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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란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말한다. ‘지역’에 대해서는 거리나 행정구역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시간을 기준으로 삼기도 하는 등 아직 통일된 지침은 없다. 전문가들은 농산물과 식탁의 사회적 거리가 줄어드는 게 결국 로컬푸드의 핵심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서울시 금천구에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건강한농부(이사장 황인호, 이하 건강한농부)는 28명의 조합원이 운영하는 로컬푸드 기업이다. 2017년부터 3년간 매주 화요일, 금천구 소재 금나래중앙공원에서 농산물직거래장터 ‘화들장’을 열어 주민들에게 산지 직송 농산물을 소개했다. 바로 옆 커뮤니티센터에서는 장터 농산물로 다양한 음식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사회적 거리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건강한 농산물을 찾아 화들장에 모여들고 커뮤니티센터에서 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동네 사람들을 만났다. 소소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지역의 문제를 놓고 토론도 했다. 건강한 먹거리를 매개 삼아 튼튼한 지역사회가 만들어졌다.

화들장은 지난해 3월 종료됐지만, 로컬푸드의 명맥은 '동네부엌 활짝(이하 활짝)'이 이어가고 있다. 활짝은 건강한농부가 지난 2019년 9월부터 금천구 독산동에 별도의 매장을 열고 케이터링 서비스 및 도시락과 반찬 꾸러미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GMO(유전자변형식품)는 취급하지 않는다. 또 대부분 국내산 농산물만 사용하되, 불가피하게 국내산 식자재를 구할 수 없는 일부 재료에만 수입산을 쓴다. 화학조미료 없이 당일조리를 원칙으로, 신선하고 맛있는 식자재로 음식을 만든다.

주문이 들어오면 타 지역까지 배달을 하러 가긴 하지만, 음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없어지기에 가급적 지역사회 위주로 영업을 하고 있다. 화들장 시절만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주민들에게 산지 직송 농산물들을 공급하기도 한다.

동네부엌 활짝 메뉴./출처=동네부엌 활짝
동네부엌 활짝 메뉴./출처=동네부엌 활짝

'어린이식당 튼튼(이하 튼튼)'은 활짝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2019년부터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2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오후 4~6시까지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활짝에 와서 튼튼 도시락을 받아 갈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직접 가게에서 식사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시락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꾸준한 활동 덕분에 건강한농부는 지난해 7월, 지역사회공헌형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지난 9월 29일,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활짝에서 건강한농부의 김선정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건강한농부가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그 와중에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건강한농부의 비전을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은 김 운영위원장과의 일문일답.


Q. ‘농부’라고 해서 서울에서 텃밭을 운영하는 줄 알았다.

텃밭조성사업도 하고 있다. 모모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며 활짝과 매출액이 비슷하다. 우리는 주로 ‘상자텃밭’을 만든다. 나무로 팔레트를 짜고 거기에 흙을 담아 텃밭을 만들어서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에 설치해준다. 도심에서 쓰지 않는 유휴지나 자투리땅도 텃밭으로 조성할 수 있으면 우리가 설계부터 설치까지 참여하고 필요한 경우,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모모공작소의 연혁./출처=모모공작소
모모공작소의 연혁./출처=모모공작소

Q. 텃밭 조성사업을 하다가 로컬푸드 사업으로 확장한 건가?

그렇다. 건강한농부의 조합원 대부분은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 출신이다.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금천구로부터 5000평 규모의 한내텃밭을 위탁·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비영리민간단체다. 당시 많은 회원이 도시농업 강사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생각이 달랐다. 텃밭조성사업이 더 나을 것 같아서 2014년에 따로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그게 건강한농부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소농이나 귀농초보들, 건강한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분들의 농산물을 도시에서 잘 거래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도시농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들장이라는 직거래장터를 운영했었고 그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먹거리 사업을 해보고 싶어 활짝을 열었다. 다만 화들장의 경우 커뮤니티센터 이용연장이 되지 않아 중단했다.

Q. 화들장 사례를 보면 공공기관과의 파트너십도 어느 정도 위험을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물론 공공기관과의 사업은 장점도 많고 현실적으로 안 하기도 어렵다. 결국 밸런스가 중요하다. 공공기관 사업과 민간에서 시민들을 상대하는 사업이 균형을 갖춰야 조합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활짝을 열게 된 것이다. 현재 활짝 매출은 80% 이상 지역 주민들에게서 나온다.

화들장 모습./사진=동네부엌 활짝
화들장 모습./사진=동네부엌 활짝

Q. 여러 가지 어려움 상황에서도 건강한농부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게 있다면.

규모는 작지만, 지역에 밀착한 협동조합 중에는 아직 성공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그 성공모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탓하기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뚫다 보면 길이 열리겠지’ 생각하며 버틴다. 도시농업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친환경 농법으로 땅과 흙이 살아나는 과정을 보면서 ‘아, 노력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크게 보면 기후위기나 플라스틱 문제부터 지역의 쓰레기 문제까지, 안 바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애쓰면 좋아지지 않을까.

Q. 특별히 지역사회에서 건강한농부의 비전을 찾은 이유는.

우리의 문제니까. 보통 주택가 문제 1번이 쓰레기, 2번이 주차다. ‘동네가 더럽다’, ‘이래서 아파트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서서 해결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외면하고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여기서 살았고 아이도 낳았으며, 또 우리 아이도 이곳에서 살고 이곳에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커졌다. 요즘 세상이 돈 벌어서 더 나은 동네로 이사 가는 게 쉬운 시대는 아니지 않나. 그럼 더더욱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지역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희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Q. 어떤 희망을 보았나.

서울시에서 마을활력소 사업 공고를 냈는데, 공간을 매입해서 지원자가 원하는 대로 공간을 지어준다. 이 사업에 우리가 참여하게 됐다. 이번에는 시설사용수익허가를 받아서 수익사업도 할 수 있다. 내년 말쯤 완공되고 다른 협동조합과 함께 들어간다. 3년 이상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활짝도 거기로 옮겨 2층에서 운영하고 1층은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 볼 예정이다.

어린이식당 튼튼 9월 5주 차 식단./출처=동네부엌 활짝
어린이식당 튼튼 9월 5주 차 식단./출처=동네부엌 활짝

튼튼도 4호점까지 나왔다. 활짝은 튼튼 1호점에 해당하고 2호점부터 4호점까지는 우리의 취지에 공감한 지역 내 다른 시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한 곳은 동네 서점인데 거기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가 식자재랑 인건비를 지원해주기로 하고 같이 시작하게 됐다. 다른 두 곳은 음식은 만들지 않고 우리가 만든 도시락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확산세가 엄청난 것은 아니어도 우리 나름의 선한 영향력이 지역에 조금씩 확대되는 것 같아 고무적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급식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 급식은 매출액 증가에 이바지하는 바도 크고 사업 기간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마을형 사회적기업 중에는 생각보다 친환경 급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우리가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도농 직거래 유통망을 로컬차원에서 좀 더 촘촘하게 만들고 싶다. 카페나 냉장 시설을 갖춘 곳에 산지 직송 농산물을 취급할 수 있는지 문을 두드려 보고 있다. 일명 ‘화들장 거점’을 모집하고 있다. 10개 동에 하나씩 10개만 더 생겼으면 좋겠다. 튼튼이 확대되어 가듯 ‘화들장 거점’도 금천구에 좀 더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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