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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해줄 수 있는 특별한 가치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거든요 . 

10년 넘게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지도해온 원총재 태그(TAG) 이사의 말이다. 그의 제자들은 비영리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이 지원하는 올키즈스트라(Allkidstra) 단원들이다.

올키즈스트라는 ‘모든(All) 아이들(Kids)의 희망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라는 뜻으로 문화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악기를 배우고 연주할 기회를 선물한다. 10년간 올키즈스트라를 거쳐간 단원은 4000여명에 이른다.

올키즈스트라에서 10년 넘게 아이들과 부대껴온 음악 강사 5명은 지난해 10년의 시간이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태그를 결성했다.

TAG 이사진들. 왼쪽부터 양은영(튜바), 원총재(타악기), 최호진(트럼펫), 정창옥(호른), 권다은(색소폰) / 사진= 백선기에디터
TAG 이사진들. 왼쪽부터 양은영(튜바), 원총재(타악기), 최호진(트럼펫), 정창옥(호른), 권다은(색소폰) / 사진= 백선기에디터

 

목표가 다른 음악 교육

주말 인천의 한 아파트. 정창옥 이사가 삼복더위에 가발을 뒤집어쓰고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두 달에 한 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하는 음악교육 생방송 ‘올라’ 제작 현장이다.

금발의 가발을 뒤집어 쓴 정창옥이사가 모차르트로 변신해 열연하고 있다. / 사진 = 백선기에디터
금발의 가발을 뒤집어 쓴 정창옥이사가 모차르트로 변신해 열연하고 있다. / 사진 = 백선기에디터

"소프라노 성악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노래가 뭔지 아니?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 이야. 당시 오페라들이 이탈리아어로 쓰였지만 이 작품은 나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썼지. 밤의 여왕의 부탁을 받은 왕자가 마술피리를 받아들고 그의 딸인 파미나 공주를 구하러 가는 내용인데 공연 때마다 매진이 돼 수입이 짭짤했어"

라이브 방송 올라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 요소를 극대화하고 퀴즈와 이벤트로 호응을 이끌어냈다. 

올라 라이브 방송 '아 토벤형!' . TAG는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에 어려움을 겪자 대안으로 온라인 레슨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올라 라이브 방송 '아 토벤형!' . TAG는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에 어려움을 겪자 대안으로 온라인 레슨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우리는 악기 연주를 지도하지만 연주 실력 향상이 목표가 아닙니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표정이 밝아지고 친구 관계도 좋아지는 등 행복한 성장을 돕는데 방점을 찍고 있죠.

태그의 특징은 그래서 재능은 있으나 경제적 이유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발굴해 음악가로 성장시키는 음악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들이 내색을 하지 않아 몰랐는데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많더군요. 처음엔 무조건 악기를 잘 다루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연습을 게을리 한다고 타박도 많이 했는데 결코 혼낼 일이 아니었어요. 수업시간에 빠지지 않고 와준 건만도 기특한 일이었죠." 

양은영 이사가 튜바 연주를 지도하고 있다. 태그 이사진들은 코로나19에도 취약계층 아동 청소년 50여명에게 주 1회 악기를 지도하고 새내기 음악강사들을 대상으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양은영 이사가 튜바 연주를 지도하고 있다. 태그 이사진들은 코로나19에도 취약계층 아동 청소년 50여명에게 주 1회 악기를 지도하고 새내기 음악강사들을 대상으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최호진 이사는 “우리의 수업은 연주활동을 많이 한 분들이나 교수님들이 전공자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좀 다르다”면서 “실력 향상에 앞서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우울한 아이에게 한 발짝 가까이 가서 보면 단둘이 조부모와 살거나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있었죠. 많은 아이들이 저마다 제각각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그 안에서 음악에 의지하고 버텨낼 때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자신감과 자발성이 쑥쑥 자란다

권다은 이사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만나는 수업 시간은 상상 그 이상의 큰 가치를 품고 있다”면서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변화의 시작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지역관악단 올키즈스트라 아산 앙상블 연습 시간. 올키즈스트라 지역관악단은 전국에 7곳으로 300여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지역관악단 올키즈스트라 아산 앙상블 연습 시간. 올키즈스트라 지역관악단은 전국에 7곳으로 300여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자기표현을 잘 못했던 철민(가명)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색소폰을 배우고 나서 활발해졌다. 관악기를 배운 덕에 군악대에 지원해 현재 하사로 복무 중이다. 그런 철민이를 보고 많은 후배들이 군악대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함께걷는아이들 블로그에는 철민이처럼 음악이 바꿔 놓은 다양한 아이들의 긍정적인 성장스토리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제가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닌데 트럼펫 연주는 남들이 못하는 거를 하니까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전에는 어렵다고 생각하면 바로 포기했는데 이젠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까지 최대한 노력해요.

합주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거잖아요. 제 자신을 이겨야 모두 같이 멜로디를 맞출 수 있잖아요. 소리를 함께 내기 위해서는 제 몫을 해야 하는 거죠.

"음악은 최고의 복지더라"

사단법인 태그(TAG)는 Teaching Artist Group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예술교육 활동을 하는 연주자들이 서로의 노하우나 성장 사례들을 공유하고 교육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유용한 콘텐츠를 개발해 나눔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음악이 복지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함께걷는아이들이 제공해준 음악 강사 교육 워크숍에서 기인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올키즈스트라 음악강사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올키즈스트라 음악강사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음악만 파고 들어온 강사들에게 사회복지 개념과 인문학을 입혀주는 건데 이 경험들을 차곡차곡 모으면 훌륭한 콘텐츠가 되겠다 싶었죠. 아동심리나 아동교육학, 인문학을 접목한 교수법으로 문화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줬어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실전에 적용해보면서 우리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죠. 아쉽게도 국내에는 음악선생님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해주는 전문적인 단체가 없어요. 그 길을 우리가 터보려고 합니다

태그 이사진들은 특히 음악이 주는 큰 선물로 합주 연습과 무대 경험을 꼽았다.

제9회 올키즈스트라 정기 연주회 무대에 선 아이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제9회 올키즈스트라 정기 연주회 무대에 선 아이들.  / 사진 제공 = 함께걷는아이들

트롬본을 연주하는 민수(가명)는 합주 연습이 늦게 끝나 태권도 학원을 빼먹을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혼이 났다. 운동선수가 꿈인 민수는 운동 연습을 빠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올키즈스타라 활동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1년 뒤 아버지가 정규 콘서트에서 무대에선 아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후원자로 변모했고 가족간에 대화의 시간도 늘어났다.

양은영 이사는 “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는 특별한 놀이문화”라면서 “합주를 통해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작품을 완성해 가다 보면 사회성이 길러진다”라고 전했다.

모든 아이들이 음악적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잘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못하면 어때요? 그보다는 감동을 주고 싶어요. 학교에서 주눅 들고 집에서도 하고 싶은 걸 지원받지 못해도 악기 연주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내면의 소리를 뿜어낼 수 있도록 말이죠. 또 무대의 힘은 강해요. 서먹서먹했던 가족들을 한데 뭉치게 하고 대화를 풍성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 힘을 지난 10년간 두 눈으로 확인했고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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