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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는 약 10만명의 정신장애인이 등록돼있다. 이중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2020년 통계청 조사 기준 1만 159명. 11%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약 80%는 비정규직 임금근로자라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조사가 있다.

이들에게 건강한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2015년 사회적협동조합 모아(이하 ‘모아’)가 출범했다. 모아는 서울시 중곡동·공덕동·정동에서 카페 3곳을 운영하는 ‘일자리제공형’ 사회적기업이다.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 22명, 사회복지사 10명, 그리고 기타 후원자 2명으로 구성됐다. 지난 8월 5일, 카페 모아 1호점에서 천철자 이사장과 유일규 이사를 만나 모아의 탄생과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다음은 천 이사장, 유 이사와의 일문일답.

광화문 인근에 있는 '카페 더 헤아림.' '카페 모아'에서 바뀐 이름이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광화문 인근에 있는 '카페 더 헤아림.' '카페 모아'에서 바뀐 이름이다./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Q. 중곡동에 있는 1호점 근무자는 모두 정신장애인이라고 들었다. 그게 가능한가.

유일규 이사(이하 유): 맞다. 총 3명인데, 모두 정신장애인이다. 모든 매장을 다 이렇게 운영할 수는 없지만, 1호점은 직원 근무 경력이 길어 카페 운영 매뉴얼을 잘 숙지하고 있어서 가능하지 않나 싶다.

Q. 정신장애인들이 하기에 커피 사업이 어렵지 않은가?

유: 커피를 내려서 뽑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정신장애인이 먼저 사람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그들에게 낯선 사람을 상대하고 혹시나 생길 돌발 변수에 잘 대처해보라고 하는 건 힘든 일이다. 1호점 친구들이 능숙하게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건 꾸준한 재교육과 훈련 등 노력의 산물이다.

Q.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 사업 아이템으로 굳이 카페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유: 모아는 강남에 있는 사회복지기관, ‘태화해뜨는샘’(이하 ‘태화’)에서 조그맣게 운영하던 카페가 모태다. 당시 나는 태화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는데, 정신장애인을 바리스타로 멋있게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신장애인들이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민 인식이 다소 개선될 거라는 기대였다.

Q.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 같은데. 굳이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한 이유가 궁금하다. 카페 설립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유: 익숙한 복지관 사람들을 상대로 커피 내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0년 운영해보니 자신감이 붙었고, 아예 밖에서 제대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정신장애인들이 복지관 밖에서도 자립할 기반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태화를 포함해 서초·송파 지역 사회복지관 관계자들이 이런 취지에 공감했다. 이들이 협동조합 설립에 참여했다. 출자금 500만원을 마련한 후, SK이노베이션 후원금 9200만원 등을 보태 서울시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카페 모아 1호점을 개소한 거다.

Q. 직원들에게 '건강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했는가?

유: 직원 13명 모두가 정규직이다. 시간당 임금은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두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있다. 복지 카드가 있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의무고용률 3.1%를 초과해 채용하면 1인당 최대 월 80만원까지 정부에서 고용장려금을 받는다. 복지 카드가 없는 정신장애인의 급여는 전액 모아가 부담한다.

카페 모아 1호점 앞에선 유일규 이사(왼쪽에서 세 번째)./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카페 모아 1호점 앞에선 유일규 이사(왼쪽에서 세 번째)./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Q.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의 만족도는 높은가?

천철자 이사장(이하 천): 막상 밖에서 해보니 카페 일이 쉽지 않더라. 그래도 우리 가족은 모아를 ‘치유센터’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카페 일을 정말 좋아한다. 우리 아들도 1호점에서 근무한다. 어느 날 “어머니! 이것 보세요.” 하면서 통장을 보여주더라. 일한 만큼 월급이 계속 들어오니까 애들도 신나고, 우리도 신난다.

Q. 법인 설립 시 협동조합 유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 평소에 정신장애인과 사회복지사들의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후원자라 언제가는 뒤로 다 빠져야 한다. 결국 당사자 그룹이 주도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동등하게 반영하는 협동조합이 딱 맞겠다 싶었다.

Q. 의사결정 구조 이외에 협동조합의 또 다른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 협동조합의 매력은 사업 운영 과정에서도 빛을 발한다. 정신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오래 일하기 어렵다. 보통 하루 반나절, 주당 15~2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설계한다. 정신장애인들의 특수성으로 인해 휴직 기간을 한 달 이상 보장해줘야 할 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빈자리와 수고는 다른 조합원들의 능동적인 참여로 메워진다. 본인들 스스로 카페의 주인이자 사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홍보 동영상 촬영 중인 유일규 이사(가운데)./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협동조합 홍보 동영상 촬영 중인 유일규 이사(가운데)./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천: 정신장애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카페 매출이 감소하자, 조합을 지키기 위해 조합원 전체가 팔을 걷어붙였다. 십시일반 후원금도 내고 있다. 일반적인 영리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쩌면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Q. 최근 조합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들었다.

유: 카페 이름을 ‘카페 더 헤아림’으로 바꾸고 있다. 법인명은 ‘모아’로 유지하되 운영 중인 매장은 별도 브랜드로 만든다. 이미 공덕 2호점과 광화문 3호점은 ‘카페 더 헤아림’으로 운영 중이다. 또, 이들 매장 3곳을 전반적으로 관리해줄 비장애인 외부전문가 1명을 영입했다.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고, 지속가능성의 관건은 영업 능력이기 때문이다.

'카페 더 헤아림'이라는 이름의 의미./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카페 더 헤아림'이라는 이름의 의미./출처=사회적협동조합 모아

Q. 카페 말고 다른 사업을 해본 적도 있나?

유: 코로나19 탓에 많이 어려워졌지만, 케이터링 사업이 괜찮았다. 1호점이 위치한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는 세미나가 자주 열렸다. 간단한 음료와 다과 정도는 우리도 충분히 제공할 수 있고, 사람을 상대하기 어려운 정신장애인 조합원도 활용할 수 있어서다.

Q. 조합이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유: 정신장애인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정신장애인은 지역에서 스스로 정착해야 한다. 부모가 평생 돌봐줄 수는 없는데, 형제가 있어도 부모처럼 돌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가 일자리고 다른 하나가 집이다. 일자리는 모아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는데, 주택문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천: 부모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식들한테 돈 물려줄 생각하지 말자”고.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일자리와 주택 문제 해결은 정신장애인 가족들의 숙원사업인 만큼, 외부 도움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지역공동체 전체와 공생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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