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에서 박승호 교수(오른쪽)가 강연했다.

전시장에 대형 TV 한 대가 놓여있다. 디자이너가 기업에서 의뢰받아 제작한 평범한 모양의 텔레비전. 작가 인터뷰나 작품 설명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전시장 바닥에 구멍을 뚫은 뒤 TV 각도를 비틀어 심어놓는다면 어떨까? 더 이상 정보전달을 위한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예술의 정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지난달 28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에서는 ‘예술이 된 일상, 일상이 된 예술’을 주제로 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박승호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오늘날 예술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는 작은 생각의 차이에서 나눠진다”라며 “대상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드리는가에 대한 수용자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승호 교수는 자기 자신을 '데일리 아티스트'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 '일상의 전복자' 등 수식어로 소개했다.

박 교수는 흔히 ‘교수’를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청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과 한쪽 귀에서 반짝이는 귀고리, 손가락에 끼워진 멋스러운 반지 등이 그랬다. 이날 입고 온 하의도 바지도 치마도 아닌 독특한 형태였다. 그는 “원래 전공은 디자인인데 마치 이 옷처럼 다양한 분야에 발을 걸쳐 관심을 두다 보니, 융합콘텐츠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가르치게 됐다”고 자기 자신을 소개했다.

최근 여러 학문과 산업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융합’은 존재하는 대상들을 어떤 새로운 하나로 모아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박 교수는 “역사상 융합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를 꼽는다면, 르네상스 시기 또는 적어도 근대 교육 시스템이 들어오기 전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시대처럼 ‘융합’이라는 단어로 지칭하지 않더라도, 과거에는 모든 과정이 경계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만 봐도 화가이자 과학자, 의사, 기술자, 사상가 등으로 활동하며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보여줬어요. 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가 아주 넓었던 거죠. 하지만 근대 교육에 들어오면서 ‘전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원래 하나였던 것을 여러 개로 쪼개놓았습니다. 최근 융합을 위해 이를 정책적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나뉘어진 분야를 아울러 좋은 화학적 반응이 나오도록 뒷받침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융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지어진 ‘경계’를 생각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날 강연에서는 ‘예술’ 분야의 경계를 생각하면서 어제까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 시도들이 오늘날 예술로 평가받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전통적 회화만이 예술로 인정받던 시기에서 마르셸 뒤샹이 20세기 초반 변기를 뒤집어 만든 ‘샘’을 미술관에 전시하면서 기존의 관념들이 전복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특정 분야의 열성 팬)가 수집할 만한 인형이 영국 저명 미술관 ‘테이트모던’에 전시되기도 하고, 로봇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등 예술의 경계가 계속해서 무너지고 재정립되는 중이다.
 

전통적 예술로 인식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왼쪽)'와 이를 전복한 마르셸 뒤샹의 '샘'.

‘예술은 특별한 것이냐’는 청중의 질문에 박 교수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수 있지만 수용자는 특별하지 않게 느낄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는 “어떤 작품이 늘 감상의 대상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수용자가 주관적 해석을 더하는 등 예술에 대한 형평성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지금 같은 교육 시스템은 죽은 것과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간이 로봇 ‘알파고’에게 진 것 같은 추세가 더 많은 분야에서 빠르게 가속될 수 있다”며 “학교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한편,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은 문화, 예술, 사회, 과학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어제와 내일 사이 오늘을 탐색하는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오는 26일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를 배경으로 오래된 공장을 지키는 장인들과 낡은 가게를 작업실로 활용하는 청년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8월 14일에는 제6회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조명한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이 연단에 선다.

무료로 진행되는 ‘오늘’은 행사일 2주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인문360°’(inmun360.culture.go.kr)에서 관람 신청을 받는다. 모든 공연은 ‘인문360°’를 비롯해 유튜브,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글. 양승희 이로운넷 기자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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