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명이 넘는 예멘인이 제주에 동시 입국하자 대한민국 사회가 연일 시끄럽다. 하지만, 언론과 시민사회가 제대로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올 것이 온 것’ 뿐이다. 국내로 몰리는 난민 수는 해마다 증가했고, 언제고 터질 수면 아래 잠복 이슈였다. 2013년 6,643명이던 국내 난민 신청자는 올해 5월 말 총 4만470명(누적 인원)으로 급증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말까지 예멘인 난민 신청 누적 총수는 430명, 올해 들어 5개월간 552명이 추가로 신청하면서 현재 국내 예멘인 난민 신청자는 총 982명이다.

제주도 난민 수용 여부에 대한 찬반 여론이 거세지면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자 지난 6월 29일,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난민심판원 신설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난민지원단체 등 관련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6월 28일 서울혁신파크에서는 소박한 행사가 열렸다. 난민을 지원하는 소셜벤처 ‘에코팜므’가 난민 관련 캠페인을 겸한 일일마켓을 연 것이다. 앞서 17일에는 난민영화제도 개최했다. 에코팜므는 난민문제가 국내에 알려지기도 전인 2009년, 난민 여성들과 일하겠다며 문을 연 비영리민간단체다. 일반적인 구호가 아니라, 난민들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고 결과로 나온 작품들을 상품화해 판매하며 그들의 치유와 자립에 집중해왔다. 에코팜므의 박진숙 대표는 국내 여성 난민들의 친구로 통한다. 박 대표의 남편인 김종철 변호사는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난민 지원 일을 오래했다. 2015년에는 난민 돕기에 나선 부부의 공이 인정되어 '제7회 청년일가상'을 박 대표와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박 대표는 단 한건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쏟아내는 언론 보도가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듯해서다. 박 대표는 최근 문제가 불거진 이후, 6월 29일 처음으로 <이로운넷>과 인터뷰를 통해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박 대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 속에서 막연한 불안감이 조장되어 난민에 대해 더 큰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정부가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이렇게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박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처음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 십여 년 전에는 두 아이를 키우며 공부하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편이 난민을 지원하는 공익변호사였는데 남편의 의뢰인이었던 콩고 난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그들과 친구가 됐다. 나도 당시에는 아프리카를 가난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난민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처럼 밥 먹고, 아이 키우는 일을 힘들어 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천대받는 흑인 여성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옆에서 지켜봤다. 뭐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2009년에 ‘에코팜므’라는 작은 단체를 만들었다.
 

제주도에 예멘인 549명이 입국하면서 난민에 대한 찬반 여론이 거세다. 국내에서 난민문제가 이렇게까지 불거진 적이 있나.

2015년에 “시리아 난민 200명이 한국에 한꺼번에 입국했다”고 국정원에서 오보를 내면서 불안감을 조장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번에 온 게 아니라 누적 인원이었다. 이번에는 500명 이상이 한 번에, 제주도라는 섬으로 오면서 더 이슈가 된 것 같다.

함께 지내온 주변 난민들은 어떤 시각으로 지금 문제를 바라보고 있나.

똑같은 사람으로 봐주면 좋겠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들 했다. 본인들도 이전에 다들 겪었던 일이라 더 안타까워한다. 무엇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입국하면서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보니 더 그렇다. 또 한편에서는 이번 일로 난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난민 인권 향상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의견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우리가 난민을 받아들여야하는 이유가 뭔가.

단순히 얘기하면, 난민 신청자에 대한 보호는 선택이 아닌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을 제정해 실행하는 나라다. 난민 심사 기간 동안 생계?주거 지원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측면으로는 인식을 좀 바꿔서 난민을 ‘문제’가 아닌 ‘기회’로 보면 좋겠다. 국민들이나 국익에 뭐가 좋은지 한번 생각해보자. 난민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게 좋을까, 아님 그들을 포용하고 잘 대우하는 게 좋을까. 후자라고 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대부분의 난민들이 교육 수준이 높은 지식인이거나 어느 정도 사회적, 경제적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잘 교육하고 대우하면 그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충분히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기여할 수 있다.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기회도 된다.

꼭 기여의 차원이 아니라도 우리가 그들을 믿어주고 선의를 베푸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믿어주면 믿음직해진다’는 말이 있다. 직업까지는 아니라도 직업 훈련의 기회를 주고 그들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심어준다면 어떨까? 그들끼리만 어울리게 할 게 아니라 한국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안 믿고 계속 배척하면 다른 폐해가 생길 수 있다. 난민 2세대가 앞으로 더 늘어날 건데, 나중에 난민에 대한 배척이 사회문제로 표출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 볼 문제다.

캘리그래피 수업을 받는 여성 난민

하지만, ‘제주도 난민 수용 거부청와대 청원이 수십만 건 올라오고 관련 집회까지 개최되는 등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읽히는 반대 정서는 과도한 지원, 범죄 발생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제주도라는 폐쇄된 지역에 ‘이슬람’, ‘남성’이라는 이슈가 만나면서, '이슬람 포비아(무슬림 혐오증)'적 입장이 크게 깔려있다. 최근 국내에서 미투운동 등 여성문제가 심화되면서 조혼 풍습 등 보수적인 이슬람 남성에 대한 혐오도 작용하는 것 같다.

