적 성과지표의 존재와 ▲충분한 사회적 편익 창출을 꼽았다. 성과지표를 명확한 숫자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하며, 사업 성공 시 절감되는 사회비용이 투입되는 사업비보다 커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취업률, 재범률, 학업성취도 등 숫자로 비교 가능한 지표는 쓸 수 있지만, 만족도 설문이나 자기평가처럼 주관적인 지표는 안 된다. 곽 대표는 “사업 성과에 따라 정부가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데, 만약 측정 방식이 매우 주관적이거나 불합리하다면 정부가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을 테고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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