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린 '경남재난훈련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이 뉴베이스가 제작한 재난대응 툴킷으로 훈련하고 있다.

교통사고, 화재, 폭발, 붕괴, 환경오염, 유해물질…. 예측하기 어려운 각종 사건·사고와 재난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한다.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하는 대응팀은 어떻게 최선의 의사결정을 할까? 어떤 매뉴얼을 따라야 인명·재산 피해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소셜벤처 ‘뉴베이스’는 재난 상황에서 구조팀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다. 어떤 환자를 어떤 병원으로 어떻게 이송할지, 현장에서 구급차, 살수차, 펌프차 등 위치는 어디로 배치할지, 사상자 통계를 분석해 어떤 방식으로 언론에 브리핑할지 등 재난 현장에서 필요한 주요 의사결정을 담은 ‘훈련 툴킷(toolkit)’을 제작해 제공한다.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재난 대응 매뉴얼’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세부적 내용 또한 문서화돼 있다. 하지만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현장 상황에 따라 즉각 대응하는 경우도 많아 그대로 따르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무엇보다 매뉴얼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훈련을 시행할 때 시간적·물리적·예산적 장벽이 크다는 점도 어려움으로 꼽혀왔다.

뉴베이스 재난훈련 툴킷에는 가상훈련 도면, 건물?자원 모형, 재난환자 카드 등이 담겨 있다.

도상훈련 통해 시간·물리·예산 한계 극복, 실제 상황처럼 훈련하도록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뉴베이스는 재난 대응 매뉴얼을 기본으로 한 프로그램을 구성해 구조대원, 의료진, 기관 인력 등이 모여 ‘도상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도상훈련이란 지도 위에 시설을 표시한 다음, 도구나 부호를 이용해 실제 상황처럼 움직여보는 것을 말한다.

박선영 대표는 “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중요한데, 오프라인에서 실행하는 건 아무래도 제약이 많아 도상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마땅한 툴킷이 국내에 없어 뉴베이스에서 가상 도면, 건물·자원 모형, 재난환자 카드 등이 담긴 도구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재난 현장은 굉장히 복잡해서 한눈에 파악하기가 힘들어요. 툴킷을 사용해 재난 환경을 축소하면 테이블 위에 단순하게 구현해낼 수 있어요. 관계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재난이 났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현장에 어떤 시설물을 설치해야 하는지, 사상자들을 어떻게 구조해 병원으로 이동시킬지 등 순서를 파악하고 실제 상황처럼 훈련을 해보는 것이죠.”

뉴베이스는 소셜벤처 액설러레이터 ‘SOPOONG’의 지원을 받아 지난 6월 열린 데모데이에서 사업을 발표했다.

한 세트당 최대 400만원 접근성 높여, 전국 74개 기관에서 도입해 활용

2014년 1월 뉴베이스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재난 대응 도상훈련이 활발하지 않았고, 참여기관도 제한적이었다. 현재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의료기관과 보건소, 소방서, 대학교 등 전국 74개 기관에서 뉴베이스의 툴킷을 도입해 훈련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 1억 5000만원 달성, 올해 2억 5000만원 돌파를 앞두고 있는 등 사업성을 인정받게 됐다.

뉴베이스의 툴킷은 한 세트당 최대 400만원으로, 선진국 재난훈련 제품을 수입하는 비용 3000만원에 비하면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각 기관의 필요와 예산에 따라 원하는 일부 도구만 선택해 구입할 수도 있다. 가격 혁신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툴킷 제작 필요성을 인식한 응급의학과 의사, 재난의학회 교수 등이 라이선스 비용 없이 정보를 공유해줬고, 실제 사례를 직접 분석해 연구를 거쳐 케이스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보험사, 음원 유통사 등에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서비스 기획 업무를 하던 박 대표는 처음에는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헬스케어 서비스 사업을 하려다가 지금의 재난 훈련 툴킷을 제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회사를 설립하던 해 2월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4월 세월호 침몰 사건 등 대형 참사가 연달아 일어나면서다.

박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기술적 도전의 하나로 즐겁게 시작했는데, 참사 이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는 책임감으로 사업에 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재난 대응에 대한 필요성이 확산되고, 여러 기관에서 재난 훈련이 의무화되는 등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뉴베이스가 하는 일에 공감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훈련을 한다고 해서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사람이 안 죽는 건 아닙니다. 사고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소방서부터 병원, 군부대,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수많은 기관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현장에 한꺼번에 몰리거든요.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치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훈련을 하는 겁니다. 사고 규모가 조금이라도 축소되고, 사상자가 한 명이라도 줄어드는 게 저희가 바라는 최고의 목표죠.”
 

박선영 대표는 "보건소, 소방서, 대학 응급구조학과 등에서 뉴베이스의 툴킷으로 훈련을 하는데, 미래의 응급대원의 교육에 우리가 도움이 된다는 자체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장마나 태풍 등 자연재해가 재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산업화·도시화·세계화를 거친 최근에는 재난의 범위나 규모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아프리카 중동에서 유행하던 메르스가 한국에 들어와 수많은 사람을 전염시키는가 하면 붉은 개미, 조류 인플루엔자, 방사능·발암 물질 등 예상치 못한 위험 요소들이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박 대표는 “뉴베이스가 대응 매뉴얼이나 훈련 도구를 만들어내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재난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를 대비하기 위한 전문 업체들이 많이 늘어나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이 분야의 스펙트럼도 더 넓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올 상반기 소방 도상훈련 툴킷을 제작한 뉴베이스는 하반기에는 의료기관을 위한 도구를 연구해 개발할 계획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예측 가능한 상황으로,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의 훈련 체계로” 만드는 뉴베이스는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디자인하는 중이다.

글. 양승희 이로운넷 기자
사진제공. 뉴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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