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가 세계 경제의 중심부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기존의 경제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받았지만, 최근 주요 국제기구 등이 사회적경제 시스템을 주류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 세계적대유행(팬데믹) 위기 극복에서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로운넷>은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경제 시스템의 주류 진입 현상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①사회적경제, 주류로 떠오른다
②세계 각국 행정·금융 시스템은 사회적경제로 재구성 중
③우리나라 사회적경제, 글로벌 흐름에 주도적 참여
④사회적경제가 주류가 되기 위한 과제는 무엇?
⑤[인터뷰] 고형권 OECD 대사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대안 ‘사회적경제,’ 한국도 협력해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목하기 전부터 사회적경제는 각국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만한 사례들을 만들어왔다. 사회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에 대한 금융 공급을 의도적으로 늘리고, 사회적경제법을 채택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며, 시민자산화로 개인이 아닌 공동의 부를 창출하는 등 기존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실험을 진행하고 성공시켜왔다.

약 2년 동안 코로나19 세계적대유행(팬데믹)을 겪으며, 이런 경험들이 특별하고 혁신적인 사례에서 벗어나 더 확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모였다.

BSC는 영국에서 12년간의 논의 끝에 2012년에 만들어진 사회투자도매은행으로 시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투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 출처=BSC 홈페이지
BSC는 영국에서 12년간의 논의 끝에 2012년에 만들어진 사회투자도매은행으로 시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투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 출처=BSC 홈페이지

영국 도매기금, ‘임팩트 투자’로 팬데믹 대응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지난해 3월, 영국 내 약 20개 사회투자기관이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영국 내 모든 자선단체와 사회적경제기업이 코로나 피해기업 대출을 활용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내용이다. 영국이 코로나19로 이동제한령을 내린 이후 3달 만에, 이들에 대해 1억 파운드(약 1600억원) 규모의 출자가 이뤄졌다.

이같은 활동에 구심점 역할을 했던 주체는 사회적금융 기관 ‘빅소사이어티캐피탈(BSC)’이다. ‘사회적금융’이란 사회적경제 활동을 뒷받침하는 금융이다. 좁게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사회적경제기업 등에 투자·융자·보증 등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활동에서부터 넓게는 임팩트투자와 사회책임투자까지 포괄한다.

BSC는 영국에서 12년간의 논의 끝에 2012년에 만들어진 사회투자도매은행(Social Investment Wholesaler)이다. 민간자금과 매칭투자를 전제로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을 통해 사회적경제기업을 간접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팬데믹 대응 사례처럼 영국 내 사회적금융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역할도 한다. 

기금 출범 당시 영국은 휴면예금 4억 파운드와 4대 대형 은행의 2억 파운드 출자로 6억 파운드(약 9607억원) 재원을 조성하고, 정부 관여를 최소화해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덕분에 임팩트 투자 시장은 기금 출범 전인 2011년 8억3000만 파운드(약 1조 3280억원) 규모에서 2019년 51억 파운드(약 8조 1603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BSC 조사 결과, 영국이 코로나19로 이동제한령을 내린 이후 3달 만에 사회적경제기업과 자선단체에 대해 294건(약 1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사진=BSC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도 이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2019년 초 출범한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본딴 모델이 바로 BSC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은 5년간 3000억원 조성을 목표로 탄생했다. 추진 당시 법에 근거한 기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법 통과까지 기다리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재단법인으로 출범해 정부 출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미국·일본 등 외국에서는 정부재정 및 휴면예금을 비롯한 공공재원을 바탕으로 사회적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18년 한국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 한국형 BSC 설립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기금은 2019년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출처=금융위원회

법으로 뿌리내린 퀘벡 사회적경제

금융 생태계 구축 외에도 여러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사회적경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법을 제정한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같이 개별 조직을 인정하는 '개별법' 말고 생태계 전반을 공인하는 ‘기본법’ 이야기다. OECD에 따르면 OECD 회원 중 프랑스, 스페인 등 7개국은 이러한 기본법을 제정했고, 멕시코 등 30개국이 추진 중이다.

