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종교 및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위헌이며, 내년 12월까지 이를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반면 입영 거부에 대한 처벌 조항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병역거부자들의 처벌 여부는 사안에 따라 대법원의 몫이 됐지만, 적어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대체 복무할 길이 열렸다. 무엇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무조건 형을 사는 일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28일 판결문을 통해 “2004년 입법자에 대하여 국가안보라는 공익의 실현을 확보하면서도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그로부터 14년이 경과하도록 이에 관한 입법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며 “그사이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 법무부, 국회 등 국가기관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검토하거나 그 도입을 권고하였으며, 법원에서도 최근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에 국가가 더 이상 이 문제의 해결을 미루지 말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함으로써 병역 종류 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상황을 제거해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의사결정구조에서 다수와 달리 생각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입영 거부를 형사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는 재판관 4(합헌)대 4(일부위헌)대 1(각하)의 의견으로 합헌을 선고했다. 이 조항은 현역 입영 또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기일부터 3일이 지나도 불응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진성 등 재판관 4인은 “병역종류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했으면 처벌조항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부분도 위헌 결정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위헌 의견을 실었다.  강일원 서기석 재판관 2인은 “처벌문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조항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법률해석과 판단으로 발생한다”며 합헌 의견을 밝혔다.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 2인은 “대체복무는 국방의무에 포섭될 수 없고, 안보상황은 엄중하며,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자를 심사로 가려내기 어렵다”는 의견(병역종류 각하, 처벌조항 합헌)을 냈다. 김창종 재판관은 둘 다 심판 대상이 안 된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법조계에서는 처벌조항은 합헌으로 남았으나 양심적 병영거부자들에 대한 무조건 처벌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취지가 밝혀진데다 이미 앞선 여러 하급심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무죄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는 오는 8월 30일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주목한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형사처벌이 사실상 사라지게 될 수도 있어서다.

 

 

이번 판결에 대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시민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처벌을 받았던 이들과 지지해온 시민단체들은 이날 일제히 환영 입장을 냈다. 이날 오후 3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쟁없는 세상, 군인권센터 등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헌재 결정으로 병역거부가 감옥행으로 이어지던 것이 끝날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번 위헌 판결은 1949년 대한민국 국군이 징병제를 택한 이후 69년 만, 2001년 국내 첫 양심적 병역거부 공개 선언이 있은 지 17년 만이다.

 

 

 

글. 라현윤 이로운넷 기자

 

사진제공. 국제앰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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