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10년 생협법 개정으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도 공제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생협 관리감독 주무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후속 시행령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아 12년째 생협 공제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주요 생협 주체들은 공제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며 빠른 시행을 촉구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로운넷>은 생협 공제 시행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와 바람직한 추진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전문가 기고를 받아서 연속으로 게재한다.

12년째 시행되지 않는 생협 공제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공제는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특정한 관계로 연결된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상호부조 정신에 근거해서 공동으로 행하는 경제적 보장제도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100개 넘는 단체가 공제사업을 하고 있다. 운영하는 공제도 위로금 정도의 간단한 것부터 보험과 유사한 것까지 그 범위도 다양하다.

협동조합도 공제사업을 하고 있는데, 수산업협동조합은 1962년, 신용협동조합은 1972년, 새마을금고는 1991년부터 공제를 시작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2010년에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하 생협법)이 개정되면서 연합회와 전국연합회가 공제사업을 할 수 있게 됐으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의 대응이 늦어져서 현재까지 못 하고 있다. 생협 단체들과의 간담회, 국정감사에서조차 시행을 위해 준비하겠다고 계속해서 답변하던 공정거래위원회. 생협법 개정 이후 7년째인 2017년 2월에 입법 예고할 예정이라 밝힌 주된 개정안 내용은 ‘생협 전국연합회’에 국한해 공제사업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생협 공제와 유사한 국내 타 공제사업과 일본의 생협 공제사업 운영 실태 등을 고려할 때 전국연합회에 한해 공제사업을 허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생협 공제사업의 사업 주체로 상정한 ‘전국연합회’는 지역생협과 의료생협을 포괄하는 전국연합회로 2017년은 물론 2021년 현재도 존재하지 않으며 구성조차 힘든 조직이다. 또한 두레생협연합회, 아이쿱생협연합회, 한살림연합,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한국대학생협연합회라는 각 생협 연합회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립과 자조, 자치의 원리가 바탕이 되는 협동조합을 이해하지 못한 규제적 관점이라 하겠다.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 주최 아래, 공정거래위원회, 생협, 전문가가 참여한 TF가 구성됐다. 건전하고 투명한 생협 공제 운영 방안 마련을 위해 검토하고 협의했다. 그러나 입법 예고문에는 TF 협의 내용을 뒤집고 농협법, 수협법, 신협법과 같은 개별 협동조합법에 규정된 신용사업을 포함한 사업 전반에 대한 총괄 관리 감독 사항까지 넣은 강력한 규제가 포함되었다. 이에 5대 생협연합회는 반대했고 공정위는 입법예고를 철회했다. 이후 2017년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생협연합회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해 사업 시행 주체 개선을 검토해 9월 개정안을 내겠다”고 밝혔으나 진행되지 않았다.

생협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각을 비판하며 주무부처 변경을 요청하다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조성욱 위원장은 “부처변경과 별도로 공제사업 제도보완과 시행”을 다시 약속했고, 그 후로도 1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일본 생협 공제의 다양한 주체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연합회에만 공제사업을 허용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든 일본 생협 공제를 살펴보면, 약 7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8년 생협법이 제정 시행되고 다음 해 노다쇼유생활협동조합이 공제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의 생협은 노동자가 중심이 된 생협 공제, 직장 생협에서 실시하는 공제, 지역 생협에서 실시하는 공제, 대학 생협에서 실시하는 공제 등, 긴 역사 속에서 다양한 주체에 의해 크게 성장했다.

일본생협법 관련해서는 1948년 법 제정 이후, 59년만인 2007년 크게 개정돼 공제사업에 대해서도 건전성, 투명성 확보를 위한 규정이 마련됐다. 이때 일정 공제 규모를 초과하는 생협에 대해서는 타 사업과의 겸업 금지 조항도 포함됐다. 그래서 2008년 생협의 전국연합회인 일본생협연합회의 경우, 공제사업만을 분리·독립해서 일본코프공제생활협동조합연합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일정 공제 규모를 초과하는 연합회들도 각 연합회의 공제생활협동조합연합회를 만들었다. 

2007년 법 개정에 따라 공제사업을 하는 많은 생협이 연합회를 중심으로 재조직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제사업을 하는 생협이 공제사업을 분리, 독립하는 과정이 있었으나, 2005년 당시 생협 단체의 수입공제료 규모가 1조7556억 엔(17조원 이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협 공제 성장에 따른 건전성 확보를 위한 규제 마련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과정 역시 일방적인 법 개정이 아니었다. 일본생협총합연구소 코즈카 카즈유키(小塚和行) 전 연구원은 “일본 생협의 주무부처인 후생노동성은 생협법 개정 당시 공제에 대해 일정한 규제 수준이 필요하나, 보험업이나 다른 협동조합과 비교를 한 후에 소비자의 상호부조 조직이라는 생협의 특징이 손상되지 않도록 배려해 간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또한 생협제도 개선 검토회를 개최하고 생협 단체로부터 여러 차례 의견을 들었다. 생협 단체도 법 개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고 법 개정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실제로 개정된 생협법 내 공제 규정을 보면, 공제 규모에 따라 규제가 다르며 낮은 금액으로 하는 공제에 대해서는 생협의 자치에 위임해서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실태조사를 보면 2019년도 일본 생협에서 공제사업을 하는 조합은 518 곳으로, 지역 생협 229조합, 직장 생협 277조합, 연합회 12조합이다. 그 내용도 위로금, 대부, 보험업과 유사한 공제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한국도 생협연합회별 조합원의 필요에 따른 공제 필요 
공정거래위원회가 ‘생협 전국연합회’에 국한하여 공제사업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밝히면서 일본의 생협 공제사업 운영 실태 등을 고려한다고 하고 있으나, 일본 생협 공제의 70여 년 역사에 따른 성장, 그 성장 규모에 따른 규정 마련 등을 보지 않고 생협 공제 단체에 대한 관리 감독의 측면에서만 고려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국 지역생협은 크게 4개 생협연합회를 중심으로 사업과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학생협은 한국대학생협연합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각 연합회에 따라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공제사업이 실시된다면 조합원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지역사회 문제, 생활문제 등을 고민해 온 생협의 특징을 잘 살려서 조합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시민들의 사회적안전망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