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

“신진작가의 작품을 800만 원에 판매했어요. 컬렉터가 가격을 깎아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사회적기업인데요’로 시작해서 가격을 깎을 수 없는 이유를 5분 넘게 설명했죠. 그분도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다 맞는 말’ 이라며 정가로 구입하셨어요. 다른 갤러리에서는 깎아주길래 손해보는 느낌이어서 그랬다면서요.”

에이컴퍼니는 누구에게나 기회주기, 예술작품은 정찰제로, 작품을 할인해서 판매하지 않기, 작가와 계약서 쓰기를 고수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과 미술유통의 투명성을 위해서다. 에이컴퍼니가 진행하는 브리즈아트페어 현장 뿐 아니라 도록에도 가격을 기재한다. 그는 “알아주는 국내 미술품 경매사도 지급기한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작가들이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에이컴퍼니는 예술인들이 당당하게 인정받으며 활동을 이어나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진 예술가를 발굴해 콜렉터와 연결하는 브리즈아트페어, 문화복합공간 미나리하우스 등을 운영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많이 늘었다. 올해 진행한 2021 브리즈아트페어에는 200개의 작품 판매를 목표했지만 그를 웃도는 350점의 작품이 주인을 찾았다. 정 대표는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어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에이컴퍼니와 함께한 신진작가들의 작품/출처=에이컴퍼니
에이컴퍼니와 함께한 신진작가들의 작품/출처=에이컴퍼니

공대생, 증권회사·글로벌기업을 거쳐 창업 결심 

정지연 대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컴퓨터를 잘 모르지만 대학은 알려주는 곳 이니 배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학 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졸업을 위해 ‘교양에서 높은 점수를 받자’는 전략을 세웠다. 그렇게 평소에 관심이 있던 미술, 서양미술감상, 연극, 영화, 프랑스영화 등의 과목을 들었다. 전공보다 훨씬 즐겁고 재밌었다. 강의에서 스쳐지나간 작은 단어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메모했다가 공부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지역에서 자란 정 대표에게 현대미술은 색다른 주제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교양의 숙제였지만 나중엔 너무 좋아해서 미술관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졸업이 성큼 다가왔다.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었지만, 박봉에 밤낮도 없는 분야에서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전공을 살리지 않는 취직을 하려고, 또 서울로의 상경을 고민해 결국 대기업을 목표로 잡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우연히 방송아카데미를 수료했다. 그러던 중 대기업 증권회사 홍보팀의 사내방송인력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국의 지점에 정 대표가 진행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홍보팀 업무는 사내의 업무 사이클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경험의 범위도 넓었다. 하지만 1년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대기업에서의 삶이 기대했던 것보다 마냥 행복하지 않았고 멋져보였던 부분도 일부분이었다”며 성향과 맞지 않았던 첫 직장의 기억을 털어놨다. 

이후 글로벌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일하며 증권회사와는 또 다른 기업문화와 업무를 경험했다. 다른 직장에서도 ‘나는 뭘 해야 하나’가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웠다. 결국 ‘직장생활에는 뭔가의 고민이 다 있으니 좋아하는 일인 문화예술을 해보자’라고 결심했다. 그는 “마침 그 당시(2007년~2009년)가 미술시장의 전성기였다”며 “경제뉴스에서 미술시장 경매낙찰율이나 투자수익률이 함께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술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사례를 조사했다. 주변에서는 미술을 하려면 유학을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유학에 사용해야하는 비용과 시간을 창업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올어바웃헤어앤네일'의 내부 인테리어를 개선하기 전(왼쪽)과 후 모습/출처=서울시.
'올어바웃헤어앤네일'의 내부 인테리어를 개선하기 전(왼쪽)과 후 모습/출처=서울시.

드디어 찾은 내 길, 사회적기업가

“창업을 생각하자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더라구요. 그러던 중 ‘청년 체인지메이커의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체인지메이커의 개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거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 진로를 고민했다. 또 많은 회사를 짧은 시간에 거쳐 커리어도 엉망이라는 생각 때문에 패배감도 느끼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그러던 중 만난 프로그램은 정 대표 삶의 터닝포인트였다. 당시에는 1세대 사회적기업으로 불리는 터치포굿, 노리단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주로 해외의 사례로 사회적기업과 가치를 공부했다. 국내에 방문하는 사회적경제 인물을 만나고 해외로 사례탐방을 다녀왔다. 환경, 이주노동자, 여성, 노인 등 사업 아이템도 다양했다. 또 10대인 청소년부터 30대의 청년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에서 멋지고 당당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10대 청소년이 당차게 어른에게 ‘나한테 왜 반말하세요!’라고 항의하던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그는 “처음엔 ‘아, 이런 세상도 있네’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3달의 기간 동안 프로그램의 매니저들과 140여 통의 메일을 주고 받았다. 사업계획에 대한 피드백과 고민은 물론 '새벽 3시 기사를 보다 대표님이 생각났다'며 링크와 함께 온 메일, '구름이 너무 예쁘다' 말과 함께 사진을 첨부한 메일 등도 많았다. 그는 “‘새벽에 남을 위해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직업이 몇 개나 있을까?’ 저렇게 기꺼이 몰두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행복하겠다 싶었다”며 “그때의 경험이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만난 그 사람들과 경험에 고맙고 빚진게 많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후,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참여해,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보완해나갔다. 소셜벤처 경연대회나 창업아이디어 대회에서도 수상이 이어졌다. 창업준비를 이어가며 예술가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도 구상했다. 이후 1년 정도 활동을 이어가다보니 업무를 맡기는 곳도 생겼다. 

