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마지 대표
김현진 마지 대표

한국의 전통 채식을 판매하는 마지(대표 김현진)는 이상한 식당이다. 이들은 이 빠진 그릇이나 잔을 버리지 않고 다듬어 음식을 낸다. 그릇의 안쪽이 망가져 음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면 버리지 않는다. ‘흙으로 만든 그릇이기 때문에 그릇이 흙으로 돌아갈 때 까진 놓아주지 않는다’가 김 대표의 모토다. 물티슈를 내어주지 않는다. 일회용품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건방지게 고기를 안판다’며 가게에 찾아와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물티슈를 안준다고, 이 빠진 그릇에 음식을 내온다고 화를 내는 손님도 있었지만 마지의 가치에 동의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났다.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었지만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다. 배달음식을 통해 발생하는 쓰레기와 노동없는 소득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종종 남들이 ‘니가 안한다고 남들도 안하냐’, ‘매출 생각 안하냐’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정말 고민이 많았지만 배송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 사업을 혁신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노동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일에 나까지 숟가락을 얹을 순 없다”고 말했다. 

서촌으로 이전한 당시 2017년의 마지 전경/출처=마지
서촌으로 이전한 당시 2017년의 마지 전경/출처=마지

쪽집게 수학 강사에서 채식 식당 대표가 되기까지

마지는 수익금의 일부를 여성이나 환경을 다루는 단체, 내부제보자 지원, 풀뿌리미디어 등에 기부하고 있다. 김현진 대표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해' 불교계의 마타하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세상의 구석구석에 애정이 많다. 또 배움도 경험도 많다. 학부에서는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석사는 불교를, 박사는 종교음식을 배웠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과외를 하기도 했다. 고3 때 '과외를 받으려면 유치원생때부터 대기해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쪽집게 강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 있어 나 자신에게 충격을 받았다"며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는 것이 아닌 죽은지식을 팔고 있다는 생각에 '이제 그만팔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부천에서 사찰음식 학원을 운영했다. 학생들은 사찰음식을 창업 아이템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돈이 벌리지 않으면 금방 다른 아이템으로 옮겨갔다. 채식을 단순한 비즈니스로 다루기 보기보다 의식을 변화 시키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한국전통채식이 지속적인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방배동 인근에서 채식 도시락가게를 시작했다. 인근에 병원이 많아 건강식 도시락을 아이템으로 잡았다. 장사도 잘 됐다. 더 큰 공간으로 옮겨 불교를 기반으로 한 종교 아카데미도 함께 운영했다. 하지만 도시락을 주 아이템으로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 사용이 늘었다. 어느 순간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고민을 하게됐고. 결국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도시락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이후 식당으로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2017년 서촌으로 장소를 옮겼다. 종교학을 공부한 대표가 운영하는 사찰음식점이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인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교, 유대교, 도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와서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식사를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종교마다 가치와 교리론 싸우지만 음식을 가지고 싸우진 않는다"며 "종교개혁연대 등을 만들고 활동하며 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할랄과 코셔* 두 가지를 다루는 식당은 마지가 유일하다"며 "각종 종교인들이 뭉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유대교 식품 적법인증. Kosher 슈퍼바이저가 음식 재료, 생산시설, 조리공정 등 하나의 제품이 완성될 때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거친 뒤 발급하는 인증)

이런 특징으로 청와대의 행사나 각 국의 대사관에서 하는 행사에 마지의 도시락 주문이 많았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방송에 한국 관광지 스팟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늘 일주일에 대여섯 팀은 기본으로 방문했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 단골손님, 행사 등으로 코로나19 이전에 정말 장사가 잘 됐었다"며 "채식 식당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도 마지에 방문해 조언을 듣거나 사전준비를 하고 간다"고 말했다. 

마지의 요리에 사용되는 각종 장류가 담긴 장독대들. 김 대표와 김 대표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다.
마지의 요리에 사용되는 각종 장류가 담긴 장독대들. 김 대표와 김 대표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다.