제주의 무사증제도(‘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2002년 정부가 도입한 제도로 몇몇 위험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 180개국의 외국인이 비자 없이 제주도에 들어와 한 달 동안 체류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의 허점도 불안감을 키웠다.

현실적으로 이런 두려움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말하는 건 무리일거다. 오해라면 풀어야할 거고,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박 대표는 에코팜므를 운영하며 많은 난민들을 만났을 테니, 경험에 기반해 얘기해달라.

올해로 난민들을 만난지 12년째다. 12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난민을 바라볼 때 오해 또는 불편한 시선들이 많다. 나 또한 난민들과 만나기 전에는 존재 자체도 몰랐고 아프리카라고 하면 빈곤, 전쟁 등 부정적 단어만 떠올렸으니 지금의 부정적 인식들도 일면 이해가 된다. 이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난민에 대한 교육이나, 난민 신청자를 지원할 수 있는 국내 인프라의 부족, 난민 이슈를 심도 있게 다루는 단체 부재 등 제도적인 문제도 크다.

실제 청소년들 교육을 가보면 처음에는 난민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한다. 하지만 강의 끝날 무렵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얘기한다. 지금의 현상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 속에서 막연한 불안감이 사회적으로 조장되면서 생긴 오해가 더 크다고 본다. 난민에 대해 더 자세히 알면 혐오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난민 중 열에 일곱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배려심 깊고 순수하고 기회를 주면 고마워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인도 마찬가지지 않나.

난민으로 좋은 사례가 있다면.

난민으로 입국해서 실제 그 나라나 자국으로 돌아가 리더가 되는 사례도 많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아인슈타인도 난민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분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사회에 기여했던 걸 생각 보면 된다. 난민을 우리와 비슷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박진숙 에코팜므 대표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이 시행됐지만, 실제 난민 인정 비율은 4%(법무부 자료)대로 타국 대비 낮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굉장히 어렵다. 난민 심사를 담당하는 출입국 직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보니 인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긴급 대책회의를 통해 난민심판원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도 난민법 개정을 추진, 난민심사 전문성 강화를 위해 심사관도 증원, 난민 브로커 등에 대한 단속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앞으로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으면 하나.

정부가 난민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점은 환영한다. 심판원이 신설되면 아무래도 난민 심사가 단축돼 신속한 난민 심사가 가능해질거라 기대한다. 인력 부족에 대한 문제는 여러 민간단체들이 계속 요구해왔던 점이기도 하다. 지금도 2,3명의 심사관들이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필요한데 턱없이 부족하다. 재판관들조차 난민에 대해 잘 모른다. 더욱이 예멘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보니 더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다. 걱정은 난민 심사에서 전문성, 중립성을 지켜 조사하겠다는데 이를 얼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다.

아쉬운 점은 정부가 좀 더 일찍 이번 사태에 대해 대응했으면 좋았겠다는 것이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초기 처리를 잘못하고, 제주난민대책위원회가 있음에도 중구난방으로 곳곳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에코팜므는 난민 여성들의 한국 내 정착을 돕기 위해 문화예술활동으로 만든 굿즈 상품을 판매한다.
시민단체, 사회적경제 등 난민을 지원하는 외각 지원 조직 강화의 필요성은.

물론 중요하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있다. 난민 신청을 돕거나 법률 지원 등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민간에서 난민이 사회문제화 되지 않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난민들은 보통 신용 자체가 없기에 돈도 빌릴 수 없다. 이럴 때 자조모임을 지원한다면 서로에게 힘이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 타국으로 온 이들에게 치유, 성장, 자립의 기회를 준다거나, 정체성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을 난민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등도 나중에 닥쳐올 사회 문제를 예방하는 노력들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리아 난민 자녀에게 반 아이들이 “너 IS지?”라고 하고, 소말리아 난민 자녀에게는 해적이라고 놀렸다. 결국 모두 학교를 그만뒀다. ‘난민=문제 있는 사람, 위험한 사람’이라는 등식이 지속적으로 세워지면 그 프레임을 벗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들을 포용하고 기존의 인식을 달리 하면서 바라보고 기다려줬으면 한다. 물론 난민들도 한국에 온만큼 우리의 정서나 문화를 배우고 적응하려 노력해야 한다. 올해 난민영화제때 한 콩고 난민이 내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서로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소셜벤처 에코팜므는?
에코팜므(www.ecofemme.or.kr)는 국내 거주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2009년 설립되어 활동을 벌이는 소셜벤처다. 에코팜므는 그동안 두 가지 관점에서 활동을 해왔다.

우선 국내 난민의 정서적 지원, 자립을 돕는다. 대다수의 난민들은 갑작스럽게 타국으로 와서 갖은 멸시 속에서 살아야하기에 자존감이 바닥이고 트라우마를 자주 겪는다. 주로 아프리카 난민 여성들과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도 조금씩 치유되었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지금은 한 발 더 나가서 난민 여성들에게 미술을 기반으로 한 예술 클래스, 도예, 캘리그라피 강좌를 열어서 아티스트 양성을 하는 것은 물론, 작품들로 상품 개발/판매도 한다. 또 문화 다양성 이해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난민들이 직접 교육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난민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나선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난민은 용감하다’, ‘난민은 재주꾼’ 등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내년에는 콩고 난민으로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은 미야(Miyah, 애칭)가 에코팜므의 새 대표가 될 예정이다. 난민이 직접 소셜벤처의 대표가 되는 건 처음이다.

 

사진제공. 에코팜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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