“대표로 기업을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부터는 사업을 실행하기 바쁘더라구요. 아이디어를 그려내고 이상적인 것을 꿈꿀 시간은 비교적 적어졌어요. 그때의 시작이 자연스럽고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해요.”

2021 브리즈아트페어에 참여한 작가들/출처=에이컴퍼니
2021 브리즈아트페어에 참여한 작가들/출처=에이컴퍼니

예술가에게는 기회를, 대중에게는 문화향유를

에이컴퍼니의 주요 사업은 개인 컬렉터와 청년 예술가를 잇는 브리즈아트페어, 문화예술복합공간 미나리하우스 등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큰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일자리, 공간제공, 경험 및 인사이트 경험의 기회 등을 만든다. 

2013년 혜화동의 작은 주택 1층에 복합문화예술공간인 미나리하우스의 문을 열었다. 2층에는 집주인 노부부가 살고 있는 가정집이었다. 넓진 않았지만 작가 레지던시, 전시, 게스트하우스 등을 동시에 운영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예술가 할인을 적용해 대학로의 국제공연예술센터나 아르코 등 외국인 무용수들이 장기투숙을 진행하기도 했다. 집주인 할아버지 내외와, 외국인 무용수, 예술가가 만드는 묘한 분위기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2014년에는 한국관광공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4000만 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정 대표는 “그 당시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이 전반에 활용되기 전이었는데 우리가 도시재생의 모델로 주목받기 시작해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청년혁신파크에서 진행했던 브리즈아트페어를 계기로 2015년부터 서울시와 함께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프로젝트는 청년예술가와 소상공인이 함께해 골목의 점포에 개성을 덧입힌다. 에이컴퍼니는 2016년부터 3년 간 운영을 맡았다. 이전에는 없던 방식의 사업이었다. 그래서 소상공인의 심사부터 예술가들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 예술가와 소상공인의 반응도 ‘자식 같아 잘해주고 싶다’, ‘예술가 라더니 애(?)가 왔냐’, ‘제가, 정육점에서 일한다구요?’으로 가지각색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울고불고 못하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참가자 모임에서 서로의 경험과 팁을 나누고 노하우가 생겨 자신감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2016년 19명의 청년예술가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는 이제 서울시 15개 자치구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 대표는 “서울 내에 각 15개 자치구에서 최소 15인~20인의 작가가 참여해 약 300여명의 예술가가 예술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일 할 수 있게 됐다”며 “그 사실 만으로도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대부분 성과공유회에는 소상공인분들은 참여가 어려워요.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자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죠. 근데 어떤 사장님은 ‘나 안오면 우리 작가 기죽을까봐’ 가게를 옆집에 맡기고 왔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사업을 통해 예술가들이 경제적 안정 외에도 경험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다고 느꼈어요.”  

미나리하우스에서 제작한 최지현 작가 아트콜라보레이션 우산/출처=에이컴퍼니
미나리하우스에서 제작한 최지현 작가 아트콜라보레이션 우산/출처=에이컴퍼니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에 힘쓸 것

“제가 미술전공이 아니어서 초반엔 자신감이나 외부의 시선을 신경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에이컴퍼니는 평론이나 이론을 펼치는 곳이 아니에요. 고객에게 예술작품을 판매하고 수익을 내는 곳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제 선택이 맞는 걸 보고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졌어요. 또 외부에서도 구성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어요. 앞으로 에이컴퍼니는 예술가를 개별로 돕기보다,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앞으로 목표 중 하나는 브리즈아트페어가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아트페어로 꼽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에이컴퍼니의 성장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들과 명확한 계약서를 쓰고, 작품을 할인하지 않고, 정찰제로 판매하고, 대중과 문화예술의 간극을 줄이는 아트페어가 주목받는다면 좀 더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가 조성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사용하던 미나리하우스의 운영을 잠시 멈췄다. 미나리하우스는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서울 뿐 아니라 제주도에도 미나리하우스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에 위치한 호텔에 숍 인 숍형태로 입점을 준비 중이다. 그는 “벽지나 패브릭, 향초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활용 가능한 제품들을 위주로 준비하려고 한다”며 “이를 통해 예술가들이 미나리하우스에서 저작권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컴퍼니를 운영한지 벌써 10년이 됐어요. 문화예술은 호흡을 길게 보는게 중요해요. 긴 시간동안 작더라도 꾸준히 성장해왔어요. 이 저력으로 다음 10년은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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