협동조합에서 사단법인으로...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줄었다. 매주 꽉 들어차던 예약도 없었다. 세트메뉴의 가격이 2만 원인데, 하루 매출이 5만원을 기록하는 날도 있었다. 마지의 원칙이 흔들릴 만큼 어려웠다. 생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직원들의 월급과 월세를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선결제를 도입해보라는 지인의 아이디어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틀만에 500만 원의 돈이 계좌로 모였다. 새벽 3-4시까지 몇 만원부터 몇 십만원의 돈이 마지의 계좌로 들어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힘내세요', '응원합니다'라는 메세지로 들어오는 돈도 있었다. 단골들의 힘으로 지금은 이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운영할 동력을 다시 회복했다. 그는 "그 당시 선결제로 마이너스 나지 않는 한달을 보냈다"며 "마지를 다시 한 번 각인하고 가치에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돼 단순하게 그 달을 넘긴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의 규모가 커질수록 마지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구성원도 늘었다. 그래서 2017년 서촌으로 이전하며 마지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2년 간 협동조합으로 마지를 운영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함께 결정하고 고민하며 방향성을 잃지 않고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협동조합을 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그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등등 기업이 성장 궤도에 있을 땐 좋은 장치였지만 급작스런 위기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기에 벅찬 부분이 있었다"며 "돕고 싶은 상황이나 변경하고 싶은 사항이 있어도 빠른 속도로 결정 할 수 없어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를 공부하고 경험하기도 하면서 정보의 공유가 정말 국소한 범위에서 이뤄진다고 느꼈어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정보와 지식공유가 일어나야해요. 사회적경제의 이론은 완벽하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부분에서의 어려움이 많았어요."

야채수를 우리는데 사용되는 자투리 채소를 볕에 말리고 있다
야채수를 우리는데 사용되는 자투리 채소를 볕에 말리고 있다

공장식 축산에 문제를 느낀다면? 채식하세요 

“고기를 먹는 것, 반대하지 않아요. 유연할 필요가 있죠. 채식만 한다고 기후위기 극복이 되냐? 안될 수도 있어요. 하나는 명확해요. 공장식 축산을 없앨 수 있어요.”

10여 년 전, 김 대표는 갑자기 몸이 아팠다. 당시 마라톤을 하면서 계란, 닭가슴살, 닭가슴살 샐러드 등 건강식을 챙겨먹은 터라 의아했다. 그는 “병원에 가보니 항생제 알러지가 있었다”며 “닭고기에 있는 항생제에 반응해 몸이 아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이유 중 하나지만 이를 계기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시야를 넓히니 비참함이 보였다. 닭가슴 살을 위해 가슴만 비대해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그만한 공간도 없는 닭의 현실,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임신해야하는 소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우리가 먹는 음식은 음식이기 전에 생명이었다”며 “죽는 생명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또 대신해 가치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의 음식에는 정성과 시간이 담겨있다. 대부분의 재료는 10년 이상 거래한 농가나 사찰의 스님들에게 받는다. 마지의 음식은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직접 만든 조청과 장류로 간을 한다. 간장은 최소 3년, 된장 등은 2~3여년의 숙성 시간을 거친다. 두부의 간수를 빼기 위해 두부를 이틀에 걸쳐 끓이고 찬물에 담근다.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나물도 덖는다. 생야채는 냉기를 빼기 위해 반드시 햇볕에 미리 말린다. 자투리 야채를 사용한 야채수, 밥을 짓는데 사용한 쌀뜨물 등이 마지 음식의 기본이다. 연잎밥의 주재료인 연잎 공수에도 6개월을 들였다. 비료를 사용하면 연잎밥에 향이 거의 나지 않아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부를 찾았다. 

김현진 대표가 추천한 배냉면. 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다./출처=마지
김현진 대표가 추천한 배냉면. 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다./출처=마지

앞으로도 꾸준히 가치를 이어나갈 것

"화학비료, 농약 등 재배과정을 생각한다면 과일이나 채소가 무조건 건강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분들에게 재료를 구매하는 이유기도 하구요. 배냉면에 성장촉진제를 맞지 않는 배를 사용해요. 실제로 보면 울퉁불퉁 못생겨서 먹어도 되나 싶게 생겼어요."

김 대표가 추천하는 음식은 호두만두국과 배냉면이다. 채식을 하게 되면 고기가 주로 들어가는 만두나 동물성 육수를 우려 만드는 냉면은 먹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말린 표고버섯으로 만든 쫀득한 식감의 표고버섯탕수도 꾸준한 인기가 있다. 김 대표는 "처음 방문하는 분들에게는 마지의 음식을 고르게 맛볼 수 있는 런치세트를 추천한다"며 "채식의 경험을 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는 단순한 식당이기 보다 공동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 나간다. 브레이크 타임에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강아지와 산책 중 물을 마시기 위해, 지나가는 길에 인사차, 이웃 주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오랜 단골들과의 인연도 계속된다. 방배동 마지에서 맞선봤던 친구들이 서촌 마지 한옥에서 결혼식을 하기도 했다. 데이트를 하던 커플이 결혼해 아이의 돌잔치를 마지에서 열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으며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며 "사람들이 채식의 가치는 모를 수 있으나 마지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채식의 가치를 꾸준히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에요. 많은 분들이 명절만이라도 풍요롭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내 가족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홀로 죽어가거나 혼자인 사람들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내 일상의 안전함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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