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세금을 쓰는 정부. 하지만 꼭 돈을 들인 만큼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종종 '퍼주기'라는 지적도 받는다. 투입한 재원만큼 효과가 보장될 방법은 없을까? 최근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효율적인 재정 지출 방식으로 'SIB(Social Impact Bond, 사회성과연계채권)'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SIB의 국내외 성공·실패 사례를 다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한다.

안드레아 필립스 메이콤캐피탈 대표(前 골드만삭스 부사장) 인터뷰

(※박유진 이로운넷 기자가 지난 10월 8일 안드레아 필립스 메이콤캐피탈 대표를 영상으로 인터뷰했다.)

미국 뉴욕주 뉴욕시 퀸즈와 브롱크스 사이에 있는 ‘라이커스섬(Riker's Island).’ 이곳은 섬 전체가 교도소와 정신병원으로 이뤄진 교정시설이다.

2012년 조사 결과 라이커스 섬에 수감됐다 풀린 청소년이 1년 안에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약 50%. 이는 뉴욕시의 큰 골칫거리였다. 재범률을 효과적으로 낮출 방법이 필요했다.

그해 8월,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마이크 블룸버그는 재범률 감소 프로젝트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16~18세 사이의 흑인·라틴계 청소년 수감자 3400여명을 대상으로 4년간 교육과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 재소자의 재범률을 기존보다 10% 이상 줄이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3년 만에 중단됐다. 중간점검 결과, 재범률을 10% 이상 감소시키지 못할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결국,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한 채 프로그램은 종결됐다.

그럼 이 사업에 쓰인 돈은 낭비된 세금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시가 추진했지만, 정부 예산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낮추지도 못했으나 세금이 낭비되지도 않은 셈이다. SIB(Social Impact Bond) 방식을 활용해 민간의 투자금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으며, 손해는 투자자가 봤다. 사용된 건 정부 재원이 아니라 민간 투자금이었다.

안드레아 필립스(Andrea Philips) 메이콤캐피탈 대표는 지난 2016년 ‘2016 사회성과보상사업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사진=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안드레아 필립스(Andrea Philips) 메이콤캐피탈 대표는 지난 2016년 ‘2016 사회성과보상사업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사진=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라이커스섬 사례는 미국 최초의 SIB 사업이었다. 지난 10월, 당시 사업에 투자했던 안드레아 필립스(Andrea Philips) 골드만삭스 전 부사장(현 메이콤캐피탈 대표)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라이커스섬 SIB 사업이 ‘실패했지만 성공으로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 들었다.

2012년 골드만삭스는 해당 SIB 사업에 4년간 분기별로 96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만약 4년간의 프로그램 운영 이후 재범률이 정확히 10% 감소하면 뉴욕시는 투자원금만 지급하면 되고, 감소율이 높을수록 더 많은 이자를 얹어 주는 방식이었다. 10% 감소를 달성하지 못하면 골드만삭스가 손해를 보는 형태였다.

“라이커스 섬의 청소년들에게 매우 양질의 (교육 훈련) 서비스를 제공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예상했던 수준의 재범률 감소는 없었습니다. 모든 참여자가 실망했죠. 하지만 우리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구조와 자금 조달 기제가 정말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골드만삭스는 3년 동안 투자한 금액 720만 달러를 모두 잃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결과적으로는 120만 달러만 손해를 봤다. 투자 계약 당시 블룸버그재단(The Bloomberg Foundation)이 나서 손해를 상당 부분 감당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골드만삭스는 120만 달러, 블룸버그재단은 60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투자를 이끌었던 안드레아 필립스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국 최초의 SIB 사업에 투자할 기회가 생겨 매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은 그 효과와 상관없이 영구적으로 자금을 지원받는 경우가 많은데, SIB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그램 종료를 결정했다”며 “전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에서는 확실히 SIB 사업이 은행도 뛰어들 수 있는 투자라는 사실을 증명했고, 투자할 때 직면하는 모든 부가적인 규정들을 시범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골드만삭스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드레아는 “SIB 사업에 관여해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했고, 라이커스 섬의 청소년들에게 지원되던 서비스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 않게 관리했다”고 전했다.