캐나다 퀘벡주는 지난 2013년 의회 만장일치로 '사회적경제법(Social Economy Act)'을 제정했다. 법에는 퀘벡 사회적경제의 정의와 조직형태, 설립에 대한 법적 근거, 정부의 역할 등 사회적경제 활동과 발전에 필요한 내용이 담겨있다.

기본법은 개별 사회적경제조직을 정의하는 법과는 달리, 좀 더 포괄적으로 사회적경제 분야를 공인해 발전을 촉진한다는 장점이 있다. 법에 따르면 주 정부는 5년마다 사회적경제 정책 실행 계획을 채택해야 하고, 필요할 경우 수정할 수 있다. 또, 소관 부처인 경제혁신부 장관이 10년마다 법 실행 상황에 대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법 통과 덕에 퀘벡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주 정부의 역할 범위를 명확히 정할 수 있었고, 사회적경제기업을 지원할 구체적인 근거도 생겼다. 제정 이후 퀘벡 주정부 집권정당이 3번 바뀌었는데도 사회적경제는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경제, 글로벌 연대 강화하고 목소리 내기 시작

최근 국제기구들 사이에서는 본격적으로 사회적경제 의제를 중앙으로 끌어모으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OECD가 지난해부터 ‘사회연대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제 공동행동’을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집행위원회는 올해 말 ‘유럽 사회적경제 실행계획’을 채택할 예정이며, 국제노동기구(ILO)는 내년 6월 개최하는 국제노동회의에서 사회적경제를 다룬다.

OECD는 약 30개 국가와 함께 하는 ‘사회연대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제 공동행동’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출처=OECD 홈페이지
OECD는 약 30개 국가와 함께 하는 ‘사회연대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제 공동행동’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출처=OECD 홈페이지

이런 움직임은 다양한 국가를 아우르는 비영리조직과 기관의 사회적경제 활동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며 활발해졌다.

코로나19 초창기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때, 사회적경제 관련 국제 조직들이 나서 기금을 조성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아시아 전반을 대상으로 투자하는 ‘사회투자네트워크(AVPN)’의 경우, ‘자선 공동투자 기금(Philanthropic Pooled Fund)’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지원해주는 기금이 많았는데, AVPN은 그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 기금은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4개 단체에서 수령했으며, 상당 부분 1차 의료 체계 강화를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또, 유럽 17국에 33개 사회적금융 회원기관을 둔 국제 비영리 조직 ‘유럽윤리적은행네트워크(FEBEA)’ 회원 기관들은 자발적으로 대출 상환 기간을 늘려줬고, 사회적경제기업을 대상으로는 추가적인 비용 없이 긴급 자금을 빌려줬다.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을 때도 사회적경제조직 간 연대는 국경을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국제 협동조합 임팩트 펀드(GCI 펀드, Global Cooperative Impact Fund)’를 운영하고 있다. 규모는 5000만 달러(약 592억원). 투자 범위는 30만~300만 달러(약 4억~36억원)이며, 장기 투자가 목표다. 중개 기관을 통하거나 직접 세계 여러 협동조합에 투자한다.

개별 국가를 뛰어넘어, 국제 사회 차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적경제 시스템에 대해서는 '경제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마티아스 코만 OECD 사무총장은 지난 9월 열린 ‘OECD 사회연대경제 국제 컨퍼런스’에서 "사회적경제조직은 사회적 과제를 직접 해결하고,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하며 탄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주류화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수행하고 있음을 지속해서 입증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벗어나 회복 관점에서, 사회적경제는 전반적인 삶의 질 성장의 중요한 동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참고

글로벌 이슈리포트 줌인(Zoom In) 6호 "유럽과 국제기구의 사회적경제 정책방향"

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From the Margins to the Main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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