안드레아에 의하면 라이커스 섬 SIB 사업은 임팩트 투자에 ‘열광하는’ 고객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역할도 했다. 이는 골드만삭스의 임팩트 투자 확대로 이어졌다. 그는 "이후 합자회사 형태의 소셜 임팩트 투자 펀드에 1억 4000만 달러가 모였다"며 "이는 다른 SIB 사업에도 쓰였고, 저소득층 커뮤니티 대상 인적 서비스 프로그램 확장과 공립 학교 개발에 대한 자금 조달에 대한 투자에도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안드레아는 “빈곤과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춘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2016년 골드만삭스를 퇴사하고 사회성과보상사업에 투자하는 전문 투자사를 만들었다. SIB 사업에 투자하고, 펀드를 조성했던 경험을 갖고 임팩트 투자사 ‘메이콤캐피탈(Maycomb Capital)’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안드레아는 “경제적 기회 접근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데 (임팩트 투자가) 정말 중요한 도구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창업 계기를 밝혔다.

메이콤캐피탈은 크게 ‘커뮤니티 성과펀드(The Community Outcomes Fund)’와 ‘사회적 기업가 펀드(The Social Entrepreneurs’ Fund)’를 운용하는데, 전자는 주로 지역사회와 연계해 취약계층 문제를 해결하는 민관협력 사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안드레아는 커뮤니티 성과펀드의 매니징 파트너를 맡고 있다.

그는 “커뮤니티 성과펀드는 지금까지 5300만 달러를 모았다”며 “그중 3분의 1이 넘는 금액을 지역사회에서 각종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데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2017년부터 매사추세츠주와 함께 2000명의 성인 영어학습자들(이민자와 난민)을 대상으로 영어교육과 직업훈련을 하는 ‘매사추세츠 경제 선진화 프로젝트(Massachusetts Pathways to Economic Advancement)’를 진행 중이다. 사업 기간은 총 6년이며, 교육을 통해 대상자가 취업에 성공했는지, 얼마나 오래 취업이 유지되고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성과를 판단해 원금 보장과 이자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 이외에도 테네시, 사우스캐롤라이나, 펜실베니아 등에서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자를 진행 중이다.

메이콤캐피탈이 커뮤니티 성과펀드로 투자한 ‘매사추세츠 경제 선진화 프로젝트' 현장./사진=메이콤캐피탈
메이콤캐피탈이 커뮤니티 성과펀드로 투자한 ‘매사추세츠 경제 선진화 프로젝트' 현장./사진=메이콤캐피탈

SIB 사업 활성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은 점점 더 본격화되는 중이다. 미국은 영국 다음으로 SIB 사업을 가장 많이 실행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관련 연방법이 통과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하원을 통과한 ‘사회성과연계채권법(SIPPRA, The Social Impact Partnerships to Pay for Results Act)’ 제정안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상원을 통과한 것. 안드레아는 “미국에서는 민간 투자를 활용해 커뮤니티의 '기초(bricks and mortar)'에 투자한 역사와 많은 사회 서비스 프로그램을 계약 기반으로 외주화한 역사가 깊은데, 이 두 요인의 작용으로 SIB 사업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늘고 있는 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드레아는 앞으로도 이런 ‘성과 기반 금융’이 더 확대될 거라 전망한다. 그는 “미국 정부가 보건 복지 프로그램에 연간 80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를 지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난하게 태어난 아이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지속적인 빈곤과 정부 지출을 함께 고려할 때, 이러한 성과 기반 금융 방식이 강력한 해결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회복기에 이러한 방식을 활용하는 지역사회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바이든 행정부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는 거로 안다"고 전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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